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4색 문화 에세이-12] 이명진 수필가 '수산진성과 함께 하는 진안할망당'

데일리한국 2024-09-18 21:24:59
수산리 수산초등학교 담장으로 자리한 수산진성. 사진=작가 제공 수산리 수산초등학교 담장으로 자리한 수산진성. 사진=작가 제공

수산초등학교는 제주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학교이다. 정문을 들어서자 푸른 잔디가 눈길을 끈다. 운동장을 감싸고 있는 돌담과 아름드리나무 또한 묘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수묵화처럼 펼쳐져 있는 해묵은 나무들은 신령스런 분위기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동화 속 정원 같은 학교 담장 안에 인신공양으로 완성한 성벽이 신당을 지켜 주고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축조된 수산진성(水山鎭城)은 담장 자체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제주의 9진성 중 세종 21년에 가장 빨리(1439년) 지어진 수산진성은 일부 원형이 보존되어 초등학교 울타리로 남아 있다. 600년 가까이 버텨온 진성은 오늘도 아이들이 안전하게 공부하며 놀 수 있도록 학교를 품어 주고 있다.  

도내에서 유일하게 수산진성 안에는 '진안할망당'(수산 진성 안에 있다하여 진안할망당이라 불린다)이라 불리는 당(堂)이 존재한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건물 뒤편에서 좁은 오솔길을 만난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당올레 길이다. 진안할망당으로 가는 굽은 당올레 길은 종교를 떠나 순례자가 참배하듯 경건한 마음이 들게 만든다. 자갈길을 조심조심 오르면 커다랗고 굵은 나무가 지키고 있는 신당이 있다. 바로 '진안할망당'이다.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진성에 신당을 모셨으니 어떤 사연이 담겨있을까. 마을에는 수산진성과 진안할망당에 얽힌 가슴 아픈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일본과 가까웠던 제주에서는 왜적이 빈번히 밀물을 타고 출몰했다. 그들은 민가를 약탈하고 가축도 잡아갔다. 남자들을 죽이거나 아녀자를 겁탈하는 등 마을에 피해가 끊이질 않았다. 조정에서는 백성을 지키기 위해 성을 쌓아 방어하기로 했다. 

진안할망당. 사진=작가 제공 진안할망당. 사진=작가 제공

많은 백성이 부역에 동원되었다, 관아에서는 집집마다 곡식 을 거둬가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한 여인만은 공출을 바칠 수 없었다. 가난한 살림에 남편까지 잃어 다섯 남매를 혼자 키우느라 끼니조차 어려운 처지였기 때문이다. 관아의 독촉에 피죽 한 그릇 제대로 못 먹는 신세를 한탄하며 여인은 소리쳤다. 

"곡식 대신 어린 딸아이나 데려 갑서" 관원들은 여인의 딱한 처지를 이해하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날 이후 공사장에는 원인 모를 사고가 속출했다. 성을 쌓기만 하면 무너져 내리거나 사람이 다치는 사고가 빈번했다. 부역에 동원됐던 사람들은 "신의 노여움을 샀다"며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관원들이 공사를 진척시킬 수 없어 고심하던 차에 지나가던 한 승려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고 사라졌다. "곡식 대신 딸아이를 바치겠다던 여인의 넋두리가 토신에게 닿았소.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면 해결될 일이오" 관원들은 여인의 어린 딸을 데려와 제물로 바쳤다. 배가 고파 울던 천진무구한 일곱 살 아이는 수산 진성 담 밑에 생매장 되었다. 인신공양 덕분인지 수산진성 공사는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성을 완성한 날부터 밤마다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땅을 파고 아이를 묻었던 관원들은 울음소리에 질려 잠을 잘 수 없었다. 괴로워하던 그들은 간절한 어미의 절규와 아기의 한을 달래 주기 위해 제사를 지내주고 용서를 빌었다. 그 때부터 아기 우는 소리가 뚝 그쳤다. 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관아에 간곡한 청을 넣었다. 진성에 희생된 아이의 혼과 넋을 달래기 위한 신당을 만들어 달라고 애원했다. 사람들은 여자아이를 '수산진성 안에 모신 여신'이라는 의미로 '진안할망'이라 부르며 때마다 제를 지냈다.

성산읍 수산리 진안할망당 신목. 사진=작가 제공 성산읍 수산리 진안할망당 신목. 사진=작가 제공

왜적의 거듭된 침입 속에서 생존을 위해 성벽을 쌓아야 했던 관리들의 절박함과 아이를 제물로 바쳐야 했던 죄책감을 씻을 수 있겠는가. 가난에 시달리다 자포자기했던 아이 엄마의 처절한 절규가 수산진성과 할망당을 떠돌고 있으려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신공양물이 된 아이의 억울함과 비통함은 누가 책임 질 수 있을까. 생전에 받지 못했던 사랑까지 더해져 지전과 색동옷으로나마 위로 받을 수 있으려나. 

할망은 순수한 어린 아이였기에 신으로 좌정하자 기도하고 제를 지내 주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복을 안겨 주었다. 생매장한 일을 후회하며 "미안하다, 잘못했다" 빌었던 관원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승진까지 도와주었다.

그래서 일까. 진안할망당에는 수산리뿐 아니라 인근 지역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주민과 젊은이들에게 신당은 별 의미 없는 자연물일 수 있다. 하지만, 신당을 자주 방문했던 사람에게는 자신이 처한 불행을 해결하고, 간절한 소망을 비는 신성한 공간이자 마음을 달래 주던 현실적 성소였다.

옛날에는 관원이 아이의 영혼을 달래 주었다는 이유로 남자들만 신당을 찾았다. 남자 혼자 밥 차롱에 메와 고기와 술 등의 제물을 차려 놓고 절도 하며 제를 지냈다. 요즘은 남녀 구분없이 입시를 앞둔 자녀가 있는 부모 혹은 군인이나 공무원들이 승진과 합격을 빌기 위해 다녀간다. 그들은 당을 찾아가는 길에 누구와 마주치면 효험이 떨어질까 봐 자시(子時)를 이용해 방문한다고 전해진다.

살아야 할 날이 구만리인 어린아이가 억울함을 풀고자 여신으로 좌정했다. 그러니 오래도록 영험함을 발휘해 찾는 이들 모두에게 행복을 가득 안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명진 수필가. 사진=데일리한국DB 이명진 수필가. 사진=데일리한국DB

◆이명진 주요 약력

△강원도 춘천 출생 △'해동문학' 수필 등단(1997) '수필과 비평' 평론 등단(2011) △제주 성산 문화 발전소 대표 △경기도 문학상 수상, 일신수필문학상 수상, 풀꽃수필문학상 수상, 신곡문학상 수상 △수필집 '창밖의 지붕' '탈출기' '물숨의 약속' 외 2권 △평론집 '수필로 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