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하지마' 소송 건 빙그레, 화려한 내로남불 전적

스포츠한국 2024-09-24 09:22:20
빙그레 '메로나'(위), 서주 '메론바' ⓒ각 사 홈페이지 빙그레 '메로나'(위), 서주 '메론바' ⓒ각 사 홈페이지

[스포츠한국 임현지 기자] 빙그레가 자사 제품 ‘메로나’와 주식회사 서주의 ‘메론바’ 포장지가 유사하다며 제기한 부정경쟁행위금지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포장 양쪽 끝만 진한 초록색인 점, 양쪽에 멜론 사진을 배치한 점, 네모반듯한 글씨체 등이 비슷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상품 포장에 사용할 수 있는 색상은 상품 종류에 따라 어느 정도 한정돼 있어 색상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서주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판결에 대해 누리꾼들은 “누가 봐도 표절이다”, “미투 따라 하기 제품이다”, “헷갈려서 메론바를 사 먹은 적이 있다” 등의 의견을 내며 빙그레 편을 들고 나섰다. “서주를 불매해야 한다”, “앞으로 메로나만 사 먹겠다” 등 다소 강한 어조의 댓글까지 달린다. 소송에선 패소했으나 ‘상도덕’을 중요시 여기는 대중들의 민심은 빙그레를 향했다.

빙그레 역시 소송 제기 당시 “메로나의 차별화된 포장이 국내에 널리 인식됐고, 이는 투자와 노력으로 만든 성과”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빙그레도 ‘표절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회사다. 경쟁사 우유의 패키지와 이름 따라하기 의혹, 중소기업 모방 의혹을 비롯해 해외 광고 베끼기, 일본 제품 카피 등 ‘국제적 망신’을 당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남양유업 '맛있는 우유 GT'(왼쪽), 빙그레 '참 맛있는 우유 NT' ⓒ온라인 커뮤니티 남양유업 '맛있는 우유 GT'(왼쪽), 빙그레 '참 맛있는 우유 NT' ⓒ온라인 커뮤니티

빙그레, 남양유업 ‘맛있는 우유 GT’ 모방

남양유업은 지난 2006년 빙그레가 출시한 ‘참 맛 좋은 우유 NT(이하 맛 좋은 우유)’가 자사의 ‘맛있는 우유 GT(맛있는 우유)’를 모방했다며 빙그레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남양유업은 “빙그레가 제품 ‘맛’을 강조하는 자사 제품명을 모방해 비슷한 이름을 썼고, 포장 로고도 색깔만 달리 표현해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맛있는 우유는 2003년 출시된 남양유업의 대표 제품이다. 파란색 바탕 안쪽에 흰우유가 가득 따라지는 컵 모양 디자인이 특징이다. 빙그레의 맛 좋은 우유 역시 파란 바탕에 흰우유가 넘실거리는 디자인을 택했다. 남양유업은 당시 빙그레의 맛 좋은 우유를 구입한 소비자 가운데 43%가 해당 제품을 남양유업의 맛있는 우유로 잘못 인식하는 등 소비자들에게 혼동을 주고 있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1년 뒤 재판부는 남양유업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빙그레는 우유제품에 관해 용기 제품 등을 판매 또는 배포해서는 안 되며 보관 중인 포장 용기와 사용한 제품을 각각 폐기하라”고 판시했다. 빙그레는 항소 여부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결국 맛 좋은 우유는 생산 중단됐다.

2009년 공개된 코카-콜라의 ‘코크 베이비(coke babies)’ 광고(위), 빙그레 2013년 ‘참붕어싸만코’ 광고 ⓒ유튜브 캡쳐 2009년 공개된 코카-콜라의 ‘코크 베이비(coke babies)’ 광고(위), 빙그레 2013년 ‘참붕어싸만코’ 광고 ⓒ유튜브 캡쳐

해외 광고·日 아이스크림 표절에 국제 망신

빙그레는 2013년 ‘참붕어싸만코’ 제품 광고를 시리즈로 선보였다. 지구인의 간식거리가 돼 버린 동족의 복수를 위해 거대한 비행선에 몸을 싣고 지구에 상륙하는 싸만코 대원들이 매서운 추위에 다시 아이스크림 신세로 전락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는 2009년 공개된 코카-콜라 ‘코크 베이비(coke babies)’ 광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커다란 코카-콜라 비행선이 지구를 침공한 장면과 흡사하다는 것.

