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수필가 11인] 김 광 '논쟁시대(論爭時代)'

데일리한국 2024-10-06 23:24:21
사진=작가 제공 사진=작가 제공

귓전을 때리는 서늘한 소리. 머리맡 핸드폰을 더듬거린다. '나 방금 죽었네. 와서 나 좀 보고 가게. 친구들에게 연락 좀 해주고' 라는 메시지다. '설마?' 하면서도 전화부터 해본다. 한밤중에 갔다는 친구 부인의 음성이 아득하게 들려온다. 미리 입력해 놓은 메시지를 아들이 발송했단다. '림프종'이 그를 괴롭히긴 했지만, 너무 갑작스럽다. IMF 시절에 강화도로 귀농한 친구가 농사에 재미를 붙이고 잘 사나 싶었는데 기어이 먼저 가고 만다. 

'실속 없는 사람이 주변에 친구들만 가득하다' 워낙 친구를 좋아해 부모님께 자주 듣던 말이다. 이 말은 아직도 나를 따라다닌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친구가 손익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인가.

최근에 불자(佛者)들의 토론모임에 자주 나간다. 기독교인이라고 밀어낼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아주 우호적이다. 이 모임을 알게 된 것도 강화 친구의 덕이다. 이 모임은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에 불과하다. 어찌 그들의 내공과 선지식(善知識)을 따라갈 수 있으랴. 자리만 지킬 뿐, 의견을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선종육조(禪宗六祖)니, 돈오점수(頓悟漸修)니 하는 기본적인 말도 날 머쓱하게 하는데 철리(哲理)에 있어서랴.

내가 이 모임을 좋아한 건 불자의 모임이라서 불교만 논(論)하는 게 아니고 유(儒) 불(佛) 선(仙)을 가리지 않은데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노자의 도덕경 플라톤의 국가론을 가지고 떠들다가도 어느 날은 스탕달과 모파상, 데카르트와 칸트를 외치고, 토테미즘과 종교의 융화 등에 관해서도 토론하는 열정과 순수 그리고 해박한 지식에 반해서다. 친구가 강(講)하는 모습도 볼 겸 토론하는 날이면 열 일 제쳐놓고 참석한다.

이렇듯 모든 걸 질문하고 논쟁해 얻는 기쁨은 매우 컸다. 우리의 시대는 논쟁만이 모든 소통의 수단이고 미덕이라 할만했다. 그들의 말대로 불교 인자나 지식을 탐하는 걸신(乞神)이 내게도 들어있는 것일까. 때론 토론 주제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을 내게 물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말이 많아진다. 불교가 그들이 말하는 중생과 같이 있지 않고 산속으로 들어간 이유에 대해 다그치기도 한다.

그들은 빙긋이 웃는다. 숭유(崇儒)와 배불(排佛)에 밀린 탓도 있지만, 그보단 먼저 자신들이 깨끗해지기 위해서라는 대답과 함께. 그들의 말이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본질은 그들과 어울리면 나도 평안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거다. 그 진지함에 난 서서히 중독되어 갔다. 그런데 지금은 삶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런 회의(懷疑)가 찾아온 것일까. 언젠가 친구가 근심이나 걱정이 생길 때 형체도 없는 걸 가지고 미리 걱정하지 말고 항상 즐거운 것만 생각하라던 말이 생각난다.

친구라는 게 이런 것이다. 웃다가도 다투고 논쟁하며 더 가까워지는, 툭 던지는 말도 흘려버릴 수 없는 보약 같은 존재다. 이런데 어찌 친구를 더하기 빼기로만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강화 친구가 그런 친구다. 그러나 지금은 곁에 없다. 그러니 삶에 회의가 들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그가 없는 자리, 허적(虛寂)하고 아프다. 헛헛함이 드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시대, 끊임없이 토론하며 갈등하고, 고민하고 반성하며 우릴 자라게 했던 시대, 보편(普遍)적 가치(價値)를 최우선으로 여겼던 그 논쟁의 시대를 이끌던 친구는 이제 없다.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어느 겨울날 감포(甘浦)의 '죽림정사'에 같이 간 일이 있다. 그는 죽림정사 '송X 스님'의 유발 제자다. 스승님을 뵈러 간다고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도량(道場)에 머무는 동안 고령의 스승을 위해 새벽 예불도 인도하고 바닷가 해수탕에 스승을 모시고 가 등도 밀어 드리며 기뻐했다. 내게 늘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고 부처 같은 친구였다.

'조금 더 자주 찾아가 볼걸' 그는 녹차를 재배하고 살기를 원했다. 녹차의 깊은 맛도 좋아했지만, 척박한 땅에서 뿌릴 내리고 사는 강인하고 깨끗한 품성에 더 맘을 두었다. 야생 녹차는 세상을 향해 외치는 새들의 혀다.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저희만 모여 쑥덕거린다. 물론 친구가 혀를 닮은 작설차(雀舌茶)를 즐겨 마셔서 말(言)로 이 세상을 이겨나간 건 아니지만...

그의 영정(影幀)이 보인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듯 남겨진 자만 외로운 법이다. 화두를 품고 고민하며 다투는 것도 어쩜 외로움을 이기려는 인간들의 몸짓인지 모른다. 논자(論者)들의 사상이야 불교든 기독교든 경계를 두지 않는 게 평등안(平等眼)으로 사는 것이리라. 상주와 몇 마디 나누다 일어섰다. 친구가 옷깃을 당기는 것 같다. 고개를 저었다. 그의 손길을 냉정하게 뿌리쳤다. ‘맞는 예(例)인지는 모르겠지만 살불살조(殺佛殺祖)라고 네가 말했잖아. 넌 거기서 살아. 난 널 지우고 건강한 친구 만나서 헤어지지 않고 잘 살 거야.’ 영안실을 빠져나왔다. 눈 부신 햇살이 거리로 쏟아진다. '새로운 논쟁시대?' 이제 누구와 담론을 나누며, 누가 나의 스승이 되어줄까. 

김 광 수필가. 사진=주간한국 제공 김 광 수필가. 사진=주간한국 제공

◆김 광 주요 약력

△전남 목포 출생 △'계간수필' 등단(2004) △갯벌문학 전, 편집주간 △제3회 농촌문학상 △계간수필 수필문우회 부회장 △수필집 '숨비소리' '내게서 온 편지(여행에세이)'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