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 파괴·배척하는 언어에 디아스포라문학이 대안 될 수도"

연합뉴스 2024-09-30 00:01:03

입양인 정체성으로 시 써온 제니퍼 권 돕스, 서울서 독자들 만나

미국의 한국계 시인 제니퍼 권 돕스(허수진)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반(反)이민정서가 유럽과 미국의 유권자들에게서 많이 늘고 있어요. 인간 존엄을 파괴하는 언어, 차별의 시각으로 타인을 정형화하고 배척하는 언어에 디아스포라 문학이 개입해 문제를 직시하게 하고 우리의 시선을 더 넓게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한국계 입양인의 정체성으로 문학 세계를 일궈온 미국의 시인 제니퍼 권 돕스(49·한국명 허수진)는 디아스포라를 다룬 문학이 혐오와 차별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할 힘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29일 서울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개최한 '디아스포라 문학예술 행사' 작가 대담에서다.

이날 제니퍼 권 돕스와 함께 대담자로 나선 소설가 조해진도 "현대사회의 큰 문제는 저마다 절대적 고통에 갇혀서 타인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 것에 이유가 있다. 우리 모두에게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세상이 달리 보이지 않을까"라며 공감을 표했다.

디아스포라 문학은 출신지나 모국을 떠난 이주자의 삶과 정체성을 담은 문학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다양성·타자성·혼종성 등을 주요 특징으로 하며, 흔히 이산문학(離散文學)이라 불리기도 한다.

제니퍼 권 돕스는 이날 보수적인 미국 오클라호마 시골 마을의 블루칼라 가정에서 성장한 뒤 성인이 되어 한국의 원(原)가족을 되찾은 경험을 들려주면서 어릴 적 문학이 큰 위안이 됐다고 했다.

"어렸을 적 제 피난처는 책 속의 이야기였어요. 양부모는 노동자 계층이었고 제가 집안의 첫 대학생이었죠. 백인 우월주의, 문화적 소외, 고된 노동을 경험하면서 성·계급·인종 차별 등 불평등에 관심이 생겨났고, 불평등을 이른바 자연스러운 질서로 공고화하는 방식에 대해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됐습니다."

시인은 요즘 한국어를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제니퍼 권 돕스 시집 'Interrogation Room'

사실상의 모국어인 영어와, 뒤늦게 한국계라는 정체성을 자각하고서 성인이 된 한참 뒤 배우기 시작한 한국어 사이를 오가며 느끼는 긴장감이 적지 않다고 했다.

"강력하지만 동시에 부서지기 쉬운 게 언어죠.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아직 어설퍼요. 한국어를 말하면서 제 얼굴 근육이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죠. 본능적인 언어로 친밀함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고, 경계를 넘어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죠."

2018년 미국에서 펴낸 시집 '심문실'(Interrogation Room)을 소개하면서는 "입양의 역사를 광범위한 한국 근대사, 즉 식민화, 분단, 국수주의적 이념경쟁의 역사라는 맥락으로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입양에 관한 서사 중에는 '감사함을 아는 아이'라는 게 있어요. 너를 구해주고 가족을 찾아준 입양기관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서사죠. 입양이나 입양기관을 비판하는 것을 배은망덕이나 생각 없는 분노로 매도하기도 하죠. 또한 입양에는 한국의 가정을 잊어버리는 강요의 과정도 있어요. 가슴을 찢는 타자화의 과정이죠. 제 시들은 함께 살아있는 친인척, 가족과 하나가 되려는 시도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한국어로 쓴 시 '나의 엄마에게'도 더듬거리는 한국어 낭송으로 들려줬다.

"미안해요 나는 실패했습니다 / 나는 아기처럼 말해요 / 피하지 않고 언어에서 / 배고퍼? / 많이 먹어 / 보고 싶어"

제니퍼 권 돕스(허수진. 왼쪽) 시인과 소설가 조해진

yongl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