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수필가 11인] 장금식 '활자, 날개 달다'

데일리한국 2024-09-24 20:39:31
사진=장금식 제공 사진=장금식 제공

나는 거리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서재라 할 것도 안되는 가판대 나무판자나 철판 위에 얌전히 앉아 있다. 내가 사는 집은 프랑스 센 강변의 고서점이다. 얼굴은 누르스름하고 세월의 때, 얼룩이 남아 행인의 시선을 끌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매일 무슨 의식을 치르듯 센 강변과 나를 지키기 위한 마음은 비장하다. 나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존중하고 나를 새기느라 혼혈을 기울였을 내 주인의 고결한 영혼을 사랑하는 헌 책이다.

나무와 꽃이 가득한 정원이 있는 집은 아니나 센 강변에 자리 잡은 친구들과 매일 옛 추억을 나눈다. 낮은 자세로 바짝 엎드린 글자들은 서로 말을 주고받고 몸을 비비며 행인의 입을 쳐다본다. 모퉁이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거나, 이게 저것보다 좋다 나쁘다, 종이 질이 어떻다는 둥, 글자의 변형이 심하다고도 한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이제 쓸모없는 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스스로 인정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인이 된 주인의 영혼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걱정은 잠시, 오늘도 센강 주변에서 관광객을 맞이해 인사하고 변치 않을 우리의 가치관을 지키며 하루를 이어간다. 한때 혈기왕성하고 모든 독자가 한 번씩 만져주던 전성기도 있었지. 그때의 풍요로움 덕분에 친구들과 신세타령하지 않는다. 나무판자 거처는 나무의 아늑함과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숭고한 공간이기도 하다. 과거를 회억하며 걸러냄 없이 불평하듯 현재의 삶을 뱉어놓는다면 이 또한 깔끔하게 차려입었던 내 진짜 주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리라.

윤슬 반짝이는 센강을 눈으로 수없이 항해하며 내 마음을 정박해놓을 곳을 찾아보는 놀이도 재미있다. 서적 방 주인, 한 권이라도 팔려고 하는, 그의 움직이는 눈동자와 유유자적 여유 있는 내 눈동자와는 같지 않으나 이 센강을 떠날 수 없는 반강제적인 운명을 받아들인다. 무례한 독자가 영혼이 깃든 주인의 책을 베개 삼더라도 나는 주인의 활자에 날개를 다는 상상을 한다. 그 자유를 누린다. 

내가 이렇게 허황한 꿈속에 빠져 있는 어느 날, 누군가가 나를 찾는듯한 목소리에 내 귀가 번쩍, 몸이 움찔,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화들짝 고개를 드니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내가 찾는 건 이 책이 아니에요"라는 말과 함께 홀연히 뒷모습만 남긴다. 세속적이거나 지나친 상술에 의지해 사는 고서적 주인이 드물어 그런지 행인들도 거친 말투나 험한 손길로 내동댕이치지는 않는다. 

센강을 떠나 어느 부잣집 마님의 서재 장식용으로 쓰이기보다 센강의 물소리를 들으며 유람선 탄 관광객의 환호 소리 듣는 게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달리 센강과 고서적 방을 사랑했던 내 주인이 "나무가 있고 책이 있는 센 강변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이다"라고 한 말은 정말 나에게 큰 위안이다. 주인의 이름을 딴 '아나톨 프랑스 강변'에 위치해 무척 큰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덧붙인다.

또 한번은 머리가 희끄무레한, 이 시대 최고의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문학인처럼 말하는 사람이 왔는데 나 아닌 내 형을 찾고 있었다. 나는 그 노신사가 나를 간택해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아슬아슬. 2, 3년 일찍 세상에 나온 그 형을 찾으니 결국은 허사였다. 묘한 마음은 '간택 받음과 간택 받지 못함'이 늘 공존하니 참 신기할 따름이다. 그때 비둘기 한 마리가 내 마음을 위로하듯 포르르 날아와 나를 한번 살짝 쪼고 간다.

내 글자의 주인어른에 대해 가끔 궁금해 나름대로 상상을 해보는데, 아마도 그는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예술가의 혼을 간직하고 있었을 게 분명해. 자유로운 영혼이라 예리해야 하는 수치와는 별개의 세상을 살았을 거야. 마음의 부자, 낭만과 멋이 있었을 주인을 생각하니 내가 그의 자식이 된 데 대해 무척 뿌듯하다. 아마 고인이 된 후에도 찾는 사람이 많은 걸 보니 생전엔 꽤 개성 넘치고 글의 힘이 아주 센 분이었던 것 같아.

글 빚어내는 능력과 말 빚어내는 능력에 다소 차이는 있겠으나 그 당시 목마른 독자들의 목을 축여주기엔 충분하지 않았을까. 글자 하나하나에 엄청 무게를 실었을 것 같은데 무게만큼 감동도 주었겠지. 주인은 분명 글을 쓰기 위해 늘 생각을 가다듬고 심호흡하며 책상에 앉았을 거야. 기도한 후 성찰이든 반성이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온갖 감각을 끌어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며 영혼을 정화해나간 사람임엔 분명해.

그렇다면 지금 나무판자 한곳에 움츠리고 있는 나도 날마다 영혼을 정화하고 있는가? 내 글자 속에 스며있는 영혼이 변함없이 "쓰임 받기"를 원하는 바람 하나뿐이라는 것. 누군가가 나를 이용해주고 내 글자를 흡입하며 영성과 지성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는 걸 보고 싶다는 것. 흔들리지 않는 이 믿음 하나로 나를 정화한다. 

나는 새 책과 비교해 무한한 장점이 있다고 소리 없는 읊조림도 잊지 않는다. 길이 잘나 손때의 흐물거림과 부드러운 촉감은 왠지 낯설지 않은 친숙한 사람, 부담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것 같은 장점 하나. 그 안에 울고 웃는 숱한 사연,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다 알고 있어 도인이나 마찬가지라는 장점 둘. 언젠가 다 닳아 몸체가 흔적 없이 사라져도 영혼이 남을 거라는 장점 셋. 사람이 있는 한, 내 존재 가치는 유효함에 변함이 없다.

헌책으로만 대접받고 싶지 않은 헌책인 나는 '낡았다. 오래됐다'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날마다 '옛 고(古)'라는 글자에 날개를 단다.

장금식 수필가. 사진=주간한국 제공 장금식 수필가. 사진=주간한국 제공

◆장금식 주요 약력

△경북 칠곡 출생 △'계간수필'(2014) 등단 △수필집 '내 들판의 허수아비' '프로방스의 태양이 필요해' △현재 '인간과문학' 편집장 △소르본 대학원(불문학) 석사과정 졸업 △프랑스어 교사, 프랑스 국제학교 강사 △아르코 발표지원 선정 △정읍사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