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교수서 소설가 변신 우신영 "책상물림 부채감 덜고 싶었죠"

연합뉴스 2024-09-25 01:00:27

도시인의 욕망과 상처 그린 '시티 뷰'로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자 우신영 작가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현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뭘까요. 돈과 성(性)이죠. 돈과 성이 교차하는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장소가 몸이고요. 이 몸을 통과하지 않으면 현대소설을 쓸 수 없죠."

장편소설 '시티 뷰'를 최근 펴낸 우신영(40) 작가는 인천대 교수 시절 한국현대소설을 가르치던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수업을 시작하곤 했다.

'시티 뷰'는 문학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전업 소설가가 된 우 작가가 돈과 성이 교차하는 몸과 그 몸에 투영된 욕망과 상처가 치열히 맞부딪치는 현장인 도시의 초상을 세밀한 필치로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강박과 결핍, 자해와 산업재해, 트라우마 등에 시달리면서도 겉으로는 매끄러운 삶을 영위하려 고군분투하는 현대 도시인들 모습을 서늘하게 담아냈다.

중년의 중산층부터 불안정한 생계를 이어가는 20·30대 청년 노동자까지 한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계층의 욕망과 상처를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인물을 통해 속도감 있게 펼쳐 보인 이 작품은 올해 제14회 혼불 문학상을 받았다

우 작가는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티 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책상물림'이라는 자의식에서 비롯된 부채감에서 쓴 작품이라 상을 받으면서도 복잡한 심경"이라면서 "세상에 부채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글을 계속 쓰고 싶다"고 말했다.

우신영 장편소설 '시티 뷰'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문학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작가는 올해 초까지 인천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데뷔작인 '시티 뷰'는 인천 송도에서 일하고 거주했던 작가가 첨단 도시 송도를 배경으로 쓴 세태 소설이다.

의사인 석진과 필라테스 센터장인 수미는 각자의 욕망과 결핍을 숨긴 채 표면적으로 안정적인 부부 생활을 꾸려간다. 수미는 연하인 헬스트레이너 남자 친구와의 만남을 몰래 이어가지만, 이는 그저 "사소한 부도덕"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시 외곽 공단의 노동자 유화가 등장하면서 부부 사이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작가는 누구나 겉과 속이 다르면서도 모두가 고독감을 느끼는 비정한 도시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또한 도시 중심부와 외곽을 의도적으로 대비시켜 한 공간 속 서로 다른 삶의 양상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인공 암벽을 타고 오르며 쾌감을 즐기는 삶과 마천루의 유리창을 청소하느라 고공에 매달려 위험을 감수하는 삶을 나란히 비춰 보이기도 한다.

"송도는 유리가 많은, 현란하게 아름다운 도시죠. 어느 날 도시가 어떻게 이렇게 투명하게 유지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학생들에게 '난쏘공'(조세희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소설 속 철거 계고장을 읽어주기엔 스스로가 못나 보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대신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는 그렇게 지난 2월 다니던 대학에 사표를 내고서 4~5월 두 달에 걸쳐 '시티 뷰'를 집중적으로 집필했다.

혼불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두고 "공간이 갖는 상징성과 장편소설에 부합하는 스케일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라면서 "삶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는 진실을 치열하게 쫓아가면서도 '인간에 대한 탐구'라는 소설 쓰기의 동기까지 아우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우 작가는 강단을 박차고 전업 작가가 된 첫해인 올해 혼불문학상 외에도 여러 영예를 안았다.

혼불문학상 수상작 '시티 뷰'의 우신영 작가

지난달 펴낸 동화 '언제나 다정죽집'(비룡소)이 제30회 황금도깨비상을 받았고, 그에 앞서 올해 초에는 동화 '맨홀에 빠진 앨리스'로 제1회 '이지북 책읽는샤미 어린이 장르동화상'도 수상했다.

작가는 현대소설과 문학교육론을 가르치던 열정을 바탕으로 동화와 소설 쓰기 작업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글쓰기는 고통스럽고 보기 싫은 제 발밑을 봐야 하는,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 같습니다. 가르치는 일과 글쓰기 중에 고를 수 있다면 가르치는 것을 고르고 싶지만,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계속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yongl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