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끼삐끼' 춤추는 왕·드레스 입은 탑…박물관의 특별한 런웨이

연합뉴스 2024-10-06 19:00:52

코스프레로 박물관 유물 소개하는 '국중박이 살아있다' 열려

'일월오봉도와 함께 찰칵'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펼쳐지고 그 아래로 푸른 물길이 흘러내린다.

조선시대 왕이 앉았던 자리 뒤에 놓인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다.

음양의 이치에 따라 정치를 펼친다는 의미를 담은 이 그림이 유리 진열장 너머가 아니라 레드카펫에서 관람객에 한 걸음 다가섰다. 박물관에서 펼쳐진 '런웨이'를 통해서다.

해와 달 그림 대신 붉은색과 흰색으로 칠한 얼굴을 내밀었고, 왕은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삐끼삐끼 춤'을 추며 관객들의 박수를 이끌었다.

6일 오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국중박이 살아있다' 행사는 평소 교과서에서 볼 법한 박물관 전시품을 생생하게 만나는 특별한 자리였다.

하얀 드레스로 표현한 '경천사지 십층석탑'

박물관의 '국중박 정모(정기 모임의 준말)'의 시작을 알리는 이번 행사는 유물을 콘셉트로 한 선보이는 코스프레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처음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박물관을 어렵게 생각하는 청년 세대가 박물관을 편하게 방문하고 싶은 모임 장소로 떠올리게 만들고자 만든 자리"라고 소개했다.

지난달 예선을 통과한 20개 팀은 개성 있는 무대를 통해 가장 좋아하는 유물을 소개했다.

백제 금속 공예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히는 국보 '백제 금동대향로'부터 조선 후기 대표적 문인 서화가인 강세황(1713∼1791)의 자화상, 청화 백자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걸어다니는 청화백자'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국가에 기증한 동자상으로 코스프레한 한 여성 참가자는 박물관의 소장품 번호를 뜻하는 "건희 4306입니다"라고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휴일을 맞아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코스프레를 보며 즐거워했다.

사람의 모습을 한 돌조각인 석인상으로 분한 참가자가 계단을 내려오자 혹여 넘어질세라 '천천히'라고 외쳤고, 김홍도(1745∼?)의 풍속화 '씨름'을 따라 한 모습에는 박수로 응원했다.

어린아이들은 코스프레 모습이 신기한 듯 한참 쳐다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국중박에서 열린 전시품 코스프레

심사위원 5명이 무대 매너, 창의성, 완성도 등을 평가해 선정한 대상은 국보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형상화한 의상을 선보인 이은미 씨에게 돌아갔다.

프릴(잔물결) 장식으로 꾸민 옷과 모자로 탑을 표현한 이씨는 스케치북에 '저는 1348년 개성에서 태어났어요'라고 적은 글을 보여주는 등 유물 역사를 함께 소개해 주목받았다.

이씨는 "어떻게 하면 석탑을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옷을 만드느라 힘들었다"면서도 "매년 행사가 열려 다양한 유물을 소개할 수 있으면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딸, 6살 아들과 함께 박물관을 찾았다는 이고은 씨는 "평소 박물관 유물은 책에서만 보는 경우가 많은데 색다른 볼거리를 즐길 수 있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고려의복 입고 걷는 런웨이

박물관은 이날부터 13일까지 '국중박 정모' 행사를 이어간다.

정보무늬(QR) 코드를 따라 박물관 야외 정원 구석구석을 탐험할 수 있는 보물찾기 형태의 '국중박 투어', 청자정에서 열리는 다도 체험 등이 진행된다.

한글날인 9일에는 청년 예술인이 전통과 시대에 대한 고민을 민요와 판소리로 풀어내는 야간 공연이, 12∼13일에는 탭댄스, 코러스 등 거리공연이 펼쳐진다.

'살아 움직이는 금동대향로'

ye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