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하인리히 법칙' 몰랐나…‘국토위’ 의원의 발표

스포츠한국 2024-09-19 10:17:30

[스포츠한국 홍성완 기자]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은 안전 관리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인용하는 가장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이론이다. 흔히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칙은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통계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931년에 발표된 이 원칙은 작은 사고들을 분석해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이론으로, 안전관리 분야에서 불변의 법칙이기도 하다. 통계학이 발전하면서 해당 이론은 안전관리 시스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해당 이론은 우리나라가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시행 이후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해 대형 건설사들이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있는 원칙 중 하나다.

그런데 지난 10일,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당 원칙을 모르는 듯한 발표를 해 머리를 갸우뚱하게 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이하 국토위) 소속인 박 의원은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토대로 ‘최근 3년 시공능력평가 20대 건설사 산업재해 현황’을 통해 사고재해자는 2021년 1458명에서 2022년 1631명, 지난해 2194명으로 2년 만에 50% 넘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한 올해 상반기 사고재해자는 929명으로 집계됐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박 의원은 해당 자료에서 최근 3년 간 업체별 산업재해(산재) 현황을 내용에 담았다. 이에 따르면, 삼성물산이 688명으로 최다를 기록했고, 그 뒤를 GS건설 614명, SK에코플랜트 572명, 현대엔지니어링 531명, DL건설 514명 등의 순이었다.

사망자는 HDC현대산업개발이 17명, 현대건설 13명, 대우건설 13명, DL이앤씨 10명, 한화 7명 등이다.

박 의원은 해당 자료를 발표하면서 “2022년 1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시행됐지만, 현장 위험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며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이는 상위 20대 건설사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은 여전히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토부가 대형 건설사들의 안전 문제에 대해 더 철저하게 관리감독하고, 사고 발생시 엄중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번 발표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건설업계에 간접적으로나마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이번 발표에 큰 오류가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바로 산재처리 건수와 사망자 발생 건에서 기업 일치점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산재는 근로자가 업무상 사망 또는 부상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을 말한다. 보편적으로는 현장에서 근무 중 당하는 크고 작은 부상도 산재에 포함시킨다.

현장에서는 보통 산재로 처리하지 않고 회사 자체적으로 치료해 산재 등록을 막는 것을 ‘공상’이라고 한다. ‘비공상’(법죄나 치안관리를 위반해 생긴 상해 또는 사망, 음주로 인한 사망, 자해나 자살의 경우)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공상 처리함으로써 산재 등록을 최소화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안전 관리가 열악하거나 작은 중소업체들의 경우 산재처리를 해야 함에도 대부분 회사 자체적으로 공상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행동들은 분명 법적으로 문제가 있으나, 그럼에도 회사 차원에서 산재 등록을 꺼려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번 박 의원의 발표처럼 단순히 산재처리 건수를 가지고 질책과 규제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대형사고로 이어지고, 근로자들의 목숨을 더더욱 위협하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2015년에 발생했던 ‘청주 지게차 사망사고’가 있다. 해당 사고는 2015년 7월29일 충북 청주시의 화장품 제조업체 에버코스에서 35살의 근로자가 지게차에 추돌한 사고다.

당시 현장 관리자는 지게차에 추돌당한 근로자를 산재로 처리하지 않기 위해 사고 직후 동료 근로자들이 119를 불렀으나, 단순한 찰과상에 불과하다며 이를 돌려보냈다. 이로 인해 제대로 된 응급조치를 받지 못한 재해 근로자는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했다.

이는 산재 처리 시 발생할 기업의 불이익이 두려워 비상식적으로 행동한 관리자와 기업 대표가 만들어 낸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건 결국 '산재처리 건수=안전불감증'이라는 선무당들이 만들어 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산재 1위로 꼽힌 삼성물산의 경우 현장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안전관리가 비교적 잘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삼성물산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부상에 대해 ‘정석대로 산재 처리’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삼성물산 역시 현장 규모가 늘어나면서 중대재해가 이따금씩 발생하는 등 모든 걸 잘하는 기업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해당 발표에서만큼 질책을 받을만한 기업은 아니라는 의미다.

