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58] 기형도 '엄마 걱정'

데일리한국 2024-09-07 06:27:08
이명지 수필가 연재 섬네일. 사진=데일리한국DB 이명지 수필가 연재 섬네일. 사진=데일리한국DB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시집 수록 /문학과지성사 刊 

내 어린 시절 기억 중 가장 아프고 충격적인 게 있다. 이유도 모르고 오빠에게 맞았던 따귀 세 대.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가라앉았던 부유물이 떠오르듯 어느 날 고스란히 떠올라왔다. 수녀원에서 실시한 '내면 아이 직면하기'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였다. 2박 3일간의 과정 중 처음에는 잘 몰입이 되지 않았다. 마지막 날 즈음 훈련에 의해 심연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경험했다. 거기에서 느닷없이 따귀를 맞고 어두운 방 안에 무릎을 껴안고 울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쯤으로 기억된다. 친구들과 소꿉놀이 고무줄놀이를 하며 신나게 뛰어놀다 들어온 나를 오빠가 다짜고짜 마당 뒤꼍으로 끌고 가더니 연거푸 따귀를 때린 것이다. 막내인 나보다 열네 살이나 위인 큰오빠였으니 그 위력이 얼마나 컸을까. 위로 오빠가 셋, 언니가 둘이었어도 태어나 꿀밤 한 대 맞아본 적 없던 내게 그 충격은 울음도, 말도 잃고 방안에 처박히게 했다.

오빠의 행동에 분개한 엄마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잘못한 게 있으면 내가 가르칠 것인데 내 새끼를 니가 왜 때리느냐?"며 오빠를 야단치는 엄마의 성난 목소리를 듣고서야 터진 울음보…. 꺼억꺼억 울다 지쳐 새우처럼 웅크리고 잠든 내 어린 모습이 내면 아이 직면하기에서 생생하게 떠올라온 것이다.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내 유년의 윗목'이 상처받은 내면 아이로 잠재해 있었다는 걸 마주하고 나서 자신도 깜짝 놀랐다. 상처받은 어린 영혼은 잊힌 게 아니라 가라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의 토닥임으로 해소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폭력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은 흉터로 잠재되나 있었나 보았다. 그날의 상처는 살면서 나의 어떤 행동들에 알게 모르게 반영되었으리라 생각하니 문득 두려웠다.

그 얼마 후 명절이 되어 친정에 갔다가 오빠에게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얘기며, 그때 직면한 내 모습을 담담하게 얘기했다. 나는 오빠가 그때 왜 그랬는지가 진심으로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마치 사과할 기회를 얻지 못해 수십 년을 서성인 사람처럼 오빠는 즉각 내게 사과했다. 오빠도 그날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도 그날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면서 자신에게도 평생 죄책감과 상처로 남아있었노라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신기하게도, 오빠의 사과를 받는 순간 나의 어린 상처가 말끔하게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직면한다는 것은 해소하는 일이란 걸 이때 깨달았다. 또한 상처는 가해자에게도 흉터로 남는구나 싶었다. 상처로 남았던 내 유년의 윗목은 내면 아이를 직면함으로써 따뜻한 아랫목으로 내려왔다. 진심으로 사과한 오빠의 상처도 그러했기를 바라본다.

지금 돌아보니 내 안에도 사과하지 못한 지질한 마음들이 쓰레기처럼 부유하고 있다. 잘못을 저지르는 일은 쉽지만 사과하는 일은 몹시 어려운 일이란 걸 깨닫는다. 가을이다. 곧 사과가 붉을 것이다. 사과의 계절이 오고 있다. "천천히 숙제를 하듯" 맛이 잘 든 사과라도 전해 볼까? 그러면 "열무 삼십단 이고 장에 간 우리 엄마" 오실까...

◆ 이명지 주요 약력 

△경북 영천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창과 졸업 △수필집 '육십, 뜨거워도 괜찮아' '헤이, 하고 네가 나를 부를 때' 등 다수 △제42회 조연현문학상, 제32회 동국문학상, 제6회 창작수필문학상 수상, 제17회 한국산문 문학상 △현재 (사)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