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가을이 아름다운 성지(聖地), 불갑사

연합뉴스 2024-10-02 10:00:56

최대 꽃무릇 군락지의 장관

(영광=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굴비'라고 할 정도로 국가적 굴비 브랜드가 된 전남 영광 법성포. 그러나 법성포는 한국인의 일상, 정신세계에 굴비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이다. 백제 시대 불교가 처음 도래한 곳이다.

◇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법성포와 불갑사

인도 승려인 마라난타 존자가 384년(백제 침류왕 원년) 중국 동진에서 해로를 타고 백제에 닿아 첫발을 디디고 불교를 전파했던 지점이 법성포이다. '법성포'(法聖浦)라는 지명은 '성인이 불법을 전해준 포구'라는 뜻을 간직하고 있다.

마라난타 존자가 제일 처음 지은 도량이 영광 불갑산(해발 516m) 자락에 있는 불갑사이다. '부처 불(佛)' 자와 '첫째 갑(甲)' 자를 합해 절 이름을 지었다. 모든 사찰의 으뜸이라는 뜻이다.

고구려와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인 시기는 각각 372년, 527년이다. 삼국으로 들어온 불교는 각 나라에 맞는 사상과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이뤄냈다.

마라난타 존자에 의한 전래 후 불교는 백제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의 도착은 찬란하고 웅혼한 기상의 백제 불교 탄생의 서막이었다.

마라난타가 백제를 방문한 사실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고승전에 기록돼 있다.

법성포 굴비정식거리 옆에 있는 백제불교최초도래지에는 간다라 양식의 사면대불상, 부용루, 탑원, 상징문, 간다라 유물관 등 마라난타 존자를 기리는 기념물들이 풍성했다.

마라난타 존자가 부처를 받들고 있는 조각상이 세워진 사면대불상은 우뚝 솟아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 1천600년 뒤에 느껴지는 마라난타 존자의 숨결

마라난타는 간다라(지금의 파키스탄)를 출발해 파미르고원을 넘고 실크로드를 지나 중국에 이르렀다. 동진에서 불교를 확립한 뒤 부처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나 당도한 곳이 백제이다.

그는 인연 닿으면 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불법을 전했다. 존자는 성인 반열에 오른 부처의 제자를 지칭한다.

불갑사에는 백제 불교의 시조 마라난타의 존재감이 역력하다.

대웅전 용마루에는 한국에서 유일한 보주(寶珠) 장식이 있다. 도깨비 얼굴 모양의 조각 위에 석탑을 올리고 그 위에 구슬 형태의 보주가 얹혀 있다. 인도에서 쓰인 스투파 양식을 따랐다.

스투파는 석가모니가 열반한 뒤 사리를 봉안한 일종의 사리탑이다. 스투파 양식은 네팔, 동남아 불교권, 남중국 등에 나타나는데 한국에서는 불갑사에서만 볼 수 있다.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이 정면이 아니라 측면을 향한 것도 남방불교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화사한 대웅전 문살은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꽃을 도드라지게 새긴 소슬꽃 무늬,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던 곳에 있었던 보리수를 상징하는 둥그런 문양, 모란꽃과 연꽃을 결합해 화려하게 만든 보상화문은 탐방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불갑사의 대웅전과 삼존불상은 오래전에 국가 보물로 지정됐다.

여기에 더해 올해 들어 사천왕상, 천왕문이 보물로 등재됐다. 불갑산 불갑사 일대도 아름다운 산세에 천년 고찰이 어우러지고 서해 낙조를 조망하는 명소라는 점에서 올해 명승으로 지정됐다.

◇ '꼭 이룰 수 있는 정열'의 상사화

불갑사에는 가장 아름다운 가을이 펼쳐진다. 꽃무릇으로 불리는 붉은상사화가 일대를 붉게 수놓기 때문이다.

상사화는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자랄 때는 꽃이 피지 않아 잎과 꽃이 서로 보거나 만날 수 없다. 서로 생각만 하고, 그리워한다는 데서 '상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처럼 애틋한 이름에 사랑의 전설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옛날 금실 좋은 부부가 늦게 딸을 얻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딸은 선친의 극락왕생을 빌며 백일동안 탑돌이를 했다. 기도하는 모습은 성스럽고 아름답다.

불공드리던 딸을 사모한 스님이 딸의 귀가 후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둔다.

무덤에서 돋아난 풀은 잎이 진 뒤 꽃이 피고, 꽃이 진 뒤 잎이 났다. 그 애잔함이 스님을 연상시켜 상사화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수선화과에 속하는 상사화 속에는 진노랑상사화, 상사화, 붉노랑상사화, 위도상사화, 제주상사화, 백양꽃, 붉은상사화 등 7개 종류가 있다.

특히 대중의 사랑을 받는 붉은상사화는 불갑산 일대에 전국 최대 군락지를 이루며 자생한다.

군락지 규모는 약 300만㎡. 이처럼 큰 자생 군락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자생하지 않던 위도상사화, 제주상사화까지 심어 현재 불갑사에서는 멸종위기식물 2급인 진노랑상사화를 포함해 모든 종류의 상사화를 볼 수 있다.

상사화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러나 불타오르는 듯 피어나는 붉은상사화 무리의 장관은 새로운 꽃말을 등장시켰다.

