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한산의 자랑, 소곡주

연합뉴스 2024-09-25 15:00:38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신종근 전시기획자.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미국에 수출되는 한산소곡주

충남 서천군 한산하면 많은 사람이 한산 모시를 떠올리고 애주가는 한산소곡주를 얘기한다.

예로부터 한산모시는 품질이 우수하며 섬세하고 단아해 모시의 대명사로 불려 왔다. 모시 짜는 모습은 구한말 화가 기산(箕山) 김준근(생몰년도 미상)의 그림에도 잘 나타나 있다.

김준근의 모시 짜기 풍속화

김준근은 19세기 말 부산·원산 등의 개항장에서 풍속화를 그려 주로 서양인들에게 팔기도 했던 풍속 화가다.

그의 풍속화는 우리나라는 물론 독일, 프랑스,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러시아,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전 세계 20여 곳의 박물관에 1천500여 점이 전시돼있다.

당시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의 각종 여행기에 삽화로 쓰이면서, 그는 조선의 풍속을 세계에 널리 알린 '한류 화가'가 됐다. 또 우리나라 최초로 번역된 서양 문학작품인 '천로역정'(天路歷程)의 삽화가로도 활약했다.

김준근의 천로역정 삽도

한산의 또 다른 명물인 한산소곡주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서 만드는 약주다. 한산소곡주는 1천300년 전 백제 왕실에서 즐겨 음용하던 술로 알려져 있다. 고려 때부터 내려온 명주로 한산면 지현리 건지산 기슭의 우물의 물로 빚어야 맛나다고 한다.

한산소곡주

한산 전역의 양조장과 가정에서 저마다의 비법으로 생산되며 현재 한산 지역에 양조장 70여 곳이 있다.

'한산'이라는 이름은 2013년 6월에 대한민국 특허청에 지리적표시 단체표장을 최초로 등록했기 때문에 충남 서천군 한산면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술에는 법적으로 한산소곡주라는 명칭을 붙일 수 없다.

그래서 한산면에 인접한 다른 면에서도 소곡주를 빚고 있지만 한산소곡주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출하하고 있다.

현대의 한산소곡주는 한산면 호암리에서 김영신(작고) 전수자가 대대로 선조들로부터 이어진 한산소곡주 제조법을 전수하여 명맥을 이어 왔다. 김 전수자는 1979년 충남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받았고, 그의 며느리 우희열 명인이 호암리로 시집와서 소곡주 빚기를 30여년간 했다.

우희열 명인은 시어머니인 김영신 전수자의 별세 후 1997년 충남 무형문화재 제3호를 승계받았다. 이후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19호로 지정돼 소곡주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 아들인 나장연 씨가 현재 전수자로 다시 계승하고 있다.

(우)우희열 명인과 그의 아들 나장연 전수자

소곡주의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옛날에는 흰옷을 입고 정갈한 마음으로 담갔다 해 소곡주라 불렸다는 설이 있다. 희다는 것은 맑다는 의미고 '곡'에는 술이라는 뜻도 있기에, 소곡이 곧 청주(淸酒)의 다른 말이라는 설도 있다.

또 백제가 멸망한 후 유민들이 소복을 입고 담가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는 말도 있고 소곡이 누룩의 종류라는 추측도 있다.

한산소곡주 빚다

한산소곡주는 일명 '앉은뱅이 술'로 유명하다.

그 유래는 며느리가 술맛을 보기 위해 시루 뚜껑을 열어서 술을 찍어서 젓가락을 빨다 어느새 취해 버려 일어서지도 못한 채 앉은뱅이처럼 엉금엉금 기어 다녔다 해서 붙여진 말이란다.

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한산을 지나가다가 목을 축이려고 주막에 들러 한산소곡주를 한잔하고 흥취가 돋아 시를 읊으며 달 풍경을 즐기다가 과거 날짜가 지나버려 풀이 죽어 집으로 다시 갔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한산소곡주는 기본적으로는 단맛과 감칠맛이 강하고, 알코올 맛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소곡주는 대부분 찹쌀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 외 부재료로 국화, 홍고추, 메주콩 등을 사용한다.

소곡주는 생주와 살균약주로 두 가지가 생산되고 있지만 생주는 유통에 어려움이 있어 대부분 살균약주다. 또한 소곡주를 증류한 불소곡주 또는 소곡화주라는 40도가 넘는 증류주도 있다.

서천군에서는 한산소곡주 공용 병을 개발해서 활용하고 있지만 일부 양조장은 독자적인 패키지를 사용한다.

한산소곡주 시음행사하는 서천군

2015년부터 서천군에서는 한산 소곡주 축제가 매년 10월 마지막 주에 개최되며, 관광객이 함께 할 수 있는 소곡주 빚기 체험, 품평회, 안주 경연대회, 소곡주 경매 행사 등이 열리고 있다. 이 행사에서는 소국주뿐만 아니라 서천군의 다른 특산품인 한산모시와 한산 모시떡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한산소곡주 체험관이 있어 평상시(월요일 휴관)에도 여러 양조장에서 만든 소곡주를 시음할 수 있으며 구매도 가능하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