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루스부터 전자책까지…신간 '옥스퍼드 책의 역사'

연합뉴스 2024-09-20 08:00:30

책 표지 이미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프랑스 문화사 전문가인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은 1982년 책의 역사를 "인쇄물을 통한 의사소통의 사회문화사"로 정의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같은 정의는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됐다. 데이비드 미첼과 필립 풀먼 같은 작가들이 X(옛 트위터)에 소설을 쓰고, 전자책이 일반화됐으며 책을 대체할 만한 수많은 문서가 웹사이트에 즐비하기 때문이다. 이런 바뀐 환경에서 책의 역사를 재정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출간된 '옥스퍼드 책의 역사'(교유서가)는 그런 야심 찬 시도가 담긴 두툼한 책이다. 영국 에섹스대 근대사 명예교수인 제임스 레이븐,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중동 고대사 교수인 엘리너 롭슨을 비롯한 16명의 책 전문가가 5천년에 걸쳐 이어져 온 책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책의 역사는 집필되고, 인쇄된 책 자체의 역사다. 또한 유통과 전파의 다양한 방법에 대한 역사다. 아울러 읽기와 수용 방식에 관한 역사이기도 하다. 요컨대 책의 역사는 한 유형이 아니라 여러 유형이 존재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 책에는 이처럼 다양한 책의 역사를 조명하는 14편의 글이 실렸다. 파피루스와 양피지를 썼던 고대 세계부터 디지털 시대인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에 담긴 책들의 역사를 총망라했다. 르네상스, 종교 개혁, 계몽주의, 프랑스 혁명, 산업화 등 서구와 관련한 사건뿐 아니라 아시아 문화도 비중 있게 소개한다. 이슬람 세계 속 아랍 문자의 원리와 쿠란 필사본, 19세기 중후반 베트남과 라오스에서 인쇄업이 발달한 양상도 전한다.

특히 오하이오주립대 사학과의 크리스토퍼 A. 리드 교수와 M. 윌리엄 스틸 도쿄 국제기독교대학 명예 교수는 근대 중국·일본·한국의 출판산업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다만 한국을 다룬 부분은 중국에 견줘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은 데다 그 내용도 개론적 성격이 강하다.

책은 '책의 역사'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지난 7월 출간된 '옥스퍼드 출판의 미래'(교유서가)와 상보적 관계에 있다. 기술변화에 따른 출판의 변화를 모색한 '옥스퍼드 출판의 미래'와 비교해가며 읽어나간다면, 책의 미래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듯하다.

교유서가. 홍정인 옮김. 6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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