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4색 문화 에세이-14] 이은희 수필가 '보배로운 탑이 있는 시공간'

데일리한국 2024-10-03 07:25:54
충북 진천 보탑사(3층 목탑). 사진=작가 제공 충북 진천 보탑사(3층 목탑). 사진=작가 제공

충북 진천을 물으면 눈앞에 그려지는 물상이 여럿이다. 그중에 천년의 역사를 지닌 농다리와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의 양식을 재현한 보탑이다. 지인은 문학기행으로 진천을 답사하길 원한다. 청주문화원의 큰 행사를 앞두고 있어 부담도 되었지만, 내 고장을 찾는 문인을 위하여 하루를 온전히 비운다. 시간별 답사 일정을 적어 보내며 내 고장 홍보 대사로 나설 요량이다. 수십 명의 문인이 우리 고장을 방문한다는 것만으로도 친근감이 드니 어쩌랴.

우리나라 탑의 주류는 석탑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고 4세기에서 6세기까지 누각 형식 다층 목탑이 지어졌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목탑이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이었으나 몽골 침입으로 불타서 사라졌다. 이처럼 외세 침략과 전쟁 등 역사적인 환경과 보존 자원 그리고 지리적 여건이 목탑의 수명을 좌우했으리라 본다. 

지금 남은 목탑 형식의 건축으로는 전남 화순 쌍봉사 대웅전과 충북 보은 법주사 팔상전 그리고 보탑사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목탑이기에 소중한 문화재이다. 특히, 대한민국에 두 발로 오를 수 있는 탑이 어디에 있으랴. 보탑사는 녹음 속에 진리를 상징하는 연꽃의 수술처럼 자리한다. 탑에 올라가 3층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보련산 정경에 매료되리라.

보탑사 앞 느티나무(보호수 수령 327년). 사진=작가 제공 보탑사 앞 느티나무(보호수 수령 327년). 사진=작가 제공

보련산 보탑사는 천년 고찰도 아니고 전통 사찰의 모습도 아니다. 내가 본 초기의 보탑사는 단출한 구조였다. 한 자리에서 지켜보았을 300년 묵은 느티나무는 기억하리라. 초입에 일주문 격인 천왕문 없이 거대한 탑이 한눈에 든 시절이 있다. 대부분 사찰의 구조상 우화루 지나 석탑이 보이면 바로 큰 법당이 나타난다. 

하지만, 보탑사는 남다르다. 거대한 탑 그 자체가 바로 대웅전이자 탑이다. 탑 속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옷가지, 불경, 염원이 깃든 불비상 등을 품고 있어 부처님의 묘지나 다름없다. 그래선가 오래된 탑 앞에 서면, 저절로 두 손을 모르고, 경배도 하고 탑돌이를 하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고대 미술을 대표하는 불교 미술을 꼽으라면, 탑파(塔婆)와 불상이리라. 탑의 전형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보탑사이다. 목탑과 전탑, 석탑이 자리한다. 보탑사는 삼국시대 전통 건축의 맥을 잇는 삼층 목탑이다. 백팔번뇌의 의미를 담아 쌓은 탑은 아파트 14층과 맞먹는 높이로 42.7 미터에 달한다. 

3년에 걸쳐 보탑사를 완성한 대목장은 천년을 장담하였단다. 탑에 금속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목재를 하나하나 끼워 맞춘 탑이다. 1층은 대웅전 격인 사방불전을 봉안하고, 2층은 윤장대를 설치하고, 3층은 미륵 삼존불을 봉안하였다. 2층과 3층의 사이에 목탑의 연원을 볼 수 있는 사진전도 그냥 스치면 아쉬우리라.

보탑사 경내 진천 연곡리 석비(보물 제404호). 사진=작가 제공 보탑사 경내 진천 연곡리 석비(보물 제404호). 사진=작가 제공

더불어 전탑 뒤편에 희귀한 백비를 놓치고 가면 서운하리라. 고려시대 석비인 진천 연곡리 석비(보물 제404호)에는 비문이 없다. 비석에 문자가 없어 더욱 상상력이 발동하는 비석이다. 그리고 남다른 부분이 받침돌이다. 거북이나 용머리를 새기는 것이 대부분인데 백비는 말(馬)머리 형상에 가깝다. 그 외에 장수왕릉을 재현한 지장전과 너와지붕을 얹은 귀틀집 형식의 산신각. 특히, 부처님의 열반상을 모신 법당인 적조전, 거구의 와불을 돌아보길 권한다. 

부처님의 발바닥은 곧 진리를 전하는 표상이다. 발바닥에 새긴 다양한 무늬 중 수레바퀴를 바라보며, 우리네 삶도 돌고 돈다는 걸 느끼리라. 수레바퀴의 바퀴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듯 부처님은 불법을 말씀만이 아닌 두 발로 걸어가 중생을 제도한 것이다. 깨달음은 이렇듯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된다는 걸 불족도 앞에서 깨우친다.  

지금 보탑사에는 과꽃과 코스모스가 너울거리리라. 비구니의 수행처라 여성의 섬세한 숨결과 손길이 살아있는 산사이다. 계절마다 다양한 꽃이 알록달록 피어 꽃을 보러 오는 분이 많다. 가을날 여유롭게 탑돌이 하듯 경내를 돌아도 좋으리라.

이은희 수필가. 사진=데일리한국DB 이은희 수필가. 사진=데일리한국DB

◆이은희 주요 약력

△충북 청주 출생 △ '월간문학' 등단(2004)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구름카페문학상, 박종화문학상,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외 다수 △수필집 '검댕이' '화화화' '불경스러운 언어' 외 8권 △계간 '에세이포레' 주간 △청주문화원 부원장 △충북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