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탄핵안 사유는 '정치적 중립 위반'…이해충돌 논란도

연합뉴스 2024-07-03 20:00:35

한명숙·이화영·돈봉투 등 '민주당 수사' 검사들 표적

수사·재판 당사자들이 탄핵발의…"민주당이 재판하나" 반발

비위검사 탄핵소추안 제출

(서울=연합뉴스) 권희원 황윤기 이도흔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현직 검사 4명의 탄핵안을 발의하면서 '수사권을 불법으로 행사해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는 사유를 내세웠다.

검사들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허위 증언을 강요하거나,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수사를 하면서 정치적 중립을 어기거나 불법 행위를 했다는 의혹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전 대표를 비롯해 현재 수사받고 있거나 재판에 넘겨진 당사자들이 사건 담당 검사들의 탄핵을 추진한 모양새라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 탄핵 사유 제각각이지만…'이재명 수사' 공통 분모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박상용·엄희준·강백신·김영철 검사의 탄핵안을 발의하면서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했다는 점을 직접 명분으로 내세우지는 않았다.

다만 네명의 검사 모두 이 전 대표가 연루된 사건을 수사하거나 수사를 지휘한 이력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상용 검사는 불법 대북 송금 의혹의 핵심 인물인 이화영 전 부지사의 수사를 맡았다.

2019년 1월 울산지검 검사들이 청사 내에서 회식하던 중 신원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곳곳에 대변을 발랐다는 의혹도 탄핵 사유가 됐다.

민주당은 당사자로 박 검사를 지목했으나 박 검사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엄희준 검사는 2022년 7월부터 중앙지검 반부패1부장으로 이 전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개발사업 관련 의혹을 직접 수사했고, 작년 9월 대검 반부패기획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관련 수사를 지원했다.

엄 검사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 재판에서 허위로 증언하도록 관련 재소자들을 회유했다는 이유로 탄핵안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모해위증교사 혐의로 수사받았으나 불기소됐고 감찰에서도 불문(不問) 처분이 내려졌다.

강백신 검사도 2022년 8월부터 지난 6월까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3부장을 역임하며 이 전 대표 관련 사건을 수사했다.

강 검사는 언론인들이 대선 기간 허위 사실을 보도해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사건을 수사한 게 탄핵 사유가 됐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검찰의 수사 범위를 넘어섰다는 취지다.

김영철 검사 또한 작년 9월부터 지난 6월까지 대검 반부패1과장으로 일하면서 이 전 대표가 연루된 사건들의 수사를 지휘했다.

탄핵 사유에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으로 송영길 전 대표 등이 연루된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을 위법하게 별건으로 수사했다는 내용이 적혔다.

코바나컨텐츠 관련 의혹으로 입건된 윤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를 무혐의 처분하는 과정에서 직무를 유기하거나, 국정농단 수사 당시 장시호 씨에게 거짓 증언을 외우게 시켰다는 내용도 탄핵 사유로 포함됐다.

검사탄핵안 입장 발표하는 검찰총장

◇ '이해충돌 탄핵' 논란…"민주당이 재판하나" 반발도

검찰은 피의자나 피고인, 또는 그들의 변호인이 수사·재판을 담당한 검사를 탄핵하려 하는 것이 헌법 질서를 부정하는 처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가 안동완·손준성·이정섭 검사를 탄핵 소추할 때보다 검찰의 반발이 강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피고인인 이재명 대표가 재판장을 맡고, 이재명 대표의 변호인인 민주당 국회의원과 국회 절대 다수당인 민주당이 사법부의 역할을 빼앗아 재판을 직접 다시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탄핵안 공동발의자 명단에는 이 전 대표가 이름을 올렸고 그의 변호를 맡았던 박균택 의원도 있다. 김영철 검사가 수사한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수수자로 지목된 의원들도 상당수다.

서울중앙지검에서는 여전히 이 전 대표의 '대장동 428억 약정설', 전당대회 돈봉투 수수 의심 의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기소된 사건도 특수 사건은 수사 검사가 재판에도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피의자·피고인들이 자신의 수사·재판과 관련한 탄핵안 발의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민주당은 이 같은 점을 의식한 듯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 언론의 자유 침해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외관상 자신들의 수사·재판상 이익을 위해 탄핵을 추진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탄핵 소추된 검사들과도 사례가 다르다. 안동완·손준성 검사는 민주당과 연관된 수사를 하지 않았고 이정섭 검사는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수사를 담당하는 수원지검 차장검사로 부임한 지 두 달 뒤 탄핵 소추돼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개인이 직무상 또는 사적으로 행한 비위와는 달리 검사들의 수사 자체를 중점적으로 문제 삼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검찰 내부적으로 위기감과 불쾌감이 감지된다.

수사에 문제가 있다면 준항고·재정신청을 통하거나 형사재판에서 공소권 남용 주장을 할 일이지, 검사를 탄핵하는 것은 형사사법 체계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익명의 헌법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수사 절차상 위법은) 법원에서 판단할 일인데 직무 자체를 탄핵 사유로 한다면 체계가 안 맞는다"며 "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걸 하는 것이고 입법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핵 소추 대상이 된 4명의 검사가 모두 이재명 대표 사건에 대해 수사하던 검사들"이라며 "(검찰의) 표적 수사가 아니라 (민주당의) 표적 탄핵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만드는 지점"이라고 했다.

피의자나 피고인이 검사와 판사를 고소·고발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국회가 입법권을 동원해 탄핵 소추하는 것은 최근 제기된 일련의 검사 탄핵이 처음이다.

민주당의 발의안에는 일부 오류와 추측성 기재도 발견된다.

강 검사의 탄핵안에는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는 내용이 위법 사항으로 적혔는데, 당시 발언자는 강 검사가 아닌 다른 간부급 검사였다.

박 검사의 탄핵 사유에도 이 전 대표 구속영장 청구서를 유출했다는 내용이 있지만 구체적 설명 없이 '상관들과 공모했다'고만 적혔다.

법조계에서는 탄핵소추 사실이 지나치게 모호하면 헌재가 본안 판단 없이 심리를 종결하는 '각하'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민주당은 입법 청문회를 통해 소추 사실을 구체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검사 탄핵 추진, 입장 밝히는 추경호 원내대표

wat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