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 조정석 "울분과 분노 넘어 성장하는 변호사 역 드문 기회였죠"[인터뷰]

스포츠한국 2024-09-22 10:12:54
배우 조정석/잼엔터테인먼트 배우 조정석/잼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조정석에게 올 여름은 그 어느해보다 화려하고 뜨겁고 깊었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지난 7월 31일 개봉한 영화 '파일럿'이 469만 명의 흥행을 이루며 올 여름 개봉작 중 흥행 1위를 차지했는가 하면 지난달 개봉한 '행복의 나라'에서는 이전 작품들에서 보기 힘들었던 분노와 울분 등의 감정들을 깊은 진폭으로 선보이며 관객들을 먹먹하게 했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성실하게 한걸음씩 꾸준히 계단식 성장을 이뤄온 그를 향한 대중들의 신뢰는 매우 단단하다. 

극장가 초성수기 여름 시장에 작품 한편 내놓는 것도 어려운 시절에 2편의 작품을 연달아 개봉시키는 것도 모자라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신인가수 조정석'을 내놓고 싱어송라이터에 도전하기도 했다.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이선균)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이 연출을 맡은 '행복의 나라'는 10·26사태와 12·12쿠데타를 관통하는 최악의 정치 재판을 소재로 했다.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되 재판을 받게 된 중앙정보부장의 수행비서관 박태주(실존 인물 박흥주 대령)의 재판이 열리고 군부 거대 권력의 중심이자 합수단장인 전상두(유재명)에 의해 재판이 좌지우지 당하게 되자 박태주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인후의 스토리를 그렸다. 

조정석은 영화 '행복의 나라' 인터뷰에서 "저에게 '파일럿'과 '행복의 나라' 모두 소중하다. 두 작품을 여름 극장가에 연달아 선보이게 돼 요즘 기분이 너무 좋기도 하지만 부담도 크다. 그런데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에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작품을 통해 제 안의 이야기들을 꺼내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 조정석/잼엔터테인먼트 배우 조정석/잼엔터테인먼트

- '행복의 나라'의 출연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부분은 무엇인가. 

▶ 제 기존 역할들과 거리가 있고 웃음기 빠진 역할이라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평소 판타지를 좋아하는데 우리 영화는 10.26 사건 이후의 재판을 소재로 했지만 제가 연기한 정인후라는 가공인물로 인해 판타지 장면이 등장한다. 이런 점이 작품의 매력이라 느꼈다. 

- 극중 타 인물들에 비해 정인후는 극화된 캐릭터다. 캐릭터 구축을 위해 중점을 둔 것은?

▶ 정인후가 이 작품을 이끌고 가는 길잡이라 생각했다. 법정신이나 취조신, 골프장 장면, 엔딩까지 모든 각각의 장면들에 감정을 잘 분배하는 것이 저에게 가장 중요했다. 너무 감정이 북받치는 장면들이 나오기에 그런 것들을 흐름에 맞게 잘 분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조정석 배우는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코믹 장르에서 두각을 드러내왔다. '행복의 나라'는 톤앤매너가 전혀 다른데 부담은 없었나. 

▶ 이 이야기의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이 역할로 사랑받아야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 실화에 판타지가 꽤 가미되어 있다. 다른 캐릭터들은 대부분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는데 혼자 동 떨어져 있다고 느끼지는 않았나. 

▶ 제가 판타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만일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하는 상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상상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결과물이 영화나 드라마 아닌가. 관객들이 상상하던 어떤 모습을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로 만들어드릴 수 있다. 우리 작품에서는 극중 골프장 장면이나, 군통수권자가 엄청난 권력을 드러내는 장면 등이 그랬던 것 같다. 정인후가 힘없는 변호사 한명일 수 있었겠지만 목소리 높여 소리 지르고 일갈하는 모습이 판타지스러운 매력으로 다가왔다. 

배우 조정석/잼엔터테인먼트 배우 조정석/잼엔터테인먼트

- 골프장 장면은 상상이 많이 가미된 장면이다. 영화 속에서는 갈등을 극대화 시키고 주제를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한데 촬영하면서 힘들지는 않았나. 

▶ 3박 4일동안 촬영했다. 정말 추운 겨울에 촬영했는데 셔츠 하나만 입고 촬영을 해서 고생이 조금 있었다. 물에 빠지는 장면도 있다 보니 너무 추웠다. 전상두의 부하 진과장 역 김재철 배우에게 얻어 맞는 액션신 촬영에 시간이 많이 할애됐다. 제가 전상두에게 감정을 폭발시키는 신의 촬영이 촉박하게 진행됐는데 오히려 득이 됐다. 몰입도 더 잘 됐고 물리적 시간이 짧았던 탓에 오히려 집중이 잘됐다. 

- 법정신 촬영 및 대사 연기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 감정에 가장 중점을 뒀다. 정인후가 활동한 시대는 1970년대 후반이다. 그 시대에 어떤 의상이나 말투를 썼을까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보다 감정에 충실하려고 했다. 정인후를 바라보고 감정적으로 따라오시는 관객들이 인후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추창민 감독님이 가장 강조하신 부분도 배우의 진솔한 감정선이었다. 

- 극 초반 정인후는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박태주의 재판을 진행하면서 변호사로서 성장해 나간다. 정인후라는 인물을 어떻게 설계했나?

