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의정대화 한 가닥 희망, 한 발짝 더 양보해 호기 살려야

연합뉴스 2024-10-01 14:00:26

의료 현안 브리핑하는 최안나 대변인

(서울=연합뉴스) 의정 갈등이 새 국면을 맞을지 주목된다. 정부가 '의료인력 수급 추계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제안한 것에 대해 의사단체들이 비교적 우호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 측은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사과의 뜻도 밝혔고, 의사단체들은 "긍정적 변화"라고 호응했다. 꽉 막힌 의정대화에 물꼬가 트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가닥 희망적 신호가 아닐 수 없다.

추계위는 적정 의료인력 규모를 추계하기 위한 전문가 기구로, 의사, 한의사, 약사 등 분과별 위원회로 구성되며 각각 전문가 13명이 참여한다. 의사는 간호사와 함께 첫 추계 대상 직종인데, 정부는 의사인력 추계위원 13명 중 7명을 의사단체 몫으로 배정하기로 했다. 자문이 아닌 의결 기구가 돼야 한다면서 현 상황에서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대한의사협회가 밝히긴 했지만, 협의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 의료계로선 추계기구 설치가 당초 요구했던 사안인 데다 인력 추계에 대해 사실상 결정 권한을 쥔 만큼 마땅히 거부할 이유가 없다. '2025년 의대 증원 백지화' 요구에서 물러서지 않던 의협의 미묘한 변화도 주목된다. '2026년 감원 가능 보장'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내걸었지만, 줄곧 주장해 온 '2025년도 증원 백지화'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의료계의 추계위 참여를 비롯해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지만, 의정 간 강대강 대치 국면에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할 대목이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전공의들의 판단이다. 전공의들의 복귀가 전제돼야 추계위가 정상 가동되기 때문이다. 의료파행 종식을 위한 의정 대화의 길을 열기 위해선 전공의들을 설득하는 일이 정부의 당면 과제가 된 셈이다. 현재로선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지만, 그럴수록 정부는 이들의 복귀를 유인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당장 필요한 것은 당사자들이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전공의들을 향해 "매우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전해 의협의 긍정적 반응을 끌어내긴 했지만, 필요하다면 그 이상의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 의료계를 대화의 자리로 이끌기 위해 '2026년 정원 제로베이스 검토'에서 더 유연한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의협의 역할도 막중하다. 추계위 참여 조건으로 무리한 요구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성 있는 협상안을 제시해야 한다.

병원에 남은 의료진은 번아웃(심신 탈진) 상태다. 특히 필수의료의 보루인 응급의들이 하나둘씩 현장을 이탈하며 의료공백을 가중시키고 있다. 수술 건수가 급감한 것이 말해주듯 환자들의 고통과 불안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정치권도 힘을 보태야 한다. 의정 양측에 대한 설득과 중재로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이 조속히 성사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자세다. 어느 쪽이든 양보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면 의정 갈등의 실타래는 풀릴 수 없다. 어렵게 잡은 희망의 신호를 놓쳐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