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가창신공] 남기연, 트로트 전문 편곡자 ‘20년 한길’

스포츠한국 2024-10-05 13:54:16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남진, 주현미, 조항조, 강진, 진성, 김연자, 유지나, 금잔디, 송대관, 강혜연, 적우, 박일준, 박우철, 현숙, 정의송, 배일호, 김태연, 김다현, 박서진, 그리고 김영임 ‘부초같은 인생’과 임영웅 ‘두 주먹’까지 많은 가수의 노래를 편곡했다.

2024년 10월 5일 기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1058곡이 등록돼 있다. 3일엔 1057곡이었는데 이틀 만에 한 곡이 추가된 것이다. 이처럼 일주일 평균 곡 수가 꾸준히 늘어날 만큼 현 트로트 음악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편곡자 중 하나다.

며칠 전 발매한 김연자 ‘인생의 답’도 그가 편곡했다. 이어 정의송 작곡가의 곡, 그리고 홍지윤, 한혜진, 박애리 등 여러 가수의 곡 작업이 예정돼 있다.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에선 월 평균 20곡 내외의 많은 편곡 작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트로트 전문 편곡가 남기연(54)을 만났다.

남기연은 편곡자이기 이전에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2010년부터 조항조 투어밴드 기타리스트로도 7년 넘게 활동했고 신유, 남진 등 많은 가수 공연은 물론 소명, 유현상, 임주리, 서지오, 전승희, 조승구 등이 함께한 ‘아이 러브 트로트’ 콘서트 기타 세션도 맡았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자신이 편곡한 곡의 기타 세션은 모두 직접 실연하고 있다. 학생 시절엔 리치 블랙모어와 잉베이 맘스틴, 이후 현재까지 스티브 루카서와 누노 베텐커트를 가장 좋아한다고.

기타리스트 출신의 편곡자인 남기연은 20곡 넘게 작곡도 했다. 2004년에 작업한 오은주 ‘콕박힌 그대’(2006년 발매)는 남기연이 작곡과 편곡을 한 성인가요 데뷔곡이다.

남기연이 편곡자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건 김영임 ‘부초같은 인생’과 금잔디 ‘오라버니’ 부터다. 두 곡 모두 발매 당시 작곡가들을 비롯한 여러 작품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으며 입소문을 탔다. ‘부초같은 인생’과 ‘오라버니’가 크게 히트하며 이를 계기로 남기연에게 편곡 의뢰가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영임 ‘부초같은 인생’을 편곡할 당시 트로트계에선 40대 작품자가 드물 만큼 연령층이 높은 베테랑 작업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저는 30대였어요. 작품자들이 녹음실에 모두 모여 김영임 님의 앨범 수록곡 11트랙을 하루 동안 녹음했는데, 가장 나이가 어린 저를 보며 다들 ‘신기하다’ ‘신선하다’ 하시며 제 작업물과 저에 대해 칭찬해주시더군요. (웃음)”

비슷한 시기에 편곡 작업한 유진표 ‘천년지기’도 전국의 노래교실에서 많은 인기를 얻으며 남기연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하기에 이른다.

“편곡계에 뛰어든 초기엔 작업 속도가 느렸어요. 이후 꾸준히 작업하며 이젠 하루 한 곡 편곡할 수 있을 만큼 빨라졌습니다. PC에 디폴트 값이 저장돼 있기도 하고, 머릿속에도 있어서 몇 배 빠르게 작업하며 많은 곡을 소화할 수 있게 된 거죠.”

정의송의 대표곡 중 하나인 ‘그랬었구나’는 남기연의 편곡 크레딧 중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완성했다. 이 곡은 국내에선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중국에서 크게 히트했다. 정의송이 지방 라디오방송에 출연했을 때, 프로그램 진행자가 정의송의 말이 끝날 때마다 “그랬었구나”라는 표현을 자주 했다. 여기에 힌트를 얻어 쓴 곡이 ‘그랬었구나’다.

“오늘 중으로 작업해달라”는 정의송의 요청으로 남기연은 오후 5시경 녹음파일을 받은 즉시 곡을 들으며 채보, 악보로 완성해 저녁 11시에 모든 편곡 작업을 끝냈다. 불과 6시간 만에 초스피드로 끝내 정의송에게 보냈다.

