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만에 주인공으로…뮤지컬 '애니' 남경주 "하늘 걷는 기분"

연합뉴스 2024-10-07 17:00:39

1985년 '애니'서 단역 출연…"전형적이지만 '뮤지컬 교과서' 같은 작품"

송일국과 함께 '워벅스' 역 연기…27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뮤지컬 '애니' 워벅스 역의 남경주(왼쪽)와 송일국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39년 전 꾸었던 꿈이 현실이 됐네요. 하늘을 걷는 기분이에요."

한국 뮤지컬의 산증인 배우 남경주(60)에게 뮤지컬 '애니'는 지금의 자신을 존재하게 해 준 '어머니'와도 같은 작품이다.

1985년 현대예술극장에서 상연된 '애니'에서 이제 갓 뮤지컬계에 데뷔한 스물한살 남경주는 단역에 불과했다. 그리고 39년이 흐른 2024년 남경주는 당당히 '애니'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다.

지난 1일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한 '애니'는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부모님과의 재회를 꿈꾸며 살아가는 고아 소녀 '애니'가 억만장자 '워벅스'를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배우 남경주와 송일국이 '워벅스'로 번갈아 출연한다.

뮤지컬 '애니' 워벅스 역의 남경주(왼쪽)와 송일국

7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남경주는 '풋내기' 시절 참여했던 1985년 '애니'의 추억을 먼저 꺼내놓았다.

남경주는 "20대 초반에 '애니'에서 주인공의 하인 역과 방송국 MC 역으로, 조연도 아닌 단역을 맡았었다"며 "5년 전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시간이 안 맞아 고사했는데, 이렇게 39년 만에 주인공 '워벅스' 역을 연기하게 돼 하늘을 걷는 기분"이라고 밝혔다.

청춘의 시작을 함께 한 작품에 회갑을 맞이한 올해 다시 출연하게 된 남경주는 마치 신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들떠 있었다. 수많은 작품으로 잔뼈가 굵은 그에게도 '애니'는 가슴이 떨리는 작품이다. 남경주는 "1985년 당시 최종원 선배가 '워벅스'로 출연했는데, 머리까지 밀고 연기하는 선배의 모습에 '나중에 세월이 지나면 나는 과연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뮤지컬 '애니' 워벅스 역의 송일국

남경주와 송일국이 연기하는 '워벅스' 역은 아직은 연기와 노래가 서투른 아역 배우들과 2시간 넘게 대사 호흡을 맞춰야 하는 쉽지 않은 역할이다. 고아 소녀가 주인공인 이 작품에는 실제로 초등학교 5학년 열한살인 최은영과 곽보경이 '애니'로 출연한다.

그런데도 남경주와 송일국 둘 다 오히려 아역 배우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송일국은 "제 아이들이 초등학교 6학년인데 그보다 어린 배우들이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막상 공연을 시작하니 너무 잘해서 오히려 많이 배우고 있다"며 "감정 전달은 성인 배우에 비해 모자라지만 대사 전달이 정확해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남경주도 "아이들은 지치지 않는다. 연습부터 실제 공연까지 에너지가 너무 넘친다. 그걸 보는 즐거움에 공연하고 있다"면서 "아역 배우들과도 교류나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행복하고 즐겁게 연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뮤지컬 '애니' 워벅스 역의 남경주(왼쪽)와 송일국

'애니'는 돈밖에 모르던 억만장자가 밝고 명량한 고아 소녀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는 전형적이고 단순한 스토리이지만, 남경주는 그런 '애니'야 말로 '뮤지컬의 교과서'라고 극찬했다. 그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에 '권선징악'을 담고 있는 아주 쉬운 스토리의 작품"이라면서도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복잡하지 않게 관람할 수 있고, 음악적으로도 뮤지컬의 작법을 잘 보여줘 '뮤지컬의 교과서'라고 칭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번이 세 번째 뮤지컬 작품인 송일국도 '애니'를 통해 뮤지컬 배우로서 한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송일국은 "아내가 제가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날카로운 지적을 많이 해줘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면서 "그런 아내가 최근에는 제가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늘었다'고 칭찬까지 해줬다"며 웃어 보였다.

돌아온 뮤지컬 '애니'

남경주는 작품이 시사하는 현실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해럴드 그레이의 만화 '작은 고아 소녀 애니'를 원작으로 한 '애니'는 입양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남경주는 "좋은 작품은 어느 시대에 갖다 놓아도 그 시대의 사회적 문제가 녹아들어 있다"면서 "아직도 해외 입양이 많은 한국에서 이번 작품으로 '입양'이나 '대안 가족' 등의 이슈를 다시 한번 끌어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2019년 이후 5년 만에 국내 무대에 오른 '애니'는 오는 27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상연된다.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