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강자에서 신기술 선도학교로…특성화고 제2도약 노린다

연합뉴스 2024-10-07 07:00:37

천안여상, 글로벌 기업인 SAP·AWS와 손잡고 '협약형 특성화고' 지정

'비즈니스 플랫폼 인재 양성' 목표로 체질 개선 박차…"취업률 90% 이상 만들 것"

인공지능(AI) 수업 중인 천안여상 학생들

(천안=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 "안경 벗어봐.", "와 신기하다."

지난달 30일 충남 천안 동남구에 소재한 천안여상에서는 3학년 학생 10여명이 인공지능(AI) 과목의 수업을 듣고 있었다.

학생들 2∼3명에게 한 대씩 보급된 노트북 웹캠으로 학생 각자의 사진을 여러 방면에서 찍어 업로드하고, AI가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이었다.

AI의 학습 이후 다른 학생의 얼굴을 웹캠으로 다시 비추면 처음 학생과 얼마나 닮았는지 구체적인 퍼센트(%)가 제시됐다.

흥미진진한 수업에 학생들 사이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전통 산업으로 분류되는 상업을 가르치는 이 학교에서도 벌써 미래 산업인 AI가 교실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교육부 협약형 특성화고'로 지정되면서 천안여상은 또 한 번 체질 개선에 나선다.

AI 수업도 지금은 기초소양 수준에 머무르지만 앞으로 심화 단계까지 이르도록 한다는 것이 이 학교의 구상이다.

인공지능(AI) 수업 중인 천안여상 학생들

◇ 천안여상, 미래 경쟁력 위해 체질 개선…교육부서 45억원 지원

1972년 개교한 천안여상은 설립 이래 여성 직업인을 육성해온 학교다.

전교생이 700명 가까이 이르지만 그동안 신입생 모집에 미달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탄탄한 역사를 자랑한다.

그러나 컴퓨터와 회계 위주의 교육과정만으로 안주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천안여상에서도 작지 않았다.

산업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직업인을 육성한다는 특성화고가 계속해서 같은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 탓이었다.

천안여상은 학교의 생활권인 천안·아산 지역에 산업단지가 많고 산업단지 내에 클라우드 분야 기업이 많다는 데에서 변화의 실마리를 착안했다.

이에 '비즈니스 플랫폼 특화 교육과정' 위주로 학과를 재구조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천안여상은 독일에 본사를 둔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기업인 SAP코리아 및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손잡았다.

'지역과 함께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플랫폼 인재 양성 선도학교'라는 비전을 내걸고 지난 5월 교육부 협약형 특성화고로 당당히 선정됐다.

교육부는 천안여상에 교육과정 개편 준비금 20억원과 5년간 매년 5억씩 총 45억원을 지원한다.

신태귀 교장은 "상고로서 제2의 도약을 하기 위해 신청했다"며 "기계장비 투자가 필요한 공고와 달리 상고에서 이렇게 큰돈을 지원받은 적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중인 신태귀 천안여상 교장

◇ 글로벌 기업과 손잡고 교육과정 개편…"취업률 90% 목표"

SAP코리아, AWS와 손잡은 천안여상은 현재 금융정보과, 비즈니스정보과, 국제통상과를 내년도 신입생이 2학년이 되는 2026학년도부터 비즈니스 플랫폼, 유통 플랫폼, 재무 플랫폼 전공으로 세분화할 계획이다.

SAP는 머신러닝, 사물인터넷(IoT) 등을 활용해 기업이 업종과 규모에 관계 없이 '지능형 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업이다. 현재 글로벌 100대 기업 중 99곳이 SAP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AWS는 클라우드 시장 글로벌 점유율 1위 기업이다.

천안여상과 SAP코리아, AWS 사이 다리를 놓은 것은 충남교육청이었다.

충남교육청이 먼저 SAP코리아, AWS와 접촉해 전략적 교육 협력 방안을 논의하다가 천안여상의 학과 재구조화에 함께 하기로 했다.

SAP는 학생들이 졸업 후 즉시 기업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교재도 개발한다.

또 교사 양성 프로그램에도 전문 컨설턴트를 직접 파견해 교육 현장의 실무교육을 지원할 예정이다.

AWS도 교육과정 설계, 교재 개발에 공동으로 참여한다.

SAP 코리아 측은 "독일에서는 고등학생들이 SAP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학습과 실무 경험을 동시에 쌓고 업계로 진출한다"며 "천안여상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인 학생에게 독일 본사에서 연수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다양한 이벤트·취업 연계 컨설팅까지 양질의 지원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인 천안시청도 협약형 특성화고 지정 기간인 5년간 매년 1억원을 천안여상에 지원한다.

관내 대학이 많은 천안 지역 특성상 대학도 아닌 고등학교, 그것도 단위 특성화고에 1억원을 지원하는 것은 흔치 않은 사례라고 한다.

천안 지역은 다른 협약형 특성화고와 달리 당장 학령인구 감소를 걱정해야 하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저출생 속도가 빠른 탓에 언제까지나 학령인구 감소 여파가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구상대로 교육과정을 개편해 취업시킨다면 졸업생 정주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천안여상은 보고 있다. 군 복무 의무 등이 있는 남학생과 달리 여학생의 정주율이 일반적으로 높고, 졸업생들 역시 현재도 취업 후 상당수가 정주하고 있어서다.

현재 천안여상의 지역 내 취업률은 67.7%, 지역 내 정주율은 70.2%다.

신 교장은 "졸업생들의 취업에는 자신이 있다"며 "변화된 교육과정으로 더 좋은 학생들이 나온다면 산업체에도 많이 배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취업률과 지역 정주율을 각각 90%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porqu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