1995년 김기하 세션 시절. 1995년 김기하 세션 시절.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앞서 다른 곡 보다 편곡에 더 많이 신경을 쓴 게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값진 교훈을 얻었다. 주현미의 ‘주왕산’이다.

2014년 박현진 작곡가가 경북 시 협찬받아 ‘청송’ 지역을 주제로 음반을 제작했다. 이 음반엔 주현미, 박구윤, 현숙, 박현진, 김양 등 5명의 가수가 부른 곡이 실렸는데, 남기연은 이 앨범 전곡 편곡을 맡았다.

주현미를 너무 좋아했던 남기연은 주현미가 부른 앨범 수록곡 ‘주왕산’이란 곡을 특히 신경 많이 써서 작업하려 했다. 자신이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 주현미로부터 “편곡 잘한다”는 칭찬을 꼭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정하고 또 하며 완벽을 기했지만, 오히려 이게 역효과로 나타났다. 계속 수정하는 와중에 노래의 흐름이나 맥이 맞지 않게 됐고 곡 자체가 꼬여버리게 된 것이다.

“너무 멋진 걸 ‘주왕산’ 곡 사이사이 넣으려고 하다 보니 언밸런스가 난 겁니다. 그래서 수정하려 했지만, 시간이 없어 결국 그 상태로 보내야 했어요. 저는 ‘다 망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앨범이 발매돼 들어봤어요 ‘주왕산’은 다른 수록곡들에 비해 편곡이 안 좋았지만, 주현미 선생님이 노래를 너무 잘하니까 오히려 ‘주왕산’이 수록곡 중 제일 좋게 들렸습니다. 음악에선 작곡도 편곡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노래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있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죠. 가수가 탁월하면 부족한 편곡도 해결할 수 있고. 노래하나가 모든 걸 다 덮어버린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남기연은 ‘천재’ ‘신동’이란 평가를 들으며 음악계에 등장한 김태연의 ‘홍키통키’, ‘계산공주’, ‘애심가’, ‘고개타령’, ‘수고했어요 오늘도’ 등을 작업했다.

“TV에서 김태연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런데 노래할 때 어린애의 눈빛이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마치 신들린 것처럼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죠. 저로선 이런 건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더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이를 계기로 김태연을 마음에 담아두던 중 곡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남기연은 김태연 소속사 이제이 대표와도 친분이 있고 김태연의 곡을 쓴 작사가 김동찬과도 오랫동안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동찬 님은 원래 작사가로 많은 히트곡을 쓰신 분입니다. 십여 년 전부터 작곡도 하고 있죠. 그런데 작곡 실력이 장난 아닙니다. 웬만한 히트곡 작곡가들보다 곡을 더 잘 쓰세요. 천재적인 재능. 정말 놀라운 분이죠. 김연자 신곡 ‘인생의 답’도 김동찬 님이 작사·작곡을 했습니다.”

남기연은 남진 ‘밥사는 사람’과 ‘영원한 내사랑’을 편곡했다.

“남진 선생님은 여전히 음악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제게 직접 전화해 편곡의 세세한 부분까지 의견을 피력하세요. 예를 들어 ‘밥사는 사람’의 피아노 멜로디나 어느 부분에선 트럼펫이 나왔으면 좋겠다 등 구체적으로 의견을 말씀하시곤 합니다. ‘영원한 내사랑’의 경우 남진 선생님이 직접 입으로 흥얼거리며 곡의 후렴 부분에 이런 식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등의 의견을 내시며 더 좋은 곡으로 나오는 데 일조하셨습니다.”

“남진 선생님은 매너도 너무 좋으십니다. 편곡 작업이 끝난 후 ‘수고했다’며 밥도 사주시는 등 자상하고 친절하기 이를 데 없는 분이죠.”

'영원한 내사랑'  작업 마치고 기념컷. 왼쪽부터 남진, 남기연, 김동찬. '영원한 내사랑' 작업 마치고 기념컷. 왼쪽부터 남진, 남기연, 김동찬.

유명 무명 구분하지 않고 최대한 가수의 의견을 많이 듣고 편곡에 반영하자는 게 남기연의 작업 철칙이다. 때에 따라선 이런 게 성가신 일일 수 있지만 그는 “더 좋은 작품 탄생을 위한 ‘소통’이라 여긴다”며 “절대 귀찮지 않다”고 말했다.

