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집 5개 보고 2주간 매일 눈물…집안에 한 반이 생겼네요"

연합뉴스 2024-09-22 07:00:07

교사·교육행정직 부부 김준영·사공혜란씨, 다섯쌍둥이 출산

태명은 '팡팡레인저'…그린·블루·옐로·핑크·레드

"선택유산 없다는 담당의 덕에 낳을 결심…아이들 건강만 했으면"

서울성모병원서 다섯쌍둥이 탄생

(세종=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 "아기집(임신 때 수정란을 둘러싸고 있는 조직·태낭)이 3∼4개 보일 때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5개가 보이니까 무게감이 달랐어요. 사실 아기집 보고 첫 2주 동안은 우리 부부 둘 다 매일 울었어요."

자연임신으로 생긴 다섯쌍둥이로 한 번에 '오둥이' 아빠가 된 김준영(31)씨는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처음 다섯쌍둥이를 확인한 날을 떠올리며 이같이 돌아봤다.

경기 동두천 지역 고등학교 교사인 김씨와 경기 양주의 한 학교에서 교육 행정직으로 근무하는 사공혜란(30)씨 사이에서는 지난 20일 남자아이 3명과 여자아이 2명이 순서대로 태어났다.

국내 다섯쌍둥이 출산 소식은 2021년 이후 3년 만이다.

더구나 김씨와 사공씨 아기들처럼 자연임신으로 생겨 건강하게 태어난 것은 국내에서 이번이 최초다.

사공씨가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진단받고 치료와 임신 준비를 위해 배란유도제를 맞았는데, 첫 치료 이후 바로 다섯쌍둥이가 생겼다.

김씨와 사공씨는 다른 대학 소속으로 연합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만났다. 2016년부터 7년간 교제해 지난해 10월 웨딩마치를 울렸다.

임신 준비에 오래 걸린 편은 아니어서 다행스러웠지만, 한 번에 다섯명의 아기가 생길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임신을 확인한 것은 뱃속 아기들이 5∼6주 차쯤 됐을 무렵인 4월께였다. 김씨는 아기집 5개를 확인했을 당시 심정을 묻는 말에 당황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는 "교직에 있으니 아이들을 좋아하고, 자녀 계획을 세우는 데 영향이 있긴 했다"면서도 "자녀 한두명을 생각했었는데 다섯을 가질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아기집을 보고) 첫 2주간 둘이서 맨날 울었다"며 "다섯쌍둥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공의 파업 때문에 병원 진료가 힘들다는 병원이 많아서 다섯쌍둥이를 돌볼 수 있는 병원을 빨리 찾아야 했다"며 "(다태아 분만 권위자인) 전종관 교수님이 서울대병원에서 이대 목동 병원으로 옮기셨다길래 바로 그쪽으로 병원을 옮겨 진료를 봤다"고 했다.

다섯쌍둥이 출산 '경사'

막막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낳을 결심'을 했을까.

김씨는 "전 교수님이 일단 선택적 유산이라는 선택지를 주지 않으셨다"고 답했다.

그는 "건강하지 않은 아기가 자연적으로 유산되는 것이 약을 쓰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하셨고, 아기들을 생각해서 끝까지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고 돌아봤다.

이어 "산모의 안전을 위해 한 명을 유산한다고 하더라도 아기 네 명을 키우는 것인데, 네 명이나 다섯 명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며 "전 교수님 진료를 받고 나서부터는 다섯쌍둥이를 받아들이고 무사히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면 감사하다고 태도가 확 바뀌었다"고 말했다.

임신 기간 내내 아내 사공씨는 편할 날이 거의 없었다.

사공씨의 체구가 작은 편인데, 배가 불러오는 속도는 너무도 빨라 몸을 가누기가 쉽지 않아서다.

다섯명의 아이가 태동할 땐 배가 찢어질 듯 아프기도 하고, 숨도 차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허리도 아파했다.

20주부터는 사실상 집에만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아내가 아기들을 품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들어 보였다"고 안타까워했다.

아기들은 27주를 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의 빛을 봤다.

보통 세 명 이상 다태아 평균 임신 기간은 28주여서 그렇게 임신 기간이 짧은 편은 아니지만, 아기들은 12월까지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한다.

김씨는 "다니고 있던 이대목동병원에 신생아 중환자실이 없어 서울성모병원으로 (분만 병원을) 옮겼다"며 "의료상의 이유로 분만 일자를 미루긴 어려워서 수술 날짜를 잡았다"고 말했다.

아기들의 태명은 '팡팡레인저'. 멤버가 다섯명인 애니메이션 파워레인저에서 따왔다. 뱃속 태아 순서대로 그린, 블루, 옐로, 핑크, 레드를 붙여줬다.

이제 세상의 빛을 본 아기들에게 새 이름을 지어줘야 하지만, 김씨는 "이름은 더 고민해볼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저희 집안에도 갑자기 한 반이 생겼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원래 아이가 태어나면 교육적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다짐이 있었는데, 막상 다섯을 낳으니까 그런 것 필요 없이 자유롭게, 재미있게 같이 키우겠다는 생각만 든다"며 "아이들이 우선 건강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육아를 어떻게 할지는 아직 풀지 못한 숙제여서 김씨의 마음 한편은 여전히 무겁다.

김씨는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들 퇴원까지는 우리가 계속 면회 오고, 퇴원하고 나서는 동두천에 사시는 저희 부모님이 공동 육아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임신·출산으로 고생한 아내에게 "고생 너무 많이 했고, 확 바뀐 삶이 시작되는데 함께 잘 이겨내 보자"고 했다.

이어 다태아를 임신한 다른 부모들에게도 "힘을 많이 내시길 바란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porqu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