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타임 3시간 훌쩍 인생오페라 ‘탄호이저’...국립오페라단 45년만에 전막 재공연

데일리한국 2024-09-25 17:10:21
지휘자 필립 오갱과 연출가 요나 김이 지난 17일 ‘탄호이저’ 프로덕션 미팅에서 출연자 등을 만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지휘자 필립 오갱과 연출가 요나 김이 지난 17일 ‘탄호이저’ 프로덕션 미팅에서 출연자 등을 만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러닝타임 3시간이 훌쩍 넘는 인생오페라가 온다. 국립오페라단이 리하르트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45년 만에 다시 전막 공연한다. 이번 ‘탄호이저’는 2025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호흡을 맞출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이어지는 국립오페라단 ‘바그너 시리즈’의 신호탄이 될 작품이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꽃”이라고 평가받는 바그너의 대작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어떤 불꽃을 만들지 기대가 모아진다. ‘탄호이저’는 오는 10월 17일(목)부터 20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팬들을 만난다.

◇ 바그네리안 갈증 해소...바그너의 예술적 도전 담긴 ‘낭만적 오페라’

국립오페라단은 1979년 중앙국립극장에서 ‘탄호이저’를 한국 초연했다. 다음 달에 관객을 만나면 45년 만의 전막 오페라 재공연이다. 초연 당시 한국어로 번역해 무대를 꾸몄던 것을 고려하면 국립오페라단이 원어로 선보이는 첫 ‘탄호이저’인 셈이다.

주로 갈라와 콘서트오페라 형식으로 ‘탄호이저’를 관람했던 바그네리안(바그너 팬)에겐 오랜 갈증을 풀어줄 공연이다. 또 바그너 오페라 중 가장 심플한 작품으로 꼽히기에 바그너의 음악세계에 처음 발을 내딛는 초심자들에게도 좋은 입문작이다.

◇ 러닝타임 180분...오페라 숏폼 홍수 속 바그너가 선사하는 ‘음악 도파민’

지휘자 필립 오갱과 연출가 요나 김이 지난 17일 ‘탄호이저’ 프로덕션 미팅에서 출연자 등을 만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지휘자 필립 오갱과 연출가 요나 김이 지난 17일 ‘탄호이저’ 프로덕션 미팅에서 출연자 등을 만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탄호이저’는 독일에서 내려오는 전설과 중세 독일에 실제로 있었던 노래 경연대회라는 소재를 결합해 바그너가 작곡은 물론 직접 대본을 쓴 작품이다. 금욕주의와 쾌락주의의 갈등, 예술가의 고뇌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바그너가 지속적으로 개정했고 스스로 부제를 ‘낭만적인 오페라’로 붙일 만큼 그의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철학적 주제, 서술적 이야기 때문에 공연시간 역시 180분이 훌쩍 넘는다. 1분짜리 숏폼 영상에 열광하는 현대인의 취향을 거스르는 작품이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음악과 극이 유기적으로 튼튼하게 얽혀있다는 점, 아리아-레치타티보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오페라 형식에서 탈피해 무한선율이라는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예고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오페라 애호가 사이에선 인생에 한번은 반드시 들어야 하는 오페라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 17일 진행된 프로덕션 미팅에서 필립 오갱 지휘자는 “바그너 오페라는 마라톤을 하는 것과 같다. 힘을 잘 비축해서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긴 공연시간에도 재단사가 된 듯 음표 하나, 텍스트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특히나 탄호이저라는 인물에 집중해서 지휘할 예정이다”라고 말해 기대감을 높였다.

◇ 지휘 필립 오갱·연출 요나 김...‘바그너 스페셜리스트 군단’ 결성

‘탄호이저’를 위해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들이 뭉쳤다. “유려한 현과 당당한 금관”으로 2016년 국립오페라단 ‘로엔그린’을 이끌었던 지휘자 필립 오갱이 다시 한 번 한국을 찾는다. 그는 ‘로엔그린’은 물론이고 베이징 국제 음악제에서 중국 최초로 ‘니벨룽의 반지’ 전막을 연주해 주목받았다.

연출은 유럽 오페라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한국인 연출가 요나 김이 맡았다. 독일 최고 권위의 극예술상인 ‘파우스트상’에 2010, 2020년 두 차례 노미네이트 됐으며 2022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니벨룽의 반지’를 1주일간 선보이는 도전을 이끌기도 했다. 국립오페라단과의 인연은 2015년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이후 두 번째로 독일 오페라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바그너 오페라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선보인다.

탄호이저 역에는 테너 하이코 뵈르너와 다니엘 프랑크가 함께 한다. 하이코 뵈르너는 독일 출신 테너로 올 3, 4월에 이미 독일 슈베린의 메클렌부르크 주립극장에서 ‘탄호이저’를 성공적으로 공연했다. 특히 2022년부터 올해까지 ‘로엔그린’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으로 레퍼토리의 대부분을 채우며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다니엘 프랑크는 스웨덴 출신으로 오페라 가수로 데뷔하기 전 10년 가량을 록가수, 희곡 교사 등으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넓은 음역대, 파워풀하고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진중하고 무거운 작품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다니엘 역시 ‘로엔그린’ ‘파르지팔’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레퍼토리의 대부분을 바그너의 작품으로 쓰고 있는 테너다.

엘리자베트 역은 소프라노 레나 쿠츠너와 문수진, 베누스 역은 메조소프라노 쥘리 로바르-장드르와 양송미, 볼프람 폰 에센바흐 역은 바리톤 톰 에릭 리와 김태현, 헤르만 역은 베이스 최웅조와 하성현이 캐스팅됐다.

연주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 노이오페라코러스, 아트컴퍼니 하눌이 맡는다.

◇ 예술의전당과 공연영상화 활성화...화면·사운드 등 보다 높은 퀄리티 선사

국립오페라단은 예술의전당 ‘디지털 스테이지’와 협업을 맺고 보다 높은 수준의 화질과 사운드로 오페라 ‘탄호이저’를 온라인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국립오페라단은 2021년부터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크노마이오페라(KNOmyOpera)’ 사업을 시작해 매 정기공연을 라이브 스트리밍과 VOD를 통해 서비스해왔다. 예술의전당은 2023년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라이브, VOD로 제공하는 공영상 전문 플랫폼인 디지털 스테이지를 론칭했다. 국립오페라단은 양질의 오페라 콘텐츠를, 예술의전당은 공연 영상 촬영 노하우를 제공해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오페라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탄호이저’는 10월 19일(토) 오후 3시 크노마이오페라와 네이버TV를 통해 랜선 관객들을 먼저 만날 예정이며, 이후 예술의전당의 편집·보정 과정을 거쳐 VOD로 제작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