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80년대까지 어선 461척 납북…457명은 아직 못 돌아와

연합뉴스 2024-07-03 00:00:24

1981∼1987년 남북회담사료집에 어선 납북·귀환 실태 실려

기자회견하는 피납 제2남진호 선원들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정부가 2일 공개한 남북회담사료에는 6·25전쟁 후 북한의 우리 어선 납북이 얼마나 빈번했는지 알 수 있는 자료도 수록됐다.

남북회담사료집에 실린 어선 납북 및 송환 통계 자료를 보면 북한은 6·25전쟁 후부터 1987년 5월까지 우리 어선 459척을 납북했다. 끌려간 승선원은 3천651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427척·3천232명은 송환됐으나 32척 419명은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미송환자 중 침몰 등에 따른 사망·실종자를 제외하고 북한에 억류된 인원은 총 27건 403명으로 사료집에 기재됐다.

1987년 이후에도 태양호(1989.1)와 명성2호(1989.5)가 1980년대 납북됐다. 1980년대까지 총 461척의 어선이 납북된 것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어선 납북에 따른 미귀환자는 작년 말 기준으로 457명이다.

북한의 남한 어선 납북은 6·25전쟁 이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가장 빈번했던 때는 1968년으로 총 90척이 납북돼 756명이 끌려갔다.

1980년대 들어선 빈도가 줄긴 했지만 제2남진호(1980.9), 제2태창호(1980.12), 제1공영호(1981.6), 제5마산호(1982.7), 제12광남호 및 제2동주호(1985.2), 제2계영호(1985.10), 제27동진호(1987.1) 등 납북 사례는 계속 이어졌다.

북한은 대체로 납북 몇 달 뒤 관영매체를 통해 이를 공개했다.

북한은 해당 어선이 착오나 조업 욕심으로 북쪽 해역을 침범해 단속했다고 주장하면서 인도주의 차원에서 송환한다고 생색을 냈다.

하지만 상당수 어선은 공해상에서 조업 중 끌려갔다. 또 남측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몇달씩 붙잡아두는 경우가 많아 인도주의를 운운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졌다.

제12차남북이산가족상봉에서 어머니를 상봉한 납북 동진호 선원

북한은 남북 적십자 회담이 한창이던 1985년에도 제12광남호와 제2동주호, 제2계영호를 납치했다.

당시 대한적십자사는 북측에 송환을 촉구하는 전통문을 발송하기는 했지만 회담 중 북측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기록은 없다.

통일부 당국자는 "당시 이산가족 고향방문을 의제로 남북이 마라톤협상 중이어서 회담장에서는 공식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tr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