'꼭 이룰 수 있는 정열'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기다리며 사랑을 놓지 않는다는 데서 비롯됐다. 자신보다 꽃을 위해 헌신하는 잎의 모습이 부모의 자식 사랑을 떠올린다는 의미에서 '참사랑'이란 꽃말도 생겼다.

불교와 상사화의 인연은 깊다. 불교에서 상사화는 잎이 무성할 때 번뇌망상, 잎이 사그라지면 번뇌망상의 소멸, 꽃은 열반의 세계를 상징해 '피안화'로 불린다.

'피안'은 속세가 아닌 이상향을 가리킨다. 상사화의 뿌리는 약재로 쓰인다. 한지나 단청용 염료를 만들 때 섞으면 종이와 나무의 부패를 방지해 예부터 사찰 부근에 많이 심었다.

불갑산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참식나무 자생 군락지이자 북방한계선이기도 하다. 목질이 단단해 가구재로 쓰이는 참식나무 군락지는 흔하지 않다.

단풍보다 먼저 찾아와서 단풍보다 더 붉게 절집과 산을 물들이는 꽃무릇 잔치를 보기 위해 가을이면 불갑사에 탐방객과 템플스테이 손님이 몰린다.

불갑사에서는 개화기인 매년 추석 전후에 상사화 축제가 열린다. 축제에서는 마을 주민, 관광객, 불자, 노인, 어린이, 지역 상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진다.

탐방객들은 '상·사·화'를 첫 글자로 한 삼행시 공모에 응할 수 있었고 노인복지관 할머니, 다문화 가족, 영광군 문인협회 회원들은 시화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처음에 힘들었지만/이제는 괜찮아/…중략…/모든 것이 익숙해/나는 이제 한국 사람' (김나연<캄보디아>의 '한국 나의 두 번째 고향')

'머나먼 이국땅/높고 푸른 하늘을 머금고/가을빛 닮은 국화가 피었다/ …중략…/노란 국화 한 줌 꺾어/수병에 담아놓고/우리 딸 닮아 예쁘다며/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니/아! 그 사랑 이곳까지 전해져/국화향이 이리도 진할까' (마이티 미짱<베트남> '이국의 국화 앞에서')

올해로 24년째인 상사화 축제가 열리는 9월에는 전국에서 70만∼80만 명의 관광객이 몰린다. 기암괴석, 광활한 갯벌, 석양이 황홀한 풍경을 연출하는 백수해안도로, 조기 어장으로 유명한 칠산 앞바다는 이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명소이다.

◇ 산들의 어머니

불갑산의 원래 이름은 모악산이다. 산세가 비교적 완만하고 아늑해 어머니 품 같다는 이유로 '산들의 어머니'라는 뜻인 모악산으로 불렸다.

불갑산으로 명칭이 바뀐 것은 산기슭에 불갑사가 들어선 뒤이다. 지금도 모악산, 불갑산 이름이 혼용된다.

불갑산 정상은 연실봉이다. 봉우리의 생김새가 연 열매를 닮았다는 것.

영광군과 함평군 경계에 있는 불갑산은 두 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호남을 대표하는 진산이자, 전국 100대 명산으로 꼽힌다.

산택의 맨 끝에서 서해를 향해 우뚝 솟은 정상에 오르면 지리산 반야봉이 보일 정도로 연실봉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수려하다.

무등산 쪽에서 떠오르는 일출과 서해로 지는 일몰이 장관이라는 정평이 나 있다. 등산로가 여럿 나 있는데 불갑사에서 시작해 동백골, 해불암을 지나 연실봉에 올랐다가 원점 회귀하는 탐방로가 인기를 끈다.

연실봉에서 구수재, 수도암 쪽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불갑사에서 출발해 덕고개, 노적봉, 노루목을 거쳐 연실봉에 오르기도 한다.

'석굴암 일출, 해불암 낙조'라고 말할 만큼 불갑사 암자인 해불암에서 맞는 석양은 곱다.

해불암에서 200m 정도 떨어진 노루목에서 연실봉으로 이어진 등산로 중간에서 목격한 낙조와 서해, 첩첩이 이어진 산봉우리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일깨웠다.

◇ 남한 지역 마지막 호랑이

한반도 마지막 호랑이는 언제 어디에서 사라졌을까. 답을 알 수 없지만, 남한 지역에서는 불갑산에서 1908년 호랑이가 포획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생존 지역과 연대가 확실하게 기록된 남한 최후의 호랑이다. 덫에 걸렸다가 주민에게 붙잡힌 호랑이는 암컷으로, 몸통 길이 160㎝, 몸무게 약 180㎏이었다.

당시에 일본인이 박제한 뒤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기증했고, 이후 100년 넘게 전시되고 있다.

불갑사 뒤 구수재 아래, 호랑이가 자주 물을 마셨던 계곡에는 한국 호랑이를 잊지 말자는 의지를 담은 한국 호랑이 폭포가 인공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세계적인 붉은상사화 자생 군락지, 참식나무 북방한계선, 100대 야생화 명소인 불갑산은 멸종위기 동물 2급으로 지정된 삵, 담비, 수달 등이 살고 있는 건강한 숲이며 영광 생태자원의 축이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