송대관 ‘지갑이 형님’도 작업시간이 많이 걸린 곡 중 하나다.

‘네 박자’ 등 여러 곡에서 알 수 있듯이 송대관은 그만의 전형적인 트로트 스타일이 있다. 이 곡을 쓴 차태일 작곡가는 남진 ‘둥지’, ‘나야 나’, ‘이력서’, ‘파트너’ 등으로 유명하다. 어쩌면 송대관 스타일과는 다른 풍의 곡을 많이 쓴 작곡가랄 수 있다.

“저와 계속 일을 할 사람은 작곡가이므로 일단 작곡가가 요구한 스타일대로 편곡해서 보냈습니다. 이후 송대관 선생님은 곡을 듣고 80~90%는 아니라며 수정을 요구할 것이라 판단했고 그럼 그때 가서 송대관 선생님의 요구에 맞춰 수정하기로 하고 일단 작곡가 요구대로 작업한 것이죠. 결국 예상대로 송대관 선생님의 각종 수정 사항이 오가며 편곡에만 1주일 이상 걸렸습니다.”

‘하고 살자’, ‘인생가’, ‘인생무대’, ‘뻔할뻔자’ 등 강진 곡도 여럿 편곡했다. 강진은 바이올린의 화려한 사운드 등을 선호한다. 이를 위해 스트링 세션팀인 ‘잼스트링’이 가세하기도 했다. 남기연은 노트북을 갖고 강진 방배동 저택을 찾아 장시간 함께 작업하며 실시간 수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작업한 노래가 ‘하고 살자’다.

강혜연 '천치바보야' 작업 회의 중인 남기연. 강혜연 '천치바보야' 작업 회의 중인 남기연.

강혜연 ‘그냥 가면 어쩌나’와 ‘천치 바보야’도 작업했다.

“강혜연은 예쁘고 인성도 너무 좋은 가수입니다. 노래도 당연히 너무 잘하죠. 강혜연이 작업하러 스튜디오에 들어오는 순간 강혜연만의 그 밝은 기운으로 실내가 유쾌하고 환하게 바뀔 정도입니다. 앞으로 강혜연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잘 되리라 확신합니다. 개인적으로 그간 함께 작업한 여가수 중에선 강혜연이 ‘느낌’이란 면에선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임영웅 ‘두 주먹’도 편곡했다. 당시 임영웅 매니저였던 신정훈 대표가 남기연 집으로 찾아와 장시간에 걸쳐 수정하며 완성했다. 음원 믹싱하는 날 임영웅과 처음 만났다. 당시 초교 1학년이던 아들을 데리고 갔었는데, 아들의 성화로 임영웅과 기념사진을 찍게 해줬다.

“아들이 임영웅과 같이 찍은 사진을 가족들 단톡방에 올렸는데, 조카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왜 자기들은 데리고 가지 않았냐며 따지는 등 엄청나게 투덜거렸어요. 임영웅의 인기를 또 한번 알 수 있게 됐죠. (웃음)”

임영웅 ‘두 주먹’은 TV방송 한 번으로 음원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두 주먹’은 임영웅이 ‘미스터트롯’ 마지막 날 방송에서 부른 이후 거의 부르지 않은 걸로 압니다. 그런데 이날 방송된 음원이 꾸준히 사랑받으며 ‘부초같은 인생’과 ‘오라버니’를 10년 합친 저작료 정산에 버금가는 액수 만큼 많이 나왔습니다.”

남기연은 젊은 세대 중 특히 돋보이거나 관심이 가는 가수로 한강, 박혜신, 정일송, 김태욱, 박민주 등을 꼽았다.

