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Y] “묘수냐 악수냐”…‘제주소주’ 품은 오비맥주, 넘어야 할 산

뷰어스 2024-09-24 03:00:27
(사진=오비맥주)

‘국내 1위 맥주 전문 기업’. 오비맥주가 줄곧 내세워왔던 정체성입니다. 이에 걸맞게 오비맥주는 국내시장 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키는 ‘카스’를 필두로 각종 해외 맥주와 수제 맥주까지 다양한 맥주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주요 경쟁사가 소주와 맥주 등을 함께 제조하는 반면, 오비맥주는 ‘맥주 외길’이라는 점을 통해 제품에 대한 진정성을 강조해왔죠.

그런 오비맥주가 최근 국내 지역 소주 업체를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과거 ‘제주 올레소주’, ‘푸른 밤’ 등을 생산하던 ‘제주소주’가 그 주인공인데요. ‘제주소주’는 앞서 이마트에 인수된 뒤 경영악화로 신세계L&B에 합병되면서 국내 소주 사업에서 철수했었습니다. 그 뒤론 수출용 과일 소주 제품을 생산·판매해왔는데, 이번에 매각을 위해 다시 물적분할된 것이죠.

갑작스러운 인수 소식에 국내 주류업계는 술렁거렸습니다. 현재 국내 소주 시장은 하이트진로가 과반이 넘는 점유율을 차지한 가운데, 롯데칠성음료 정도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습니다. 두 기업이 점차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지역소주 업체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이죠. 이런 가운데 오비맥주가 소주 시장에 뛰어든다면 남은 파이를 두고 벌이는 다툼이 한층 치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양대 소주 업체 역시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죠.

하지만 정작 오비맥주는 국내 소주 시장 진출 여부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습니다. 제주소주 인수는 ‘카스’의 해외시장 확대를 위한 포석이라는 입장이죠. 그간 제주소주가 수출하던 과일소주의 해외 유통망을 활용해 ‘카스’ 글로벌 진출에 속도를 내겠다는 건데요. 주류업계 특성상 여상한 ‘글로벌 진출’ 전략임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 남습니다. 오비맥주의 제주소주 인수를 둘러싼 셈법을 짚어보겠습니다.

■국내 소주 시장 진출, 매력적인 선택지 아냐

오비맥주가 당장은 국내 소주 시장 진출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밝혔습니다. 그러나 가능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소주 업계에서 오비맥주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앞서 이마트는 제주소주를 운영하면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오비맥주는 유흥채널을 중심으로 한 맥주 영업망을 활용한다면 의외의 시너지를 낼 수도 있습니다. 맥주를 판매하며 쌓아온 주류 영업 노하우 역시 든든한 밑천이죠.

하지만 국내 소주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주류 소비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국내 소주 출고량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죠. 이 와중에 양대 소주 업체가 공격적으로 점유율을 확대하다 보니, ‘애향심 마케팅’을 앞세워 지방에서 입지를 다져온 지역소주들은 안방에서조차 밀려나고 있습니다. 맥주에서 잔뼈가 굵은 오비맥주라 해도, 현재 소주 시장은 신규 진입자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시장이 아닙니다. 오비맥주가 지닌 마케팅 역량을 무작정 소주에 쏟아붓기도 어렵습니다. 호시탐탐 하이트진로가 ‘맥주 1위 탈환’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제주소주 입지도 걸림돌입니다. 제주소주는 생산공장을 제주에 두고 있는데요. 도서라는 특성상 제품 출고 시 물류비가 가중되고, 악천후 등 변수까지 있어 본격적인 국내 시장 진출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제품 한병당 마진이 크지 않은 소주 특성상 원가관리에 있어 공병 회수 및 재활용이 굉장히 중요한데, 제주도는 이마저도 불리한 입지입니다. 이 때문에 주류 업계에서도 오비맥주의 소주 시장에 따른 파급력을 인정하면서도, 그 가능성 자체를 높게 보지는 않는 분위기입니다.

