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교촌 33년 핵심 비결 “소스=성장 동력”

뷰어스 2024-09-29 18:00:07
충북 진천 비에이치앤바이오 소스공장 포장실 전경. (사진=김성준 기자)

“교촌 소스 공장을 운영한 게 20년 가까이 되는데, 간장소스 비법은 공장장인 저도 아직 모릅니다. (권원강) 회장님하고 사모님만 알고 있어요. 철저한 비밀 덕분에 비슷한 맛을 흉내는 낼 수는 있어도, 교촌 특유의 향까지 그대로 구현한 업체는 없습니다. 남들이 쉽게 따라 하지 못하는 소스가 교촌만의 장점이죠.”

김태윤 비에이치앤바이오 품질혁신본부 상무의 말이다. 현재 비에이치앤바이오 진천 공장장을 맡고 있는 그는 교촌 3대 시그니처 소스 중 레드 소스와 허니 소스 개발에도 직접 참여했을 정도로 교촌에서 소스 개발에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하지만 김 상무조차 교촌 ‘오리지널’인 간장 소스 배합법은 모를 정도로 교촌 소스의 핵심 레시피는 극비사항으로 다뤄지고 있다. 소스 경쟁력이 곧 교촌이 33년간 성장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는 판단에서다.

26일 교촌에프앤비는 충북 진천에 있는 비에이치앤바이오 진천 공장 생산현장을 공개했다. 비에이치앤바이오는 지난 2015년 교촌에프앤비가 소스 연구 및 제조를 위해 물적분할한 계열사로, 교촌에서 사용하는 모든 소스를 직접 생산하는 것은 물론, 각종 소스류 연구개발도 담당하고 있다. 매월 이곳에서 생산되는 소스만 약 500톤에 달한다. 최근엔 국내 식품기업과 협업해 코스트코에 소스 제품을 납품하는 등 판로를 넓혀가는 중이다.

강창동 교촌에프앤비 커뮤니케이션 본부장은 “국내에 치킨 브랜드가 700여개 있지만, 자체 소스 생산 시설을 갖춘 것은 교촌이 유일하다”면서 “원재료에 있어서도 화학 조미료를 사용하는 곳이 많은데 교촌은 우리 농산물로 만든 천연재료를 사용햇 소스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소스에 담은 ‘진심’, 효율보단 맛과 품질이 우선

진천 공장에서 비가열 살균 과정에 투입되고 있는 마늘들. (사진=김성준 기자)

이날 김 상무는 직접 공장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소스가 생산되는 과정을 취재진에게 설명했다. 특히 소스 원료의 전(前)처리과정에 사용 중인 비가열 공정에 대해 강조했다. 교촌 시그니처 소스 3종(간장, 레드, 허니)은 모두 비가열을 공정으로 생산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실제로 마늘이 세척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껍질과 꼭지가 제거된 마늘이 설비에 투입되면, 1차 세척을 거친 뒤 약 70℃ 온도의 물에서 다시 살균한다. 이후 두 차례 냉각을 거쳐 분쇄한 뒤에야 비로소 소스 배합에 사용된다.

비가열 공정은 그 특성상 완전한 멸균이 어려워 유통기한 등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가열공법에 비해 제조 원가도 비싸다. 그럼에도 교촌이 어려운 길을 고집하는 것은 소스에서 원재료 고유의 맛과 향을 살리기 위해서다. ‘알아도 따라 하지 못하는’ 차별화 공정은 ‘비법 레시피’와 함께 교촌 소스의 특별함을 뒷받침하는 버팀목이다.

김 상무는 “고온으로 가열하면 마늘이 익게 되고, 그러면 생마늘 향이 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가열 없이는 또 세균을 잡기가 힘들다”면서 “마늘의 경우 표피 부분에 세균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일정한 양을 살짝 데치는 공정을 고안했고, 수십 번의 테스트를 거치며 적절한 마늘 투입량과 온도, 시간 등을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에 투입되는 원재료도 깐깐한 선별을 거친다. 마늘의 경우 원물 기준 연간 약 400톤을 구매하는 데, 이중 실제로 사용되는 것은 절반 수준인 약 200톤에 불과하다. 기준에 못 미치는 원물은 모두 제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권원강 교촌 회장의 품질에 대한 고집이 깔려있다.

김 상무는 “레드 소스에 딸기잼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는데, 회장님이 딸기 씨가 씹히는 점을 지적할 정도로 품질을 따지신다. 현재는 이를 제거해 투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공장에도 반영된 ‘품질 고집’, 글로벌 공략 발판으로

송원엽 비에이치앤바이오 대표가 진천 공장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성준 기자)

품질에 대한 까다로운 고집은 공장 시설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김 상무는 진천 공장을 세우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물 없는 공장’과 ‘자동화’라고 설명했다. 둘 다 위생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고온다습한 환경은 세균 번식에 취약한 만큼, 진천 공장은 공정에 사용된 물이 설비에서 곧바로 배출될 수 있도록 설계해 바닥에서 ‘물기’ 자체를 없앴다. 제품을 포장하는 공간도 ‘양압’을 유지해 외부 공기가 유입되는 것을 원천 차단했다.

자동화에도 힘을 기울였다. 2900평 규모인 진천 공장과 비슷한 크기의 식품공장에서 보통 100여명 정도 직원이 필요한 것과 비교해, 진천 공장은 단 27명으로 운영될 만큼 자동화 설비가 충실히 갖춰졌다. 원재료 전처리에서부터 배합, 포장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공정이 자동화됐다. “식품위생은 사람의 손을 탈 때가 가장 취약하다”는 게 김 상무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날 오후 포장실에서 작업 중인 인원은 10명 남짓이었다. 기계가 수행하기 어려운 몇몇 작업을 제외하면, 사람 손이 필요한 곳은 거의 없었다.

진천 공장은 이 같은 위생 및 자동화 설비를 바탕으로 해썹(HACCP)을 비롯해 국제 표준인 ISO9001 품질 인증,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 등을 두루 획득했다. 또 무슬림 소비자를 겨냥해 할랄 인증까지 받았다. 국내외 매장에서 사용되는 소스는 물론 각종 수출용 소스 제품도 전량 진천 공장에서 생산되는 만큼, 일찌감치 글로벌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교촌은 장차 비에이치앤바이오를 통해 글로벌 소스 특화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계획이다.

송원엽 비에이치앤바이오 대표는 “‘칙필레’가 소스 매출로 5000억원을 거둬들이는 등 해외 치킨 프랜차이즈 중에는 소스만 가지고도 엄청난 성장을 하는 회사가 있다”면서 “치킨, 라면 등 K-푸드 열풍 밑바탕에는 소스가 있는 만큼 잠재력은 충분하다. 외국에서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33년간 사랑받은 소스와 비법을 기반으로 ‘한국의 맛에 세계를 더하다’라는 슬로건 아래 해외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소스 브랜드로 성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