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가뭄에 자잿값 급등…건설업계 “탈출구가 없다”

데일리한국 2024-09-27 08:14:34
서울의 한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김하수 기자] 국내 건설사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길어지는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에 주택 일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연초 기대했던 해외사업 수주도 예상과 달리 부진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여기에 시멘트 등 공사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요 건자재 가격 상승세는 꺾이지 않고 있어 건설업계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하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건설사들의 국내 주택사업 수주는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정도로 일감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대한건설협회는 지난 7월 국내 주거용 건축(주택) 수주액을 총 3조647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2.9% 줄어든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2년 전인 2022년 같은 달(9조7098억원)과 비교하면 62.4%나 감소한 수치다.

특히 민간 부문 주택 수주는 작년 동월 대비 17.2% 줄어든 3조4104억원에 그쳤다. 세부 공종별로 들여다보면 신규 주택 수주가 1조762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과 견줘 16.8% 감소했고, 재개발 수주가 1조1647억원으로 13.8% 하락했다. 재건축 수주는 7202억원으로 지난해 7월(7199억원)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주거용·상업용 건물의 입주 물량 축소와 신규 착공이 위축된 영향으로 공사 물량 감소가 본격화됐다”면서 ”부동산 PF 구조조정 관련 불확실성 등의 리스크가 여전히 잠재해 있는 만큼 하반기에도 이같은 흐름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대를 걸었던 해외건설시장 상황도 녹록치 않은 분위기다. 각 발주처의 재정상황이 악화된 데다,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글로벌 매머드급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축소되거나 지연되고 있어서다.

26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의 국내 건설업계의 누적 해외건설수주액은 약 179억5673만 달러(한화 약 24조1428억원)다. 지난해 같은 기간(219억3243만 달러) 대비 18% 감소했다.

이는 지난해 수주실적의 33.5%(73억4118만달러·약 9조8000억원)를 차지하던 북미·태평양 시장 수주액이 3분의1 수준으로 급감하고 아시아(42억9681만달러·약 5조7000억원) 수주액도 전년에 비해 절반에 그친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연초 기대를 모았던 해외 메가 프로젝트들도 사업 규모가 축소되거나 무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파라과이 정부는 한화 8000억원 규모 ‘아순시온 경전철 사업’을 위해 한국 공공·민간기업 등으로 구성된 ‘팀코리아’(Team Korea)와 진행하던 협상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 동유럽 및 중동지역의 전쟁, 프로젝트 파이낸싱 금리 상승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사업성이 악화된 것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파라과이 정부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한 이 사업은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교외 으빠까라이 45㎞ 구간을 잇는 프로젝트다. 최초 총사업비는 5억7500만 달러(한화 8000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국내 건설업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건설사업도 전체 사업비가 당초보다 크게 늘면서 프로젝트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재건 프로젝트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이처럼 국내외 일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치솟는 건자재가격은 건설업계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품목이 시멘트다. 2014년부터 톤(t)당 7만5000원에 묶여 있었던 시멘트 가격은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 유연탄 가격 상승 등이 반영돼 가파르게 상승했다. 2022년 2월 t당 9만2400원으로 올랐고, 같은 해 11월 10만5000원으로 10만원대를 뚫었다.

이후 작년 11월 건설업계와 협의 하에 t당 11만2000원으로 오른 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향곡선을 그리던 철근 가격도 최근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대형 제강사들은 이달 중간유통사에 판매하는 철근가격을 t당 3만원 올린 82만원으로 책정했다. 이는 지난달 3만원 인상에 이은 두 번째 가격인상이다.

이러한 제강사들의 가격 인상 결정은 재고가 줄었기 때문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철근 재고는 올해 1월 67만 3000t에서 6월 55만 7000t으로 17.2% 감소했다. 이는 철강사가 인위적인 감산 조치로 재고 줄이기에 나선 결과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일감은 줄어드는데 원자재 가격은 폭등하며 공사를 진행할수록 되레 손해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현실적인 자잿값, 적정 공사비가 책정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