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음악을 지켜주세요"…'평화메시지' 전한 오데사필하모닉

연합뉴스 2024-10-03 12:00:23

보르트케비치 등 우크라 음악 국내 초연…피아니스트 김준희 협연

'평화의 선율' 연주한 오데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고양=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오늘 밤 연주되는 우크라이나 음악을 지켜주세요."

우크라이나 교향악단을 이끌고 한국에 온 베네수엘라 출신 노장 지휘자 호바트 얼(64)이 무대에서 어눌한 한국어로 꺼낸 한마디가 객석을 가득 채운 클래식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교향악단 오데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2일 경기 고양시 소재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첫 내한 공연을 선보였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열린 이번 공연에서 악단은 전쟁의 아픔을 딛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애국가와 우크라이나 국가로 연주를 시작한 오데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세르히 보르트케비치와 미로슬라우 스코리크 등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우크라이나 출신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이어 들려줬다.

32년간 오데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우크라이나 역사상 최초로 '우크라이나 명예 예술가'와 '우크라이나 민중 예술가'라는 칭호를 동시에 받은 호바트 얼은 포디움에 서서 곡 하나하나를 한국어로 설명했다. 비록 우크라이나 국적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이 겪고 있는 전쟁의 고통을 한국 관객에게 전하려는 그의 진심이 엿보였다.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한 피아니스트 김준희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피아니스트 김준희가 협연한 보르트케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김준희는 2017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인연으로 이번 공연에 참여했다.

국내에서 처음 연주된 보르트케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우크라이나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김준희는 '유려한 테크닉과 감수성을 갖춘 피아니스트'라는 세간의 평가답게 낯선 슬라브풍 멜로디와 과도할 정도로 화려한 클라이맥스가 특징인 이 곡을 무리 없이 연주해냈다.

호바트 얼과 오데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2부 공연에서도 우크라이나 음악 6곡을 더 선보였다. 모두 국내에서 처음 연주되는 곡들이었다.

1964년 우크라이나에서 제작된 영화 '잊힌 조상들의 그림자'에 삽입된 스코리크의 '어린 시절'은 유년의 추억을 아름다운 관현악 선율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어 연주된 '우크라이나 음악의 아버지' 미콜라 리센코의 '엘레지'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의 기백이 잘 표현됐다. 특히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헤이"라고 함께 외치면서 연주를 마치는 모습이 인상적인 곡이었다.

단원들과 악수하는 호바트 얼

이 외에도 감성적인 선율이 돋보인 라인홀트 글리에르의 '끝없이 펼쳐진 우크라이나 초원'과 장엄하면서도 신나는 멜로디의 미콜라 라스토베츠키의 '콜로미카', 비장한 선율의 올렉산드르 호노볼린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와 스코리크의 '카르파티아 협주곡' 등도 한국 관객과 처음으로 만났다.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