당시 빙그레는 “외계 영화의 전형적인 장면”이라고 해명했다. 거대한 물체의 등장과 당황하는 시민들의 모습, 지구 침공이 뉴스로 전달되는 장면 등이 영화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국코카콜라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광고 표절 논란은 일단락됐다.

빙그레 '슈퍼콘'(왼쪽), 일본 에자키 글리코의 ‘자이언트 콘’ ⓒ다나와, 아마존 캡쳐 빙그레 '슈퍼콘'(왼쪽), 일본 에자키 글리코의 ‘자이언트 콘’ ⓒ다나와, 아마존 캡쳐

2018년에는 빙그레가 야심 차게 출시한 ‘슈퍼콘’이 일본 제품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슈퍼콘은 4년간 100억원을 투자한 대규모 아이스크림 프로젝트로, 당시 대표적인 콘 아이스크림이 없던 빙그레가 절치부심 끝에 선보인 제품이다. 설탕 함량을 4분의 1로 줄이고, 초콜릿·땅콩 등 토핑은 50% 이상 늘리며 차별화를 꾀했다. 특히 ‘스타실’ 공법을 통한 삼각별 모양의 새로운 포장 방식을 적용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해당 제품은 출시되자마자 일본 유명 제과 업체인 에자키 글리코의 ‘자이언트 콘’을 카피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삼각별 모양의 스타실 공법은 물론 아이스크림 전체 이미지를 패키지에 삽입한 점, 기울어진 글자체, 사진 속 토핑 모양 등이 표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빙그레는 “1980년대 선보인 자사 제품 ‘허리케인 콘’을 업그레이드한 것”이라며 표절을 부인했으나, 결국 패키지를 수정했다.

경진식품 '꾸이맨' (왼쪽), 빙그레 '꽃게랑 꾸이' ⓒ다나와,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경진식품 '꾸이맨' (왼쪽), 빙그레 '꽃게랑 꾸이' ⓒ다나와,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중소기업 제품 베끼기…원조는 매출 타격

빙그레는 앞서 2012년 중소 식품 기업인 경진식품의 ‘꾸이맨’과 유사한 ‘꽃게랑 꾸이’를 출시해 도마 위에 올랐다. 꾸이맨은 경진식품의 오랜 인기 상품으로, 동그랗고 납작한 용기와 비닐 패키지를 벗겨내는 개봉 방식이 특징이다. 그러나 꾸이맨은 빙그레 꽃게랑 꾸이의 등장으로 반년 만에 매출이 30% 가까이 추락하는 등 직격탄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진식품은 빙그레를 상대로 소송을 예고했으나, 실제 진행되진 않았다.

빙그레는 자사 제품을 침해한 중소기업에겐 가차없는 소송전을 펼쳐 ‘이중잣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7년 다이식품, 한국금차도, 준인터내셔널 등 중소기업 3곳이 ‘바나나맛 우유’ 모양을 적용한 젤리 제품을 출시하자, 이들을 상대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가처분 소송을 냈다. 당시 재판부는 빙그레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해당 젤리는 편의점에서 철수했다.

업계 관계자는 “식품업계 지적재산권 침해 소송은 자사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의도일 수 있지만, 과거에 보여준 행동과 일관되지 않는다면 대중에게 비판받을 수 있다”며 “모방 논란은 단순히 법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공정성에 관한 문제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혁신과 공정 경쟁을 촉진하려면 자체적인 연구개발에 독창적인 제품 개발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