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잇는 건 항공로 아닌 서가의 통로"…신간 '서점'

연합뉴스 2024-10-03 16:01:45

문화비평가가 쓴 세계 서점 순례기

'서점: 세계를 이해하는 완벽한 장소' 표지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스페인 출신 문화 비평가이자 소설가인 호르헤 카리온은 2013년 창립 100주년을 향해 가던 스페인 서점 라 카탈로니아가 맥도날드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봤다.

1924년 카탈루냐 광장 가장자리에서 문을 연 이곳에 어느 날 공고문이 붙었다. 시민전쟁에도, 화재와 부동산 다툼에도 살아남았지만 "지난 4년 동안 지속된 도서 판매의 침체와 나날이 가중되는 도서 시장의 위기에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서점과 출판계는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 세계 크고 작은 서점을 발로 누비며 문화사적으로 탐구한 책이 번역 출간됐다. 호르헤 카리온이 쓴 '서점: 세계를 이해하는 완벽한 장소'다.

책은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부터 뉴욕 스트랜드 서점, 샌프란시스코 도그 이어드 북스, 서울 교보문고, 상하이수청 서점, 도쿄 마루젠 서점까지 동서양을 아우른 서점 순례기다.

저자는 각 서점의 역사와 역할, 인류 문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상, 그곳을 거쳐 간 지성들, 체인화 등 서점의 변화하는 모습과 미래까지 망라해 이야기한다.

세계의 서점들은 공간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곳이 있는가 하면, 독재 정권에 불편한 서점, 예술가를 끌어모으고 창작 산실이 된 곳까지 다채롭다.

세계의 서점들

파리의 유명한 독립서점인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제임스 조이스 등 세계의 문인이 찾은 살롱이었다.

1919년 서점상 실비아 비치가 문을 열었으나 독일 점령기 시기 강제수용소에 갇히는 고초를 겪으며 운영을 접었다. 이후 그 이름의 전통은 1951년부터 르 미스트랄이란 서점을 운영하던 조지 휘트먼이 이어받았다. 휘트먼은 파리에서 미군을 상대로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같은 금서를 팔았고, 서점에 숙소, 도서관을 마련했다. 지난 60년간 이 서점에 머문 사람은 10만 명에 달한다. 서점 문턱 중 하나엔 이 공간을 지배하는 모토가 적혀있다.

'모르는 이들에게 친절하라. 변장한 천사들일지도 모르니.'

뉴욕의 고담 북마트도 1920~30년대 금서 유포의 중심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까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필적할 만했다. "아나이스 닌, 헨리 밀러의 책 같은 보물이 발견되는 섬"이었으며 실험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각종 문학 강연과 축제로 명성을 쌓았다. '지혜로운 자는 여기서 낚시한다'가 이 서점의 유명한 모토다.

세계 최대 공산주의 정권인 중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은 국내 주요 도시에 '신화사' 같은 국가 차원의 초대형 체인 서점을 운영하는데, 베이징의 서점 더 북웜은 불과 몇해 전까지 반체제 도서나 금서로 분류되던 책을 선보였다. 모로코의 도시 탕헤르에 있는 콜론 서점도 반프랑코주의 저항의 참호가 되어 출판을 고취하고 망명자들을 불러 모았다.

저자는 동양의 서점에선 창고형 서점들이 상대적으로 덜 흥미롭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서울의 교보문고에 대해선 "서점 및 쇼핑몰로 이루어진 복합 공간으로, 특히 주말이면 수천 명의 시민들이 찾는다"고 소개한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저자는 "대규모 서점이 이 시대의 주요 추세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 21세기 서점 대부분은 카페, 레스토랑을 갖추는 등 다채로운 공간이 조화를 이루고, 인터넷이 가세했다고 변화를 짚는다.

그럼에도 서점은 관계의 공간이기에, 활발한 독자들이 있다면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스스로를 문화관광객이자 메타 여행자라고 칭한 저자는 "서점은 세계를 축약한다"고 강조한다.

"당신의 나라와 언어를 다른 언어권 나라들과 이어주는 것은 항공로가 아니라 서가들 사이의 통로다. 건너가야 할 것은 국경이 아니라 한 걸음(단 한 걸음)이며, 그 한 걸음을 내디디면 지형과 지명, 시간이 바뀐다."

이봄. 정창 옮김. 392쪽.

mim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