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김 감독 "해녀는 한국 대표 여성상…힘과 독립성 보여주죠"

연합뉴스 2024-10-04 00:00:48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마지막 해녀들'…유사프자이·A24 제작

"예전엔 천시당했는데…영화제 오니 눈물날 정도로 반가워"

다큐멘터리 영화 '마지막 해녀들' 연출한 수 김 감독

(부산=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제주를 중심으로 수백 년간 명맥을 이어온 해녀는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인 여성으로 꼽힌다.

이들이 잠수복 하나에 의지해 목숨을 걸고 잡은 전복과 문어, 소라는 자식의 밥이 되고 학비가 됐다.

그러나 해녀들을 향한 세상의 시선은 모질었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해녀는 '천한 직업'으로 인식됐다.

사회가 차츰 변하고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며 이 같은 편견은 옅어졌지만, 여전히 미디어에서는 해녀를 신비한 존재나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곤 한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 수 김(한국명 김수경)은 자신이 곁에서 직접 관찰한 '진짜 해녀'를 카메라에 담아 애플tv+ 다큐멘터리 영화 '마지막 해녀들'로 내놨다. 강인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공동체 의식이 끈끈하면서도 독립심은 강한 게 그가 본 해녀들의 모습이다.

"해녀 문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미디어에선 늘 서사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도 힘든 일을 하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식으로요. 하지만 제가 본 해녀들은 일을 즐겁게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김 감독은 3일 부산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해녀들은 한국의 여성상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마지막 해녀들'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에 초청돼 부산에 머무르는 중이다.

"해녀는 한국에서 일하는 여성의 첫 세대라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여자가 직업을 갖는 게 자연스럽지 않았지만, 해녀는 제주를 준(準) 모계 사회로 만드는 데 공헌했지요. 해녀는 제게 여성의 힘과 권익 신장, 독립성을 함의하는 말로 다가옵니다"

그는 부모님과 함께 휴가차 제주에 갔던 여덟살 때 해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 해녀에 관한 각종 정보를 수집하며 이들의 문화를 공부했다.

"처음 본 해녀들은 정말 대담하고 두려움이 없고 확신에 가득 찬, (선입견과는) 다른 버전의 한국 여성이었어요. 완전히 매혹됐죠. 그러다 10년 전쯤 제주에서 여든네 살의 해녀 한 분을 만났는데, 다른 젊은 해녀들은 어디로 갔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마지막 세대다'라고 답하시더라고요. 더 늦기 전에 해녀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해녀가 잘 알려진 직업이 아니다 보니 선뜻 제작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스튜디오는 없었다. 김 감독은 넷플릭스 측에도 문의했지만 "너무 특수성을 가진 이야기"라는 답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노벨평화상을 받은 파키스탄 출신 시민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제작사 엑스트라커리큘러 프로덕션이 첫 작품으로 '마지막 해녀들'을 만들겠다는 뜻을 전달해왔다. 미국의 유명 독립 영화사인 A24도 제작에 참여하고 애플tv+는 플랫폼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

김 감독은 "이 영화가 시작되도록 문이 열린 건 인도주의자로서 업적을 쌓은 유사프자이의 명성 덕분"이라면서 "이 영화에 신뢰와 지지를 보여주면서 해녀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도록 도와줬다"고 강조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마지막 해녀들' 속 한 장면

영화에는 물질을 하는 해녀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이들의 일상과 해양 오염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 담겼다. 72세의 해녀 장순덕 씨가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맞서 유엔(UN) 사무국에서 연설한 장면도 나온다.

김 감독은 캐스팅을 위해 10여개의 해녀 공동체를 찾아다니며 출연을 부탁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제주도의 슬픈 할머니로 그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할머니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당시 이들은 "우리는 슬픈 사람들이 아니라 전사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출연자 박인숙 씨는 "우리는 맨날 바다나 밭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일만 했는데 영화를 찍자는 얘기를 해주니까 너무 영광스러웠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강주화 씨는 "영화제 행사에 참석하니 눈물 날 정도로 반갑다. 예전에는 해녀라는 직업이 너무나 천했는데, 이젠 유네스코 등재도 되고 (영화도 만들어져) 너무 반갑다"고 했다.

다시 태어나도 해녀를 할 것이라는 현인홍 씨는 "바다는 천국 같은 곳"이라면서도 "요즘은 바다에 들어가도 오염 때문에 소라는 다 죽고 전복은 껍데기밖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해녀 할머니들은 간담회가 끝난 뒤 함께 '이어도 사나'와 '멜 후리는 소리' 등 해녀들의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마지막 해녀들' 속 한 장면

ramb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