▶ 정인후가 초반 사건 의뢰자들에게 "재판이라는 것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이 아닌 승패를 결정짓는 것이다"라는 내용의 이야기를 하지않나. 정인후의 초반 모습은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그가 변호사로서 점점 더 성장을 해나간다. 추창민 감독님이 이 역할에 저라는 배우를 선택하신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후는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셔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이 재판이 어떤 재판인지도 잘 모르면서 맡게 된다. 재판이 불리하게 흘러가는 과정에서도 박태주를 살리려는 모습은 박태주와 딸들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가 미러링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려는 것이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존경했던 아버지에 대한 정인후의 마지막 마음 아니었을까. 박태주의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인후 또한 정의에 가까워지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으로 구상했다. 

배우 조정석/잼엔터테인먼트 배우 조정석/잼엔터테인먼트

- 코믹 연기의 대가로 조정석을 좋아했던 대중 혹은 관객이라면 '행복의 나라'에서 울분을 토하는 신이나 구타를 당하는 장면 등이 낯설어 보일 수 있다.

▶ 솔직히 자주 들어올 수 있는 역할의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드문 기회였다. 부담도 컸지만 사실 다른 작품들도 항상 부담이다. 부담을 이겨내고 잘 해내야 하는 것이 플레이어의 숙명이기도 하다. 부담이 생기는 일을 만났을 때 피하지 않는 성격이다. 어떤 일이든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지만 항상 어떤 배움은 남는다. 이번 작품은 촬영 현장이 너무 끈끈하고 좋아서 부담이나 걱정은 자연스럽게 치유됐다. 감정의 파고가 큰 역할이어서 더 큰 매력으로 느꼈다. 부담보다 그런 매력이 더 컸다. 

- 추창민 감독과 함께 하며 느낀 소감은. 

▶ 추 감독님은 평상시에는 차분하고 양반 같으신다. 촬영에 들어가면 섬세함과 디테일이 장난이 아니시다. 악착 같은 근성도 있고 고집도 있으시지만 현장은 늘 편하고 즐거웠다. 늘 그런 분위기로 만들어 주셨다. 

- 코믹한 색채를 걷어내고 모멸과 울분, 분노와 연민까지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야 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 그동안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희극과 비극을 많이 경험해봤다. 하지만 많은 대중분들께 보여드릴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중들이 보시기에 '조정석은 주로 이런 걸 잘 하지'라고 느끼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잘 안다. 그런 색채의 역할과 작품들이 제 필모그래피 중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배우이기에 모든 장르와 다양한 색채의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연기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항상  같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 '행복의 나라'에서 조정석의 배우로써의 쓰임이 무한 확장의 문이 열렸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도 무궁무진할 것 같은데. 

▶ '파일럿'과 '행복의 나라' 모두 소중하다. 요즘 기분이 너무 좋기도 하지만 부담도 크다. 그런데 가장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저 조정석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다. 제 안에 여러가지 생각들을 담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앞으로 보여드리고 싶은 모습이 너무 많다. 만일 저에게 그런 문이 열렸다면 저에게 너무 행복한 일이다. 

- '건축학개론'의 납뜩이 캐릭터로 큰 웃음을 주며 데뷔를 했다. 너무 강렬한 캐릭터로 데뷔해 이미지가 굳어졌다는 후회는 없나. 

▶ 배우로서 공연장이 꽉 찼을 때 정말 행복하고 뿌듯하다. 관객분들이 우리가 하는 공연을 보고 울거나 웃거나 하는 걸 보면 정말 좋다. 가장 슬픈 일은 관객들이 없거나 했을 경우다. 관객분들을 모집하는 게 가장 힘들다. 납뜩이라는 캐릭터는 많은 대중에게 조정석을 각인시키고 알려준 순간이었다. 저에게는 상장 같은 느낌이다. 그 캐릭터로 힘든 적은 없다. 제가 잡아야 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 이선균, 유재명과 호흡한 소감은. 

▶ 유재명 형, 이선균 형 두 분이 분장했을 때 정말 분위기에 압도 당했다. 재명이 형은 '슬기로운 의사생활', '질투의 화신' 때 같이 연기했었다. 분장도 분장이지만 재명이 형에게 발견한 적 없는 눈빛을 발견해서 무섭기도 했다.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첫 대면 장면을 찍으러 갈 때 전상두가 격분하고 호통치는 모습일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냉소적이면서도 조소를 섞은 톤으로 연기하시는데 많이 놀랐다. 선균이 형이 분장을 한 모습으로 마주했을 때 그동안 이선균 배우에게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얼굴을 발견했다. 그때 '이 영화하기를 정말 잘했다. 너무 좋다'고 형에게 이야기했다. 

- 이선균이 조정석에게 한수 배우고 싶어서 작품을 택했다는 말이 있던데. 

▶ 배움은 누가 가르쳐 준다고 해서 얻는 게 아니다. 알게 모르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선균 형과 촬영할 때 제 대사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러서 제가 막 대사를 치고 났을 때 선균 형이 잘 받아주고 리액션을 너무 잘 해주셨다. 선균 형과 재명이 형 두분께 많은 걸 배웠다. 엔딩 장면에서 박태주와 정인후의 대사도 너무 기억에 남았다. 만듦새가 너무 좋은 영화이고 영화적인 영화다. 이 영화를 온전히 감상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과 함께 현대사 3부작으로 꼽힌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 '특별히 어떤 메시지를 받으시면 좋겠다'라고 하는 건 없다. 다만 우리 영화가 가진 이야기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자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정인후가 그 시대의 야만적 권력 전상두에게 "사람은 살려야 하지 않느냐, 사람은 죽이지 말라"고 말하지 않나. 이 내용을 되새기는 작품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