아울러 대형건설사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보다 규모가 작은 중소형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가 더 많다는 것은 국토부와 노동부의 통계를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다. 또한 현장 규모에 커짐에 따라 인력을 더 많이 고용해야 하는 대형사들의 사고만인률(근로자 1만명 당 발생하는 사망자 비율)은 중소 건설사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점도 눈 여겨 봐야 한다.

특히 규모가 작은 현장일수록 산재 등록률이 낮아진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가 얼마나 의미가 없는지 방증한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하인리히의 법칙에 따라 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경미한 사고들까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오히려 산재 등록을 독려하고, 이를 통해 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질책’이 아닌 ‘칭찬’과 독려가 이어져야 한다. 반대로 산재 처리를 하지 않음으로써 근로자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부분을 질책하고 그에 따른 강한 규제가 뒤따라야 한다.

이러할 진데 국민과 근로자들의 안전을 우선해야 하는 국토위 소속 의원이 근로자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발표를 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기업들에게 산재 등록을 의무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해결점을 제시해야 하고, 산재 등록이 잘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 시스템에 대한 지원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산재 등록을 꺼리도록 유도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중대재해 발생이 반복되는 것에 대한 지적은 마땅하다. 하지만 적어도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이라면, 특히 국토위 의원이라면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사고 만인률과 산재 등록률이 일치하는지 살펴보고, 오히려 이런 부분들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질책했어야 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산재 발생 건수만 가지고 질책하는 발표가 잊을만하면 국회에서 나오는데, 현장에서는 정말 죽을 맛이다”며 “현장 안전을 독려하고 작은 사고라도 이를 기록해 현장에서 부상을 방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현장을 모르는 권력자들의 무책임한 발표로 인해 협력사들이 더더욱 위축되어 부상을 숨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쉽지 않은 상항”이라고 토로했다.

또한 “안전이 경시될수록 건설업계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수밖에 없고, 젊은 인력들이 들어오지 않다 보니 고령화 및 외국인 노동자 중심으로 인해 산업이 쇠퇴하고 있다”며 “건설산업의 발전을 위해 연구해야 하는 국회의원이 오히려 후진적인 문화를 독려하고 있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정부는 오락가락 정치로 건설계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가계부채 및 기업부채 관리에 실패하면서 이를 한국은행과 건설업계의 다른 이슈를 통해 돌리려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건설업계에 고질적인 문제로 중장기적인 개혁이 필요한 안전문화 정착에도 손을 놓은 듯한 모습이다.

이런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견제해야 하는 야당 의원마저 말도 안되는 통계를 통해 이러한 행위에 동참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 언론까지 어느 하나 잘못된 걸 바로잡을 생각이 없는 모습에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다. 아니 바로 잡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발전하려는 기업들의 발목을 부러뜨리려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권력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그렇기에 권력이 큰 자리에 있을수록 자신의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인식하고 여러 번의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대로 여당에서는 이번 문제에 대해 속 시원하게 문제제기를 할 만한 인물이 없는 것일까. 또한 국토부와 고용노동부는 불법 비공상 처리에 대해 근절 의지가 있긴 한 것일까.

여전히 건설업계뿐만 아니라 제조업계 현장에서는 거의 이틀에 한 명 꼴로 근로자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언제쯤 블루칼라(육체 노동 종사자)들에 대한 안전이 제대로 보장될 수 있을지 이번 박 의원의 발표를 보며 막막하기만 할 뿐이다.

중대재해의 예방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보다 이와 관련된 행정부와 입법부의 역할이 중요하기에, 현장에서 통용되는 이론과 실무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산재 등록을 통해 크고 작은 사고들에 대한 통계가 투명해질 수 있다면 하인리히의 법칙에 따라 대형 건설사들뿐만 아니라 중소 건설사들까지 아우르는 현장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또한 사양되고 있는 기간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근로자의 안전 보장은 필수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열광하는 부동산, 그 부동산을 떠받치는 철도와 도로공사 등의 기간산업은 현장 근로자들의 피땀 위에 일궈져 간다는 것을 잊으면 아니 된다. 그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한 건설업은 기피 산업이 될 것이고, 전문 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부실시공은 더더욱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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