■제주소주 유통망 활용한 이유, ‘K-소맥’ 활용

신세계L&B가 제주소주 생산시설을 활용해 베트남에 수출한 '힘' 소주. 베트남 현지 마트에서 현재 판매중이다. 사진=김성준 기자

오비맥주가 고려하고 있다는 수출 시장으로 넘어가 볼까요. 오비맥주는 제주소주가 가진 해외 영업망을 활용해 ‘카스’의 글로벌 진출 확대를 꾀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왜 굳이 제주소주의 유통망을 활용해야 했을까요? 오비맥주는 세계 최대 다국적 맥주기업인 AB인베브를 모회사로 두고 있습니다. AB인베브는 ‘버드와이저’, ‘코로나’, ‘스텔라 아르투아’, ‘호가든’ 등 산하에 500개가 넘는 맥주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죠. 카스 해외진출을 위해서라면, AB인베브 유통망을 활용하는 편이 낫지 않나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생깁니다.

이에 대한 오비맥주는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AB인베브라고 해도 모든 국가에 유통망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인데요. 이중 오비맥주가 눈여겨보는 것은 동남아 지역입니다. 제주소주는 동남아 등지에서 10개 안팎 국가에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이 지역은 K-소주가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기도 하죠. 오비맥주는 소주 인기에 편승해 ‘카스’를 알리는 데 힘을 쏟겠다는 방침입니다.

오비맥주는 단순히 제주소주 유통망만 활용하는 것이 아닌, ‘소주’와 ‘맥주’를 함께 선보인다는 것도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식음료로 확장되는 소위 ‘K-열풍’, 그 중에서도 ‘소맥’에 대한 수요를 카스와 제주소주로 대응한다는 방침인데요. 소주가 동남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점차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만큼, 해당 지역에서도 시장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권역에서는 반대로 AB인베브의 유통망을 활용한 시너지로 제주소주 제품을 판매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죠.

■가장 큰 걸림돌 ‘경쟁력’…뾰족한 해법 아직 없어

오비맥주는 제주소주 인수를 통해 ‘글로벌 진출’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냈습니다. 분명 지속 성장을 위해선 한정된 국내 주류 시장에서 해외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은 결국 ‘카스’가 해외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느냐입니다. 존재 자체부터 알려야 했던 소주보다도 맥주 수출이 훨씬 어려운 이유는 맥주가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주류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국가를 가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로컬 맥주’ 브랜드들이 자리잡고 있는 데다, 세계 유수의 맥주 브랜드들과도 경쟁해야 하죠.

브랜드 인지도만큼이나 가격 경쟁력도 문제입니다. 일단 부피가 크고 무거워 수출시 물류비 부담이 커집니다. 주류의 경우 수출 가격에 관세나 현지 세금까지 크게 가중되는 편이죠. 국내 인건비와 생산비까지 고려하면 동남아 등지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도저히 확보할 수 없다는 게 국내 주요 주류 업체들의 설명입니다. 실제로 소주 역시 동남아 지역에서조차 국내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동남아와 국내 사이 소득수준 격차를 고려하면 체감 가격 차이는 훨씬 커지죠. 소주는 그나마 ‘K-증류주’라는 신규 카테고리로 돌파구를 찾았지만, 맥주는 그마저도 어렵습니다.

이 두 가지 문턱을 넘어서야 비로소 ‘맛’으로 경쟁할 수 있습니다. 이마저도 글로벌 유명 맥주 브랜드들과 비교해 우위를 장담한다고 보장할 수 없죠. 오비맥주로서는 브랜드 인지도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서부터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 차별화를 위한 제품 개발 등 넘어야 할 난관이 산더미인 셈입니다. 업계 관계자들도 오비맥주의 선전을 통한 시장 확대 자체엔 긍정적이지만, ‘K-주류’가 세계시장에서 이제 걸음마 단계인 만큼 당장 성과를 내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오비맥주는 이제 막 제주소주 인수를 마친 만큼, 구체적인 계획을 언급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입장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전략이나 계획 등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건데요. 다만 최근 파리 올림픽에서 국내 주류 브랜드 최초로 올림픽 공식 파트너로 선정되고, 세계 각국에서 홍보 부스를 운영하는 등 국제적 입지를 다져온 만큼 ‘카스’ 브랜드 잠재력은 충분한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맥주 전문 기업’을 탈피한 오비맥주가 세계시장에서의 첫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디딜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