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1] 이경은의 독서에세이...에밀 졸라의 '결혼, 죽음'

데일리한국 2024-10-04 21:28:37

그가 걸어가는 발자국마다 '나는 고발한다'라는 함성이 신발 밑창으로부터 새어 들어온다. 피할 수 없다. 신발을 바꿔 신어도 소용없다. 한번 비에 젖은 신발에서 나는 냄새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나에게 두 사람의 외국 소설가를 뽑으라면 도스토예프스키와 에밀 졸라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무조건 좋아해서이고, 에밀 졸라는 읽으면서 맨 마지막 장을 덮을 때마다 매번 놀라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대한 환상이 있었지만, 프랑스에 열망이 있지는 않았다. 러시아 여행을 할 때 프로그램에 일부러 밤 열차 여정을 넣었다. 창문으로 자작나무 숲을 내다보고 싶어서... 밤새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고 눈이 빠지게 내다봤다. 하지만 자작나무는 시시해서 맥이 빠졌고, 서운한 마음을 여행 가방에 쑤셔 넣어야 했다. 프랑스 일주 여행은 느닷없이 떠나게 되었는데, 왜 모든 예술가들이 이 땅으로 오는지를 알 것 같았다. 역시 여행은 현장 체험이다.

사실 나는 자연주의 대가라는 말보다는 그저 에밀 졸라의 소설이 재미나서 부터 , 그리고 맨 끝으로 을 읽었다. 저 이라는 하나의 작품 때문에 폴 세잔과 이별한 일은 가슴 아프다. 우정인가, 작가인가. 늘 답변이 궁해지는 질문이다.

소설 을 보는 순간, 궁금했다. 결혼이 죽음인가. 결혼 옆에는 늘 죽음이 파트너처럼 어슬렁대고 있나. 결혼과 죽음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며 책을 폈다. 단편소설이라 짧은데 그 여운이 길고, 처절하게 냉담하다. 차라리 칼로 베이듯이 날카로운 게 낫겠다. 뭐 풍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입 안의 모래처럼 꺼끌거리고, 너무 대놓고 들여다봐서 건조하고 메마르다. 그의 장편에서 보았던 눙치는 맛도 적다. 내가 손에 땀을 내면서 보았던 같은 감정이입도 없다. 게다가 프랑수와 모리악의 까지 보게 만드는 힘도 없다. 

그런데 결혼과 죽음의 진실한 모습을 제대로 직면한 기분이 들었다. 재미있는 서사나 감동어린 장면도 없고, 서점의 맨 위나 맨 아래 칸에 놓일 것 같지만 먼지를 툭툭 털고 보니 보물 같은 책이다. 

피하지 않아서 엿볼 수 있었다. 결혼과 죽음이라는 뒷그림자를. 내 안의 굉음을 울리는 진실을. 마르틴 루터의 그 유명한 진실의 말을. "와인은 강하다. 왕은 더 강하고, 여자는 더욱 더 강하다. 그러나 가장 강한 것은 진실이다" 며칠 후 새벽, 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결혼과 죽음이 바로 '삶'이 아닌가.

깊고 싸한 메독와인에 올리비아 투쌩(Olivier toussaint)의 를 듣는 책! 

◆이경은 주요 약력

△서울 출생 △계간수필(1998) 등단 △수필집 '내 안의 길' '가만히 기린을 바라보았다' '주름' 외 6권. △그 중 수필 작법집 '이경은의 글쓰기 강의노트', 포토에세이 '그림자도 이야기를 한다', 독서 에세이 '카프카와 함께 빵을 먹는 오후' △디카 에세이집 '푸른 방의 추억들' △한국문학백년상(한국문협 주관), 율목문학상, 한국산문문학상, 숙명문학상 등 수상 △현재 방송작가, 클래식 음악 극작가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