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에 칼 들이대서" 동료 살인미수 외국인…법원은 '무죄' 왜

연합뉴스 2024-09-22 09:00:31

1심 "살인의 고의 인정되나 사회 통념상 '면책성 과잉방위' 해당"

5년간 불법체류 들통나 벌금만 500만원…검사, 1심 불복해 항소

(영월=연합뉴스) 이재현 박영서 기자 = 술에 만취해 말다툼 중 목에 칼을 들이댄 동료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 한 30대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살인미수(PG)

이 남성의 행위에 살인의 고의는 인정되지만 자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방위행위 범위 안에 있는 면책성 과잉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법원은 출입국관리법 위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형을 내렸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법 영월지원 형사1부(재판장 이민형 지원장)는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기소 된 베트남 국적의 근로자 A(32)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5월 12일 오후 10시 30분께 정선군의 한 인력사무소 외국인 숙소에서 같은 방을 쓰는 동료 B(24)씨와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말다툼하다 흉기로 B씨의 배를 1회 찔러 살해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 직후 인력사무소 운영자에게 구조를 요청한 피해자 B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으며, 생명에는 지장 없이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다.

A씨는 재판에서 "B씨가 목에 칼을 들이대고 위협해 생명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B씨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에서 벌인 일"이라며 "살인의 고의가 없고 형법상 처벌할 수 없는 과잉방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들에 의해 인정된 사정으로 볼 때 '살인의 고의는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위험한 흉기로 범행했는데도 방에 들어가 가만히 있었을 뿐 B씨를 위한 별다른 구호 조처를 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A씨가 미필적으로나마 B씨의 사망 가능성을 인식한 만큼 '고의가 없었다'는 A씨와 변호인의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다만 공소사실에 따르면 B씨가 흉기 2자루를 꺼내 1자루를 가만히 있는 A씨에게 건네며 '하나씩 들고 싸우자. 찔러 봐. 왜 못 찌르냐'고 욕설하며 목에 칼을 들이댔다.

그러자 화가 난 A씨가 팔을 휘둘러 칼을 쳐냈는데도 다시 주워 찌르려고 방 안에서 쫓아다닌 B씨를 상대로 한 범행은 사회 통념상 방위행위 범위 안에 있는 면책성 과잉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춘천지법 영월지원

당시 A와 B씨 모두 술에 취해 기억이 없었지만, '방에서 쫓기던 A씨가 침실에 들어가 B씨가 사용하던 베게 아래에 있던 흉기로 범행을 했다'는 또 다른 동료 여성 외국인 근로자의 유일한 목격 진술을 재판부는 가장 사실에 부합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위협한 행위는 생명·신체에 대한 부당한 침해행위"라며 "비록 방위행위의 정도를 초과한 것으로 보이나 적극적인 공격행위로 나간 것이 아닌 만큼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지극히 짧은 시간에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당황한 상태에서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막고자 이 같은 행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A씨의 방위행위가 사회적 통념상 방위행위로서의 한도를 벗어났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일로 수사를 받게 된 A씨는 2018년 8월 중순 대한민국에 입국한 이후 5년 9개월간 불법 체류한 사실이 들통나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도 재판받았다.

재판부는 국내에서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해 이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살인미수 혐의 무죄에 불복해 검찰만 항소한 이 사건은 서울고법 춘천재판부에서 2심이 진행된다.

j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