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애 "버벅거리는 생활 연기도 하고파…저는 다 잘하는 배우"

연합뉴스 2024-07-03 16:00:22

넷플릭스 '돌풍'에서 경제부총리 역…"정수진에게 연민 느꼈죠"

"다른 배우들 연기 분석하며 모방하기도…연기는 계속 발전시켜야"

배우 김희애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사실 저는 똑똑하지도 않고, 정치도 잘 몰라요. 계속 똑똑한 역할이라 민망하고, 죄책감도 드네요. 저도 말하다가 버벅거릴 수 있는 편안한 연기를 하고 싶어요. (웃음)"

미 항공우주국(NASA)의 간부(영화 '더 문'), 정치권을 휘어잡은 컨설턴트('데드맨'), 재계의 해결사(넷플릭스 '퀸메이커')에 이어 대한민국 경제부총리까지('돌풍').

배우 김희애의 최근 필모그래피 속 배역들은 전부 똑똑하고 주체적이며 실력으로 한 분야의 정점을 찍은 성공한 전문직 여성들이다.

지적이면서도 우아한 특유의 이미지를 살려 작품마다 기대에 버금가는 연기를 보여줬지만, 김희애는 "사실 저는 (그런 이미지와) 반대되는 연기도 굉장히 잘하는 배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배우 김희애

넷플릭스 새 시리즈 '돌풍' 공개를 기념해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 앉은 김희애는 "저는 다 되는 배우니까 다양한 작품에 불러주셨으면 좋겠다"며 "최근 작품들 속 이미지가 겹치다 보니 제가 생활극을 잘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감독님들이 잊어버리신 것 같다"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이제는 뻣뻣한 연기 대신 좀 긴장감을 누그러트리는 재밌는 연기를 하고 싶다. 편안하고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욕심난다"고 밝혔다.

앞서 연기한 캐릭터들과 결이 비슷한 역할인데도 김희애가 '돌풍'을 선택한 이유는 대본 때문이었다고 한다.

드라마 '돌풍'

김희애는 "요즘 드라마들은 깊이 있는 대사보다 다른 것들을 더 우선시하는 분위기인데, '돌풍'에는 허투루 흘려보낼 수 있는 대사가 없었다. 말이 어려운데도 말 한마디 한마디가 와닿아서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했다"고 말했다.

'돌풍'에서 김희애가 연기한 경제부총리 정수진은 3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닳고 닳은 정치인이다. 정치판에서 지난한 세월을 버티며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는 결론을 내렸고, 더 큰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대진그룹과 결탁했다.

김희애는 "웬만한 일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강한 여자지만, 대본을 읽고, 또 읽을수록 정수진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드라마 '돌풍'

그는 "정수진도 한때는 정의감에 불타는 순수한 여학생이었다"며 "그러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됐다. 저도 모르게 악에 물들어가며 몰락을 향해 한발씩 나아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수진은 박동호(설경구 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남편도 박동호 같은 인물이기를 바랐죠. 하나를 감추려다가 두 가지 거짓말을 하게 되고, 정신을 차려 보니 원하지 않는 길에 이미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었죠."

김희애는 극 중 국무총리 박동호 역을 맡은 설경구와 팽팽하게 대립하며 긴장감을 쌓아 올린다.

김희애는 "배우의 매력은 연기를 잘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설경구 씨는 가장 매력적인 배우"라며 "함께 호흡을 맞추며 저 역시도 많이 배웠다"고 마음을 전했다.

이어 "그의 연기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끝내 방어해내고 다시 공격하는 정수진으로 현장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정신을 잘 붙잡았다"고 되짚었다.

배우 김희애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날'로 데뷔한 김희애는 드라마 '여심', '애정의 조건', '아들과 딸', '내 남자의 여자', '밀회', '부부의 세계' 등 숱한 화제작에 출연했다.

현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데, 김희애는 "연기를 오래 했다고 해서 연기를 더 잘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끊임없이 후회하고, 반성하고, 발전하며 진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다른 사람들의 연기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연기를 더 잘하기 위해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모방해보기도 하고, 베끼기도 하면서 연습한다. 그렇게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며 발전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가수분들 다 노래를 잘하시지만, 사람들은 가수를 노래 잘하는 순서대로 좋아하지 않잖아요. 취향의 문제죠. 질리지 않는, 매력적인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 김희애

cou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