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건축가 김원의 세상 이야기 ⑪ 오방색의 단상

연합뉴스 2024-09-26 00:00:37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 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독립기념관·코엑스·태백산맥기념관 등 설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삼성문화재단 이사, 서울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 등 역임

김원 건축가

한국화가 일랑(一浪) 이종상(李鍾祥) 선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말에서 가장 놀라운 점 하나는 색깔의 표현에 관한 것이다. 세상 하고많은 색깔 중에 다른 건 다 제쳐놓고 가장 단순하게 다섯 가지 색을 먼저 말한다.

파랑(靑), 빨강(赤), 노랑(黃), 하양(白), 까망(黑). 이 '오방색' 다섯 개만 고유의 색이름을 지어 주고 그 이외에는 자연물에 기대어 색이름을 정한다.

그중에 흑과 백이라는 무채색 두 가지와 적, 청, 황이라는 유채색이 세 가지 있지만 그건 서양식 분류이고 우리에겐 이 다섯이 섞여 있다. 이것이 오방색(五方色)이다.

그 오방색만이 기본이다. 그 기본은 물론 음양오행에서 왔다.

-오행(五行) : 木(목), 火(화), 土(토), 金(금), 水(수)

-오관(五官) : 目(눈), 舌(혀), 口(입), 鼻(코), 耳(귀)

-오미(五味) : 酸(신맛), 苦(쓴맛), 甘(단맛), 辛(매운맛), 鹽(짠맛)

-오장(五臟) : 肝(간) : 血, 心(심장) : 神, 脾(비장), 肺(허파) : 氣, 腎(콩팥) : 精

-오수(五數) : 八(팔), 七(칠), 五(오), 九(구), 六(육)

-오방(五方) : 東(동), 南(남), 中(중), 西(서), 北(북)

-상징동물 : 靑龍(청룡), 朱雀(주작), - , 白虎(백호), 玄武(현무)

-오성(五聲) : 角(각), 徵(치), 宮(궁), 商(상), 羽(우)

-오상(五常) : 仁(인), 禮(예), 信(신), 義(의), 智(지)

-오색(五色) : 靑(청), 赤(적), 黃(황), 白(백), 黑(흑)

이 한자로 된 다섯 색(五色)이름을 한글로 바꾸는데 아주 잘 짜이고 꼭 지켜지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명사는 '하양', '파랑', '빨강', '검정', '노랑'으로 말하며 형용사는 '하얀', '파란', '빨간', '검은', '노란'으로 표현한다.

부사는 '하얗게', '파랗게', '빨갛게', '까맣게', '노랗게'로 표현하며 부사 변형으로 '허옇게', '퍼렇게', '뻘겋게', '꺼멓게', '누렇게'로 쓴다.

전반적인 변형을 살펴보면 '허옇게'는 '희끗희끗'이거나 '희끄무레', '퍼렇게'는 '푸릇푸릇', '푸르스레', '푸르둥둥'으로 바꿔 쓸 수 있고 '벌겋게'는 '불긋불긋', '불그스레', '불그죽죽', '거멓게'는 '거뭇거뭇', '거무스레', '거무튀튀', '거무죽죽', '누렇게'는 '누릇누릇', '누르스레', '누르팅팅', '누리끼리' 등으로 변형된다.

이렇게 오방색 다섯 가지에만 유독 고유한 이름을 붙여 줬다. 중요한 색깔이라는 뜻이다.

하양, 파랑 등 명사는 'ㅇ' 받침, '하얀', '파란' 등 형용사는 'ㄴ' 받침, '하얗게', '파랗게' 등 부사는 'ㅎ' 받침으로 끝난다.

이렇게 엄격히 지켜지는 것이 오로지 이 다섯 색상에서만 그러하다.

세상 어느 다른 색깔 이름에도 이렇게 규칙을 철저히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 놓고 나머지는 자연물의 색을 빗대어 표현한다.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식물을 색깔로 표현한 사례도 있다.

- 가지 색, 배추 색, 자두 색, 앵두 색, 감 색, 밤 색, 수박 색, 살구 색, 석류 색, 치자 색, 꽈리 색, 쪽 색(빛), 풀색(빛)

동물로 표현한 사례는

- 쥐색, 비둘기색, 고동색, 갈치 색

광물로 표현한 사례도 있다.

- (황) 금색(빛), 은색(빛), 호박색, 비취색, 구리색(빛), 옥색(빛)

자연물로 표현한 색깔도 있다.

- 하늘색, 땅 색, 물색(빛)

기타 자연물로는 '흙색', '똥색', '잿빛', '핏빛' 등이 있다.

오방색 이외의 색깔은 이것만으로도 색상이 서른 개가 넘는다.

참으로 과학적이면서도 인문학적 분류 방법이다. 그러면서도 불편함이 없이 정확하게 색감이 언어로 전달이 된다.

먼셀 색상표(Munsell Color System)가 무색하다. 그러면서도 변화무쌍하게 각 색상의 현 상태까지 너끈히 묘사된다.

먼셀 색상표(Munsell Color System)

'노랑'(명사)이 '노란'(형용사)이 되고 '노랗게'(부가)가 됐다가 누렇게도 두껍게 변하고 누르스레, 누르팅팅, 누리끼리로 나가면서 현재의 모습과 상태까지 묘사하는 단계적 발전을 보면 해학스럽기도 하다.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 水生木" (나무는 불을 살리고, 불은 흙을 살리고, 흙은 금을 살리며, 금은 물을 살리고, 물은 나무를 살린다)

"木剋土, 土剋水, 水剋火, 火剋金, 金剋木" (나무는 흙을 이기고, 흙은 물을 이기고, 물은 불을 이기며, 불은 금을 이기고, 금은 나무를 이긴다)

먼셀도 색상의 스펙트럼을 만들어 늘어놓고 보니 맨 끝이 맨 처음으로 연결돼 다시 시작하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의 색상표도 색상환(色相環)이라는 동그라미가 됐다.

상생상극의 동그라미와 같아진 것이다. 녹(綠)색, 갈(褐)색, 회(灰)색, 감(紺)색 같은 한자 이름이나 코발트ㆍ인디고ㆍ오렌지ㆍ상아색ㆍ핑크ㆍ카마인ㆍ카키 같은 구미식 이름보다 정겹기도 하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잘 체계화해서 만들었을까.

부연하자면 '빛깔'과 '색깔'을 구분해서 말하는 것도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보통의 색깔을 모두 무슨 무슨 '색'이라고 하는 데 비해 과학적으로 말해 빛의 분산과 파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경우는 '빛'이라 구분했다.

햇빛 달빛, 별빛, 등은 물론이고 물빛, 하늘빛, 노을빛 등은 색깔이 아니라 빛깔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잘 과학화해서 만들었을까?

* 자세한 내용은 김원 건축가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꿈을 그리는 건축가', '못다 그린 건축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