백년지대계 논의한다더니…2년만에 '둘로 쪼개진' 국가교육위(종합)

연합뉴스 2024-10-07 19:00:31

사회적 합의기구이나, 정파적 갈등 불가피…보수 13명 vs 진보 6명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두고 갈등…2029학년도 대입 개편안 향방 '불투명'

국가교육위원회 29차 전체 회의에서 인사말 하는 이배용 위원장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정권에 영향을 받지 않고 '국가백년지대계'인 교육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지난 2022년 출범한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2년 만에 심각한 내부 갈등을 밖으로 드러냈다.

사회적 합의기구를 표방하고 있지만, 국교위원의 3분의 2가량이 대통령 지명과 여야 추천 몫으로 구성돼 정파적 갈등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다.

국교위의 업무 중 가장 큰 관심을 받는 2029학년도 대입 개편안의 경우 자문기구인 전문위원회에서 '수능 이원화, 수능 논·서술형 도입, 내신 절대평가'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진보성향의 위원들은 전문위원 8명이 사퇴하는 등 해당 논의는 이미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며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보수성향의 위원들은 "국교위를 흔드는 행위를 즉각 멈추고 정식 논의의 장에서 최선을 다해 교육정책 논의에 임하라"고 반발했다.

국회 교육위 출석한 이배용 위원장

◇ '보수-진보' 나눠진 국교위…결국 밖으로 표출된 내부 갈등

국교위 내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정대화 상임위원과 김석준·이민지·장석웅·전은영 위원은 7일 '국교위의 실험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국교위의 문제로 ▲ 극단적인 정파적 구성의 한계 ▲ 사회적 합의의 실종 ▲ 의견 수렴의 부재 ▲ 소통의 차단 ▲ 교육부의 들러리 역할 ▲ 강고한 비밀주의 ▲ 위원장의 구태의연한 리더십과 독단주의 등 일곱 가지를 꼽았다.

국교위는 2022년 9월 27일 대통령 직속 정부기관으로 출범했다.

국교위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교육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고 정권과 관계없이 일관된 교육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합의제 행정위원회로 만들어졌다.

핵심 업무는 중장기 교육제도와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10년 단위의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동안 교육부가 해온 교육과정 개발·고시 업무도 이관됐다.

위원은 대통령 지명 5명, 국회 추천 9명, 한국대학교육협의회·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시도지사협의회 추천 3명, 교원 관련단체 추천 2명, 당연직(교육부 차관, 시도교육가협의회장) 2명 등 총 21명이다.

이중 교원단체 추천 2명은 정해지지 않아 현재 위원 수는 19명이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이 대통령 지명으로 위원장을, 김태준 전 동덕여대 부총장과 정대화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 여야 추천으로 상임위원을 각각 맡았다.

정치 성향을 보면 이 위원장을 비롯해 13명이 보수, 6명이 진보로 분류된다.

국교위는 합의제 기구로, 쟁점이 있는 사안은 표결로 결정한다. 그러나 보수 성향 위원이 의결 정족수(전체 위원의 과반)를 충족하다 보니 반대 의견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진보 성향 위원들이 주된 문제로 삼은 것도 이 부분이다.

이들은 "발족 직후 2022년 교육과정을 의결하면서 최소한의 의견 조율도 없이 표결 처리했다"며 "작년 2028학년도 대입 정책과 올해 초등학교 1∼2학년 신체활동 분리를 의결하는 과정 역시 한두차례 이야기한 후 이견을 묵살한 채 표결을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미래교육의 비전을 제시하고 인재 양성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국교위의 역할이 무색하게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비롯한 주요 교육 현안에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진보 성향 위원들은 "교육부 요구에 순응하면서 교육 현안에 침묵하는 교육부의 들러리가 됐고, 그 결과 완벽하게 존재감을 상실해 버렸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오후 김 상임위원을 비롯한 보수 성향의 위원 7명은 '국가교육위원회는 차분하게 역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반박문을 내며 맞대응했다.

이들은 "국교위는 운영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서 "표결은 최대한 지양하고 위원님들의 의견이 최대한 모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의 '들러리'라는 표현에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며 "현안은 이를 담당하는 교육부의 역할에 맡기고, 국교위는 10년 단위의 교육정책 방향과 과제를 설정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국가교육위원회 출범 2주년 기념 대토론회

◇ 발표 5개월 남았는데…논란 끊이지 않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국교위의 업무 중 세간의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것은 2029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포함하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이다.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은 2026년부터 2035년까지 10년 동안의 대한민국 미래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청사진으로, 연말 초안이 제시되고 내년 3월 최종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국교위 산하 자문기구인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원회(전문위)에서는 '수능 이원화, 수능 서·논술형 평가 도입, 내신 외부평가제 도입, 내신 절대평가제 전면 도입' 등이 논의됐다.

전문위에서 '수능 연 2회·나흘간 시행, 심화수학 도입' 등의 주장이 나오고, 국교위가 발주한 정책연구에서 '초등 1·2학년 영어 교과 편성'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비공식적이고 산발적으로 알려지는 내용들에 대해 국교위는 "본회의에서 논의된 바 없다"고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발표 시점이 5개월가량 남았는데,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인 만큼 이제는 공론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국교위 내부에서 '깜깜이' 운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 것이다.

진보 성향 위원들은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는 소통이 필수적이고 소통을 위해서는 공개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위원장과 사무처를 중심으로 강력한 비밀주의가 작동하고 있어 기관 안에서 진행되는 모든 활동은 비공개이고, 생산된 모든 자료는 대외비가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가교육위원회의 핵심 책무인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의 퇴행성은 도를 넘었다"며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보수 성향의 위원들은 "9월 25일 토론회에서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의 뼈대가 되는 교육 비전과 목표, 주요 방향(안)을 제안하고 의견을 수렴한 바 있으며, 향후에도 지속해서 소통과 의견 수렴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미완성된 사항, 논의 중인 사항이 무분별하게 공개돼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예방하고자 충분하게 내부적으로 숙고하고 검토한 사항을 순차적으로 공개하고자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교육은 국민 모두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고, 많은 논의를 거쳐 책임 있게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며 "국교위를 흔드는 행위를 즉각 멈추고 정식 논의의 장에서 최선을 다해 교육정책 논의에 임하기를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e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