남기연 is 

1970년 인천생. / 음악하던 삼촌과 음악애호가 고모부 영향으로 중3 때부터 기타. 고1 때 일렉트릭 기타로 바꾸며 딥퍼플 ‘Highway Star’. 잉베이 맘스틴 등을 카피. 입대 전부터 토토(Toto) 스티브 루카서에 심취. / 고1 때부터 인천 선인고등학교 스쿨밴드 ‘유토피아’ 리드 기타리스트 활동. 이때부터 음악의 길로 가야겠다고 결심. 당시 선인고 3학년 중 드럼을 치던 홍진규는 후일 블랙신드롬 드러머가 됨. / 1991년 육군 입대해 장원 707 특공연대 복무. 제대 후 인천 및 지방을 오가며 나이트클럽 밴드 연주. 95~97년까지 ‘나만의 방식’을 부른 김기하 밴드 기타리스트로 활동. 2000년대로 와 KBC 광주방송 및 청주 등 여러 지방 방송국의 악단/하우스밴드 멤버로 10여 년 활동. 당시 메인기타는 ‘쉑터’. / 삼익기타를 시작으로 20세 때 돈을 벌어 처음으로 낙원상가에서 빈티지 깁슨 레스폴(오리지널) 구입. 2년 사용 후 92년부터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사용. 제대 후 스티브 루카서 영향으로 ‘밸리아츠’ 기타를 구입해 10년 이상 사용. 이후 온라인 중고 거래장터 ‘뮬’ 등을 통해 뮤직맨, 쉑터, PRS 등등 여러 기타를 사고팔며 다양한 모델 경험. / 모든 기타를 처분하고 현재 야마하 퍼시피카, 라미레즈, 테일러 3대 소유.

'두 주먹' 작업 마치고 임영웅과  함께. '두 주먹' 작업 마치고 임영웅과 함께.

편곡자의 덕목‧소양

“어쨌든 내 몸에 있어야 그게 음악으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련 음악도 많이 들어보고 카피해서 악보로 그려보며 곡 진행이 어떻게 되며 왜 이런 라인을 썼고 등을 분석하곤 했습니다. 이후 이렇게 분석하며 편곡 작업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좀 의아했습니다. 제겐 이런 경험이 편곡자로 나아갈 수 있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음악 많이 듣고 많이 분석하면 반드시 도움이 됩니다. 이거 외엔 답이 없습니다.”

영향받은 편곡가 또는 ‘롤 모델’

“이승수 님입니다. 2005~6년쯤 처음 만난 이래 지금까지 제 편곡의 멘토입니다. 지금도 매년 스승의 날만 되면 꼭 안부 전화를 드립니다. 올해 이승수 님이 환갑을 맞이했는데 동료 후배 편곡자들을 불러 환갑잔치도 해드릴 만큼 제겐 남다른 분이죠. 저의 영원한 롤모델이자 멘토입니다. 이외에 정경천, 송태호 님 등이 작업한 곡을 들으며 공부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엔카를 듣다 보면 가끔 기발하고 멋진 편곡을 접하게 됩니다. 스트링(현) 잘 쓰고 아기자기한 음악 구성도 좋고….”

남기연은 2005년 아내 권현진을 처음 만났다. 권현진은 세션 코러스 보컬로 활동하고 있는 음악인이다. 일 때문에 처음 만났지만, 시간이 한참 흘러 연애로 발전했고 2013년 결혼했다. 슬하에 2남(초교 5학년, 3학년)을 두고 있다. 43세란 늦은 나이에 결혼한 만큼 시간만 나면 애들과 함께 보내는 걸 좋아한다.

담배는 하루 반갑에서 한갑, 주량은 소주 1~2병.

“트로트의 매력은 멜로디가 쉽고 노인들까지 쉽게 따라부를 수 있다는 겁니다. 온갖 사람 사는 얘기가 담겨 있는, 사람 냄새 나는 장르가 트로트입니다.”

남기연은 기회가 된다면 트로트 히트곡을 팝으로 편곡해 연주곡으로 발표하고 싶다고 했다. 워렌 힐의 ‘Hey Jude’ 같은.

“그간 작업한 많은 곡 중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곡으로 ‘부초같은 인생’과 ‘오라버니’를 꼽고 싶습니다. 편곡자로서 자리를 잡게 해준 곡일 뿐 아니라 제 스타일이 잘 나타난 곡이기 때문입니다.”

“음악계에서 활동하며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하거나 돈으로 장난을 치는 사람을 자주 봤습니다. 제가 음악계에서 오래 일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신뢰감 때문이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사람들이 저에겐 믿고 맡길 수 있는, ‘남기연이는 장난하는 애가 아니야’란 말을 계속 들으며, 음악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존재로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