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대온실에 어떤 비밀이…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

연합뉴스 2024-10-04 12:00:24

김금희 작가 신작…"그 시절 존재들이 모두 정당히 기억되기를"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김금희 작가의 신작 장편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동양 최대 유리 온실이었던 창경궁 대온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이다.

30대 여성 영두는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된다. 한적한 섬마을 석모도 출신인 영두는 중학생 때 창덕궁 담장 옆 동네인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서 잠시 유학을 한 적이 있다. 영두는 창경궁이라는 말을 듣자 마음이 서늘해진 것을 느끼며 일을 맡기를 주저하게 되고, 당시 하숙을 했던 낙원하숙 주인 할머니 문자와 그의 손녀 리사와 함께 생활했던 일을 회고한다.

주인공 영두가 써 내려가는 창경궁 대온실 수리 백서는 단순한 문화재 수리 보고서가 아니다. 우리의 아픈 근대사와 상처받은 생의 한순간을 복원하고 재건하는 치유의 과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대온실을 보수하는 공사 도중 모두를 놀라게 하는 비밀이 땅 밑에서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반전을 맞고, 영두는 하숙집 주인 할머니 '문자'의 사연과 관련이 있음을 직감하고 더욱더 그 일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소설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평생 비밀을 간직해온 하숙집 주인 할머니 문자, 그 비밀을 파헤치면서 자신의 상처와도 직면하게 되는 영두 두 인물 외에도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혼자 남게 된 영두와 공인중개사로 일하며 혼자 아이를 키우는 친구 은혜, 일찍 철이 든 은혜의 딸 산아 세 사람이 함께 밥을 지어 먹고 일상의 고민을 나누는 대목들은 또 다른 대안 가족의 모습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건축사 사무소에서 일하는 개성 넘치는 직업인들의 작업을 세세히 묘사하는 대목, 작가가 실제 창경궁 대온실 공사의 총책임자였던 후쿠다 하야토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창조한 캐릭터 후쿠다 노보루의 이야기 등 중심 서사를 풍성하게 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흥미로운 독서 체험을 선사한다.

창경궁 대온실

일제의 잔재로 낙인찍혀 환영받지 못하다가 숱한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창경궁 대온실은 격동의 한반도에서 살아남은 모든 이들의 숭고한 생의 의지를 표상하는 것 같다.

작가는 이런 창경궁 대온실을 '생존자'에 비유했다.

"한때는 근대의 가장 화려한 건축물로,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대중적 야앵(夜櫻·밤 벚꽃놀이)의 배경지로, 역사 청산의 대상으로 여러 번 의의를 달리한 끝에 잔존한 창경궁 대온실은 어쩌면 '생존자'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건축물과 함께 그 시절 존재들이 모두 정당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에게도 이해되기를."('작가의 말'에서)

아픔의 역사와 맞물린 내밀한 사연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솜씨 좋게 엮은 이 소설 한 권을 들고 가을의 고즈넉한 고궁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창비. 420쪽.

yongl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