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30] 한혜경 '나의 이름을 찾아서'

데일리한국 2024-09-30 23:36:51

이름은 한 사람의 삶의 지향점을 함축시킨,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몸짓'에 지나지 않던 존재는 의미 있는 '꽃'으로 거듭난다.(김춘수 ) 그래서 아기의 이름을 지을 때, 그 삶이 순탄하고 가치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담아 짓기 마련이다. 그런데 네 살짜리 오빠가 이웃집 아기 이름을 부른 게 호적에 올라갔다면? 그마저도 온전하게 불리지 못하고 '파란 대문집 막내딸' '000 동생'으로 불렸다면? 

이춘희의 는 아들이길 바랐는데 다섯째 딸로 태어나 환대받지 못했던 아이가 이름을 찾고자 애써온 삶의 기록이다.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결혼 후에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수많은 여성 서사의 계보에 들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이춘희는 '아무도' '아직도' '그래도'라는 표현을 활용해 자신만의 서사를 인상적으로 완성시킨다. 

"아무도" 관심 주지 않는 환경에서 "그래도" 주저앉지 않고 "아직도" 남은 꿈을 펼치는 여정은 '노력–성취-좌절-다시 노력'의 구조로 이어진다. 일찌감치 '내가 나를 가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 '아무도'의 땅을 비집고 죽순처럼 꿈을 내밀었"고, 꿈을 이루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살아왔다. "밤잠을 장학금과 바꾸고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하루하루를 아르바이트로 채웠다" "벼르고 별러야 책 한 권 읽고, 영화 한 편 볼 수 있"을 정도의 고투 끝에 '000 선생님'이란 뿌듯한 이름을 얻는다. 

하지만 아이를 잃을지 모른다는 남편의 노파심으로 어렵게 얻은 이름을 포기한다. 전업주부가 되어 자신의 꿈 대신 아이들과 남편의 꿈을 응원했다. 아이들은 훌륭한 성인으로 자랐으나 자신은 '000 엄마' '아줌마'로 살았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묻어둔 꿈을 위해 '그래도'에 발을 내딛는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아직도'라는 섬에서 릴케의 시를 읽으며 문장을 엮는 꿈을 꾼다. 

그리고 세상이 '냉기와 폭염, 가뭄과 센바람'으로 매번 그의 꿈을 막았음에도 분노나 원망 없이 담담하게 서술함으로써, 묵직한 감동의 파동을 일으킨다. 각진 돌이 몽돌이 되기까지, "바닷물에 침식되어도 묵묵히 서 있는" '아무도'를 벗어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 인내하고 분투했을지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찾는 순례의 끝에서 "나의 주인은 나 자신"이라고 천명한 제인 에어처럼 환대하지 않는 세상에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작가, 거센 물결이 몰려와도, 뒤울이가 몰아쳐도 꿋꿋하게 직면하며 ‘나만의 노래’를 완성하는 꿈을 이룬 "심지 깊은" 작가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 한혜경 주요 약력

△서울 출생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 △ 수필 등단(1998) △ 평론 등단(2002) △평론집 △글쓰기 이론서 △수필집 (4인 공저) 등이 있다.

♣섬에 들다-글/이춘희

바다가 출렁이며 바람의 이야기를 쓴다. 간간이 떠 있는 섬은 푸른 문장에 마침표를 찍어 글을 단단히 여미고, 때로는 쉼표가 되어 여백을 넣는다. 바닷물이 지구를 떠날 듯이 요동치다가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심지 깊은 섬이 붙들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바다는 삶의 터전이었다. 처음 만났던 엄마의 바다는 좁았지만 평온하고 고요했다. 엄마와 이어지던 탯줄이 끊어지면서, 나는 끝 없이 너른 바다에 떠 있는 섬이 되었다. 안과 밖은 양지와 음지만큼이나 달랐다. 파도에 실려 온 매서운 바람이 때때로 몸을 빙상氷像으로 만들었다. 파도에 거세게 부딪힐 땐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손을 내미는 이 하나 없어 ‘아무도’가 내 이름인가 싶었다.

네 살짜리 오빠가 지금의 내 이름을 지었다. 나를 보고 이웃집 아기 이름 부른 게 호적에 올라갔다. 그마저도 떳떳하게 불리지 못하고 이웃은 파란 대문집 막내딸 혹은 000동생으로 나를 불렀다. 아들이길 바랐는데 다섯째 딸이 태어났으니, 부모님이 얼마나 서운했을까.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는 겸연쩍게 웃으며 무거운 마음을 털어냈다.

이름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새것을 손에 쥐기가 어려웠다. 작아진 언니 옷을 내려 입고, 오빠 검정 고무신도 물려 신었다. 꿈속에서 새 옷과 꽃고무신을 수없이 입고 신었다. 내가 나를 가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씩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아무도'의 땅을 비집고 죽순처럼 꿈을 내밀었다. 쑥쑥 자라 댓잎 소리로 노래를 만들고 곧은 기상으로 하늘만큼 높아지기를 바랐다. 세상은 냉기와 폭염, 가뭄과 센바람으로 싹의 생장을 막았다. 주변 섬으로 달려가는 파도의 힘을 줄이고, 거세게 부는 바람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무도'인 나의 역할이라고 낮아진 자존감이 속삭였다. 

