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448쪽 단행본에 담은 붓다의 가르침…'불경' 집대성하고 다시 절로

연합뉴스 2024-10-01 00:00:27

이중표 전남대 명예교수…니까야·아함경 등 초기경전 중심 편역

'불경' 편역한 이중표 전남대 명예교수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불경' 원고를 마무리하고 보니 책만 쓸 것이 아니라 이 '불경'을 중심으로 할 일이 있지 않겠나 생각했습니다. 그런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하려고 올해 1월 절에 가서 계(戒)를 받고 옷(승복)을 입게 됐습니다."

반세기에 걸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해설해 온 이중표(71) 전남대 명예교수가 노작을 집대성한 '불경'(불광출판사)을 완성하고 승려로서 새 삶을 시작한다.

그가 최근 출간한 '불경'은 기독교의 성경, 이슬람교의 코란처럼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불교 경전이 마땅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오랜 작업의 결과물이다.

편저자인 이 명예교수는 '불경'에서 붓다의 실제 가르침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초기 경전인 '니까야'와 '아함경'의 핵심을 요약해 1천448쪽 분량의 단행본으로 엮었다.

출간을 기념해 30일 서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 명예교수는 "내가 불교를 공부하고 연구한 마지막 목적은 '불경'을 편찬하는 데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남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동국대 대학원에서 불교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남대 철학과 교수로 활동하다 정년퇴직했다. 불교의 가르침을 대중적으로 쉽게 알리기 위해 10여년간 여러 경전에 관한 강의를 반복했다. 그가 설립한 불교신행공동체 '붓다나라' 홈페이지에 올린 강의 동영상이 500개에 육박할 정도라고 한다.

책 표지 이미지

이 명예교수가 '불경'을 편역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고교 시절 우연히 법회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불교에 심취해 온 그는 "붓다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구하는 불교가 불경 없이 불상에 의지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책의 머리말에서 회고했다. 누구나 쉽게 붓다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는 불경을 편찬하겠다는 것이 그의 오랜 소망이었다.

전남대 재직 시절 1년간 미국에 머물렀는데 현지인들이 불경이 아니라 달라이 라마나 틱낫한 스님 같은 훌륭한 스님들에 의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불경의 필요성을 더 절감했다고 한다.

"스님들을 의지하는 불교는 미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스님이 세상을 떠나면 의지처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 명예교수는 승복 차림에 머리를 삭발한 상태였다. 젊은 시절 출가했지만, 학문의 길을 택하면서 속세로 돌아갔던 그는 '불경' 원고 작업을 끝낸 것을 계기로 다시 출가하며 '중각'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세 때 출가해 광주에 있는 한 사찰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승려로 활동했는데 불교를 학문적으로 더 공부하는 것과 절에서 소임을 맡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다 스승을 따라 서울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환속했지만 결국 절로 돌아가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저와 인연 깊은 스님께서 정년 퇴임했으니 홀가분하게 하면 좋지 않겠냐면서 기회를 줄 테니 출가하라고 자주 권했어요."

'불경' 펴내고 절로 돌아간 이중표 명예교수

다만 연령 제한 등으로 인해 본래 몸담았던 조계종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고, 한국불교태고종으로 소속을 옮겼다고 한다.

50년 넘게 부처의 가르침을 좇아온 이 명예교수에게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달라고 하자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한 마디로 응축할 수 있는 말은 바로 '공'(空)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공의 의미에 대해 '업보(業報)는 있으나 작자(作者)는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사물(명사)이 있어서 움직임(동사)이 있다고 여기지만, 따지고 보면 그 반대라고 이 교수는 풀이했다. 예를 들어 구름이 있으니 떠다니고, 비가 있으니 내리고, 강물이 있으니 흘러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구름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물방울이 하늘에 떠다니기 때문에 구름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물 방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니까 비라고 하는 것이며, 물 방물이 흘러가기 때문에 강물이라고 한다는 것을 이해하라는 취지다.

이 명예교수는 "실체 중심이 아니라 관계 중심으로 세계가 이뤄지고 있다는 깨달음을 담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불경'을 펴내 평생의 원을 이룬 이 명예교수는 "이제 불교의 중심이 불상에서 불경으로 옮겨가지 않겠냐"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