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레이더] 수해 복구도 안됐는데 벼멸구 습격…속타는 농심

연합뉴스 2024-10-06 10:00:27

전남·전북·경남 등 여의도 117배 면적 피해…특별재난지역 요청

지난 2일 전남 보성군 간척지에서 벼멸구 피해를 본 벼가 누렇게 변하고 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지난달 기록적인 호우로 큰 피해를 본 전국 벼 농가에 벼멸구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이중고를 안겨주고 있다.

본격적인 벼 수확기를 앞두고 병해충 피해가 들불처럼 번지자 농민들은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비롯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호소하고 나섰다.

◇ 여의도 117배 면적 피해…고온 영향으로 급속 확산

6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달 초 기준 벼멸구 피해를 본 전국 농지 면적은 3만4천140㏊(헥타르·1㏊는 1만㎡)로 서울 여의도 면적(290㏊)의 117배에 달한다.

벼멸구는 벼의 줄기에서 즙액을 먹는 병해충으로, 벼멸구가 생기면 벼가 잘 자라지 못하고 심하면 말라 죽게 된다.

벼멸구 확산으로 인해 일부 농지에서는 볏대가 폭탄을 맞은 듯 주저앉는 '호퍼번'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전국적인 호우로 1만4천㏊가 넘는 벼 재배지가 물에 잠긴 데 이어 벼멸구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수확기를 앞둔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지는 모습이다.

벼멸구는 주로 6∼7월 중국 남부에서 바람(기류)을 타고 우리나라로 날아온다.

올해는 지난달까지 고온 현상이 이어지면서 벼멸구가 확산했고 피해 규모도 급격하게 커진 것으로 분석됐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 전국 벼멸구 피해 면적은 1천45ha로 올해의 3% 수준"이라며 "올여름 무더위가 9월까지 이어지면서 벼멸구가 대거 번식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벼멸구 피해현장 찾은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

◇ 전남에 전체 피해 면적 57%…전북·경남·충남 등 속출

벼멸구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전남 지역은 전체 벼 재배면적(14만7천700㏊) 중 13.3%에 해당하는 1만9천603㏊에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국 피해 면적의 57%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전북과 경남의 벼멸구 피해 면적도 각각 7천187㏊와 4천190㏊로 크고, 충남(1천665㏊)·경북(872㏊)·충북(623㏊) 등지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이 외에 농식품부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울산과 경기도에서도 5ha와 2ha 정도 피해 농가가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일선 지방자치단체는 신속하게 벼멸구 방제 예산을 확보하는 등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남 해남군과 곡성군 등 지자체는 긴급 방제 약제비를 편성하고 벼멸구 방제 약제를 확보해 농가에 공급하고 있다.

해남군은 전체 벼 재배면적인 1만9천727㏊를 방제할 수 있는 약제 2만2천병을 14개 읍면에 배부했다.

전북도는 벼멸구 확산 방지 차원에서 도비 5억원을 포함한 12억5천만원을 투입해 방제에 나섰으며 농식품부에 피해 조사와 복구비 지원을 건의했다.

경남도는 농작물 병해충 방제비와 공동방제비 등을 피해 지역에 지원하고 벼멸구·혹명나방·흰등멸구 등에 대한 긴급 합동 예찰을 진행했다.

충남도 농업기술원은 기후 위기로 내년에도 벼멸구를 비롯한 병해충 피해가 클 것으로 보고 신속한 방제를 위한 예산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

벼멸구 피해 재해인정 촉구 기자회견

◇ "정부 지원 절실…특별재난지역 선포해야"

벼멸구 피해가 집중된 전남도 등 지자체와 농민단체들은 기록적인 호우에 이어 벼멸구까지 확산하면서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며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요청하고 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지난 2일 "벼멸구로 연약해진 벼가 집중호우로 인해 피해가 더욱 가중됐다"며 벼멸구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전남지역 기초단체장과 농민들은 벼멸구 피해를 농업재난 재해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전남 시장군수협의회는 "기록적인 폭우와 무더위 등 이상기후로 농작물 피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근본적인 구제책을 촉구했다.

협의회는 "지난달 25일 기준 쌀값은 (80㎏ 한 가마에) 17만5천592원으로 하락했다"며 "지난해 정부에서 약속한 산지 쌀값 20만원 유지와 수급 안정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등 지역 농민단체도 "본격적인 수확기가 시작됐는데 쌀값 폭락과 벼멸구 피해 등 자연재해가 심각해 농민의 마음은 타들어 간다"며 자연재해 인정을 촉구했다.

농식품부는 우선 벼멸구 피해 벼를 전량 매입하기로 결정했으며 벼멸구 피해를 기상재해로 인정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병해충 피해를 호우나 태풍처럼 기상재해로 볼 수 있는지는 추가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기상재해로 인정할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올 경우 피해액 등 관련 기준을 토대로 특별재난지역 선포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장덕종 김용태 박정헌 이우성 홍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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