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38] 북한 이탈주민 울린 노래 '고향이 좋아'

데일리한국 2024-09-20 06:24:54
상주세계모자축제에서 공연하는 모습. 사진=김철희 기자 상주세계모자축제에서 공연하는 모습. 사진=김철희 기자

북한이탈주민, 즉 실향민(失鄕民)은 1953년 휴전 이후 북한을 탈북해 대한민국에 정착한 사람을 말한다. 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새터민'이라고 한다. 

"북향민이라고 불러주세요"라고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북향민'은 탈북민, 탈북자, 귀순자 등 그 담고 있는 내용적 의미에서 순화된 용어라는것이다. '북쪽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통일은 반드시 된다' 라는 미래지향적 의미가 있음을 강조했다. 

1990년대 북한의 기근이 끝나갈 무렵 탈북민이 증가했다. 1998년, 1999년에 최고조에 달했다. 현재까지의 탈북자 중 고위급 인사는 인민공화국의 당비서를 지낸 바 있는 '황장엽'이다. 정치인으로도 잘 알려진 외교관 출신 '태영호',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참사였던 '리일규' 등 한국과 미국 등으로 귀순한 고위직도 늘었다. 1950년~1989년(누계 607명),1993년(누계 641명), 2000년(누계 1405명) 이후, 2017년 누계 3만1340명으로 탈북민 3만명의 시대가 되었다. 

2020년 코로나19 때는 중국,북한이 국경 통제를 강화하면서 크게 줄어 2021년에는 63명으로 감소했다는 통계다. 1990년대 초, 정부가 내준 단체버스를 타고 하나원(탈북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 위문 공연을 갔었다. 어린이를 동반한 젊은 여인도 있었고 가족 단위의 탈북민도 있었는데 약100~200여명의 소규모로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그들이나 우리도 처음엔 좀 어색한 분위기였고 숨죽여 우리를 주시했다. 

상주시 홍보대사 위촉식 모습. 사진=상주시 제공 상주시 홍보대사 위촉식 모습. 사진=상주시 제공

곧 우리 가수들의 공연이 시작되자 어색하고 굳어진 마음이 풀린듯 했다. 나는 '꽃과 나비'와 '기다리게 해놓고' '당신의 마음'에 이어 그들이 북한 노래로 알고 있던 '찔레꽃'을 부를 땐 박자를 맞추며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때 같이 갔던 가수 중에 김상진은 수년간 MBC10대 가수였다. 김상진은 히트곡 '고향이 좋아' '고향 아줌마' 등 고향 노래를 늘 불렀다. 

'고향이 좋아'는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정을 붙이고 살지만 그래도 고향이 좋다~ 라며 아주 강력하게 고향 사랑을 강조한 노래다. 가사를 보면 고향을 뒤로한 탈북 주민들 가슴을 후벼 파는 내용이다. 노래를 들으며 흐느끼는 탈북민이 많았다. 

반면, 고향의 삶과 풍경을 너무나 사랑하는 '물방아 도는 내력'(박재홍)이 있다. 1953년에 6.25 전쟁으로 인해 민중들의 희망은 부귀영화가 아닌 소박한 전원생활을 꿈꾸는 내용이다. 그때는 밥만 먹을 수 있어도 행복할 때다. 나도 이 노래를 리메이크 취입, 밤무대, 방송, 교포 위문공연에서 내 히트곡과 함께 많이 불렀었다. 

살아생전 박재홍 선배님은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성품이었다. KBS 가요무대에서 여러 번 공연도 같이 했다. 가수들이 떼창을 했던 '물방아 도는 내력'(손로현 작사,이재호 작곡) 노래에 탈북민들은 한없이 흐느꼈었다. 가사는 이렇다.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길쌈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 보련다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고향을 잃은 길손 건너게 하며 /봄이면 버들피리 꺾어 불면서 /물방아 도는 내력 알아 보련다

김세손(왼쪽부터), 방주연, 박용범. 사진=방주연 제공 김세손(왼쪽부터), 방주연, 박용범. 사진=방주연 제공

내 사촌 동생인 작곡가 박용범은 어릴 때 서울로 상경해 아주 유명한 락밴드에서 10년 넘게 혹독한 시절을 보냈다. 밤잠을 자지 않으며 노력한 결과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기타 연주와 작곡 실력을 갖췄다. 그러나 타향에서의 신인 시절은 설움, 그 자체였다. 나의 다섯 번째 외삼촌은 지독한 구두쇠로 아들의 재능을 알면서도 박용범에게 조금도 지원을 해주지 않아 혼자서 모든 걸 해결했다. 

타향살이 20년 정도, 탄탄한 실력을 갖춘 뒤 경북 상주시 만산동으로 돌아가는 용기를 냈다. 고향을 이탈해 도시로 나가는 한국 사회라지만 용범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향에 정착했다. 고향을 지키며 세금 많이 내는 사업가 가수 김세손은 '상주 아가씨'(양하원 작사,추가열 작곡)를 취입해 공원 버스킹으로 봉사하며 살고 있다. 

그의 협조로 내 고향 노래 '상주 가는 길'(방주연 작사, 박용범 작곡) 을 만들었다. 추석 명절은 고향을 더욱 생각나게 한다. 가을철 아트페어가 상주시 문화회관에서 10월10일~14일 열린다. 마침 '상주시민의 날'이고 나는 홍보대사이기도 해서 10월에는 고향을 간다. 

'상주 가는 길'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내 고향 찾아 가자 출발은 서울이다 /복사골 지나 충청도길 문경새재 넘는다 /감나무골 옥이 생각 낙동강의 철새야 /아~내가 왔다 무병장수 내 고향은 상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