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중단 예정”…계속되는 정비사업장 공사비 갈등

스포츠한국 2024-10-02 16:48:47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 현대아파트 리모델링 현장에 '공사 중지 예고' 현수막이 걸려있다. ⓒ홍여정 기자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 현대아파트 리모델링 현장에 '공사 중지 예고' 현수막이 걸려있다. ⓒ홍여정 기자

[스포츠한국 홍여정 기자] 자재비 및 인건비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에 정비사업장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사업지의 경우 지자체의 중재로 합의를 이뤄낸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현장이 공사 중단이나 소송, 시공사 교체 등 더 큰 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롯데건설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 현대아파트 리모델링 현장에 ‘공사 중지 예고’ 안내문을 게시했다.

이촌동 현대아파트 리모델링 조합(이하 조합)은 롯데건설의 연대보증을 통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출 약정에 따르면 이달 21일까지 일반 분양자 입주자 모집 공고를 완료해야 하지만 현재 조합이 사업부지 내 토지소유권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입주자 모집 공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롯데건설 측은 “이는 PF 대출약정 위반 사항으로 조합 귀책에 의한 기한이익상실(EOD)에 해당된다”며 “조합은 PF대출금을 상환할 의무가 있고, 이를 상환하지 못하면 (롯데건설은) 대출약정에 따라 대위변제를 하고 도급계약서에 따라 공사 중지 및 구상권 청구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롯데건설은 EOD를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리파이낸싱을 해야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도급공사비와 입주예정일 확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롯데건설에 따르면 구조보강공사비 및 조합 요청에 따른 설계변경사항 추가 공사비와 총 16개월의 공사기간 연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공사기간이 확정돼야 준공 및 입주예정일을 확정할 수 있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그동안 공기 연장 및 공사비와 관련해 조합에 대화를 요청했었다”며 “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합과 최선을 다해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해당 현장은 동부이촌동에서 진행하는 첫 리모델링 사업지다. 지난 2020년 10월 롯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으며 2021년 이주를 시작해 현재 수직 증축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중이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최고 27층, 9개 동, 750가구의 ‘이촌르엘’로 탈바꿈한다.

앞서 이곳은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갈등도 불거진 바 있다. 지난 4월 롯데건설은 조합에 공사비 인상과 공사 기간 연장의 검토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롯데건설은 수주 당시 3.3㎡당 542만원이었던 공사비를 올해 925만원까지 올려달라고 요구했고, 조합은 세부적인 내역을 요구하는 공문을 시공사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장위4구역 현장에 게시된 GS건설 안내문 ⓒ홍여정 기자 장위4구역 현장에 게시된 GS건설 안내문 ⓒ홍여정 기자

시공사 교체·유치권 행사도

코로나 기간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주요 건설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건설공사비지수는 2021년 8월 110포인트대에서 올해 130포인트(6월 기준)로 증가했다.

건설공사비지수는 건설공사 직접공사비의 가격 변동을 측정하는 지수다.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재료, 노무, 장비 등 자원 직접공사비를 대상으로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와 생산자물가지수, 대한건설협회 공사부문 시중 노임 자료 등을 이용해 작성한다.

지난 8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29.71p(포인트)를 기록하며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공사비 급등에 전국 정비사업장에서도 시공사와 조합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GS건설은 지난달 12일부터 시공 현장인 ‘장위4구역(장위자이레디언트)’에 공사 중지 예고 현수막과 안내문을 게시했다. 조합이 선정한 설계사의 도면 오류로 공사가 지연되며 추가 비용이 발생했고, 최근에는 이 업체가 파산 신청을 하며 공사 지연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GS건설은 조합에 450억원의 공사비 증액을 요구한 상태다.

반면 조합은 2009년 도급 계약 이후 3차례에 걸쳐 공사비 증액 계약을 체결했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갈등이 이어지자 성북구청은 ‘성북구갈등조정위원회 TF’를 구성했고 서울시도 코디네이터를 파견해 중재에 나서고 있다.

지난 9월에는 경기도 탄벌동 서희스타힐스에서 시공사인 서희건설이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유치권 행사에 들어갔다. 당시 서희건설은 아파트 출입구를 봉쇄하고 용역을 동원해 조합원뿐만 아니라일반 분양자의 입주를 막았다.

공사비 증액 갈등에 시공사를 교체하는 사업장도 있다. 부산 괴정5구역 재개발정비조합은 지난 2018년 포스코이앤씨와 롯데건설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결정했지만 공사비 증액 범위를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에 계약을 해지하고 지난달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을 새 시공사로 정했다.

성남 은행주공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2018년 12월 시공사로 GS건설·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을 선정했지만 최근 시공사 교체를 단행했다. 성북구 장위 11-1구역도 지난 2021년 10월 현대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지만 조합과 계약이 해지된 바 있다.

‘공사비 안정화’ 정부 대책은

정부는 공사 중단과 소송 등 공사비 인상으로 인한 문제를 막고자 2026년까지 3년간 공사비 상승 폭에 대해 2% 내외로 안정화하는 종합 대책을 추진한다. 최근 3년간 공사비가 30% 이상 급등하면서 재건축·재개발 추진이 지연돼 국민 주거 불안이 커지고, 건설시장 활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공사비 상승에는 △건자재 53.0% △인건비 17.7%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6~7월 공사비는 다소 안정세로 들어섰으나 여전히 장기 추세선 대비 높은 수준으로, 시멘트는 유연탄 가격 하락에도 오히려 공급가격이 인상되는 등 여전히 불안 요소가 남아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최근 3년간 연평균 8.5%였던 공사비 상승률을 2026년까지 2% 내외로 최대한 안정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연평균 4% 내외의 장기추세선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며 “공사비 안정화를 통해 건설시장 활력을 제고해 25년 건설수주액 200조원 돌파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공사비 인상 주요 요인인 자재비, 인건비. 공공조달 등 공사비 3대 안정화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우선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경찰 등 관계 부처 합동으로 ‘건설 분야 특별 불법·불공정 행위 점검반’을 운영한다. 검반은 10월부터 내년 4월까지 6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하며 필요한 경우 활동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가격 동향과 시장 구조를 고려해 주요 자재와 건설 기계 분야를 우선 점검하고, 적발된 불법·불공정행위 종류에 따라 입찰 참여 제한 등 행정제재를 부과할 방침이다.

인력 수급 문제 해결을 위해서 숙련 인력 채용 시 우대 인센티브를 마련한다. 시공능력 평가에 건설근로자 기능 등급 보유 기능인 수를 반영하고, 상위 등급 기능인이 있으면 전문건설업 등록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 등을 추진한다.

공공 공사의 품질을 높이고 시공 지연을 방지할 수 있도록 관급자재 조달 체계도 개선한다. 국가 시책 사업의 경우에는 조달청을 통하지 않고 발주처인 공공기관이 직접 중소기업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3기 신도시 등 대규모 공공공사에는 콘크리트 품질·적기 공급 가능성 등을 살펴 현장 레미콘 제조시설인 배치플랜트 설치를 적극 추진한다.

정부는 “향후 건설시장 동향과 건설공사비 추이를 모니터링하면서 건설공사비가 안정되고, 건설시장이 활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속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