학창 시절, 나의 일상은 늘 종종걸음이었다. 세상 얼굴을 더듬기 시작한 중학교 때, 도둑같이 찾아온 암 덩어리가 아버지의 온기를 앗아갔다. 친구들보다 일찍 홀로서기 발자국을 뗐다. 밤잠을 장학금과 바꾸고,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하루하루를 아르바이트로 채웠다. 벼르고 별러야 책 한 권 읽고, 영화 한 편 볼 수 있었다. 

마침내 '아무도'가 바다 위에 견고하게 섰다. 담임교사를 적는 난에 내 이름을 적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000선생님'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사회의 한 자리에 나의 존재를 심는 것 같아 뿌듯했다. 사춘기 학생들을 가르치며 앞날의 설계도를 그렸다. 잔잔한 파도를 즐기는 것도 잠시, 남편이 출근길을 막아섰다. 어렵게 들어선 아이를 잃을지 모른다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전업주부가 되었다. 운동화를 하얗게 씻고 구두를 광나게 닦으며 아이들과 남편의 꿈을 응원했다. 나는 구겨진 바지를 펴는 다리미가 되고 얼룩진 일상을 빠는 세탁기가 되었다. 다행스럽게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다. 잦은 병치레로 병원을 학교처럼 드나들던 큰아들은 건강의 파수꾼이 되었다. 순한 형이 다칠세라 방패막이 역할을 하던 작은아들은 컴퓨터 보안 전문가로서 검은 손의 침입을 막는다. 허투루 보낸 날이라 생각했는데 '000엄마' 속에 내 이름이 진하게 음각되어 있었다.

어느 날, 마트에 들렀다가 TV에서 중학교 때 단짝 친구를 보았다. 그녀는 지방행사에서 축사를 낭독하고 있었다. 유능한 사업가가 되어 지역을 위해 봉사도 하는 그녀를 보니 심장이 마구 뛰었다. 앳되던 얼굴에 생긴 주름이 세련된 옷매무새와 어우러져 중후한 멋을 자아냈다. 자신의 이름을 날리는 그녀가 마냥 부러웠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거울 앞에 섰다. 손가락빗으로 쓸어 넘긴 머리와 후줄근한 바지, 화장기 없는 모습이 영락없는 부엌데기였다. 000엄마, 아줌마에 익숙해져 동사무소에서 이름이 불릴 때는 한참 있다가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관심 받지 못하는 그저 '아무도'였다. 바닷물에 침식되어도 묵묵히 서 있는.

마음을 더듬어보니 또 다른 섬이 보였다. 남은 꿈을 위해 '그래도'에 발을 내디뎠다. 눈길을 돌리지 않았던 나 자신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학창 시절 수북이 쌓인 낙엽 밑에 묻어둔 꿈이 생각났다. 틈나는 대로 문학소녀로 돌아갔다.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죽순의 마디를 튼실하게 만들었다. 거침없이 성장하여 잎이 무성한 대나무가 되기를 바랐다.

자그락 자그락, 차르르 차르르, 파도와 자갈이 몸을 부대끼는 소리는 '그래도'의 배경음악이다. 낮과 밤을 넘나들며 각진 마음의 돌을 깨부수고 갈기를 얼마나 거듭했던가. 가슴 깊숙이 만들어진 몽돌 덕에 나는 오뚝이가 되어 다시 일어난다. 이제는 바람이 불 때마다 댓잎을 비벼 나만의 노래를 연주하는 꿈을 꾼다.

'아직도'라는 섬, 아직도 개나리색 원피스를 입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 길을 나풀나풀 뛰어다니고 싶다. 낙엽 지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읽으며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가라.’라는 문장에 밑줄 긋는 상상을 한다. 

섬을 두른 백사장에 노을빛이 내려앉는다. 푸른 대숲 아래 달맞이꽃이 바람에 살랑인다. 댓잎의 노래로 바뀐 바람이 지나간다. 아직도 꿈을 안고 백사장에 앉아 금모래를 줍는다. 언어의 모래밭에서 주운 반짝이는 단어로 문장을 엮는다. 자음과 모음으로 꿴 목걸이를 걸고 하얀 파도를 맞는다.

원초적인 섬 '아무도'에 앉아 마음을 추스르고 '그래도'에서 희망의 씨앗을 주우며 '아직도'에서 꿈을 엮는다. 그리고 파도가 쓰는 문장을 읽는다. 거센 물길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나를 잡아주고, 뒤울이가 몰아칠 때 포근한 외투가 되고, 가라앉는 용기를 일으켜 세운 것은 마음의 바다에 떠 있는 섬이었다. 

지금도 시나브로 섬에 들며 인생의 무늬를 그린다. 

*뒤울이-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