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수지 "하루하루 충실히 쌓다 보면 뿌듯함은 저절로 다가오죠"

스포츠한국 2024-07-01 15:18:31
영화 원더랜드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수지/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원더랜드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수지/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 ‘원더랜드’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는 스토리를 그린 ‘원더랜드’에는 탕웨이,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공유 등 최고의 배우들이 호흡을 이룬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다. 

각각의 사연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 사람에 대한 복원을 의뢰하고 그렇게 복원된 사람과 소통하는 과정을 그린 '원더랜드'(김태용 감독)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사고로 누워있는 남자친구 태주(박보검)를 원더랜드에서 우주인으로 복원해 행복한 일상을 나누는 정인(수지)의 스토리다. 

최근작인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2022)와 넷플릭스 시리즈 '이두나!'를 통해 괄목할만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드라마와 영화계를 막론한 30대 여자 배우 그룹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수지는 '원더랜드'를 통해 주연배우로서 작품에 대한 홍보 활동까지도 최선두에 서서 펼치며 책임지는 자세를 선보여 눈길을 끈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한국과 만난 수지는 차분하면서도 여유로운 태도로 지난 14년 간의 연기활동을 돌아봤다. 수지는 영화 '원더랜드'가 미친 영향에 대해 "연기의 재미를 알려준 현장이었다. 조금이라도 연기가 멀게 느껴졌다면 이 작품으로 약간 친해진 느낌이었다. 재미있게 촬영했다. 연기에 대해 내가 받아들이는 인식이 달랐던 작품"이라며 극찬했다. 

"예전에는 제 작품이 나올 때 제 연기를 보느라 작품 전체를 잘 못봤어요. 하지만 '원더랜드'는 영화 전체를 보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그때 당시 했던 연기가 최선이라고 생각을 해서 아쉬움을 크게 가지지는 않아요. 특히 이번 작품은 다른 인물들이 나올 때 의도치 않게 슬픈 감정을 느꼈어요.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울컥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작품의 매력인 것 같아요."

영화 원더랜드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수지/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원더랜드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수지/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원더랜드 서비스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어린 딸에게 자신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의뢰한 바이리(탕웨이)와 사고로 누워있는 남자친구 태주(박보검)를 원더랜드에서 우주인으로 복원해 행복한 일상을 나누는 정인(수지)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인공지능 부모님과 교감해온 해리(정유미) 등의 이야기를 그렸다. 수지가 연기한 정인은 뇌사 상태에 빠진 남자친구 태주(박보검)를 인공지능으로 복원해 매일 화상통화를 하며 실제 연인과 같은 다정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태주가 깨어나고 정인과 함께 지내지만 정인은 실제 태주에게서 알 수 없는 괴리감을 느끼게 되고 두 연인은 이별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놓이게 된다. 

"보검 오빠와 호흡을 이루기 전에는 그저 잘 생기고 훈훈하고 빛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백상예술대상에서 1년에 한번씩 MC를 같이 하는 반가운 동료 사이였죠. 막상 작품으로 만나 보니 그때 부터는 태주로 보이기 때문에 안아주고 싶은 면이 보이더라고요. 연기하면서 그런 점이 많이 보였어요. 사람으로서는 강하고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죠. 그냥 잘생긴 얼굴의 소유자가 아니라 여러 감정을 담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얼굴을 가졌더라고요. 영화 작업을 같이 하면서 친해진 것도 있지만 극중에서 연인 관계이기에 그렇게 대해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지내다보니 조금씩 편해졌고 그런 모습이 영화에도 잘 담겼죠."

영화 원더랜드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수지/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원더랜드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수지/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원더랜드'가 다양한 사연자의 이야기를 다뤘기에 수지와 박보검이 연기한 정인과 태주 커플의 스토리 서사가 꽉 차 있지는 않다. 특히 정인과 태주가 일반적인 연인관계를 넘어선 가족에 가까운 느껴지는 모습으로 설정된 것은 시나리오나 영화상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배우들 사이에서 아이디어로 시작해 두 캐릭터의 전사로 굳어지게 한 내용이었다. 수지와 박보검은 영화에서 표현되지 못한 정인과 태주의 서사를 보태기 위해 현장에서 다양한 사진 촬영들을 한다거나 개인 SNS에 두 사람이 함께 한 다정한 사진들을 게재하며 영화에 도움을 주려 했다. 두 사람의 뛰어난 케미 탓에 '진짜 사귀었으면 좋겠다'는 인터넷 반응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반응을 저도 알고 있었어요. 보검 오빠가 얘기한 것처럼 저희가 영화 속 케미가 잘 느껴졌기에 그런(사귀었으면 좋겠다) 질문을 받은 것 같아요. 저는 잘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홍보를 열심히 했지만 이 작품은 정말 애정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굉장히 행복하게 작업했던 작품이에요. 저 또한 오랜 시간 개봉을 기다렸고 준비하고 촬영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많은 것들이 의미있게 다가온 현장이었어요. 전체 영화에서 정인과 태주에게 할애된 시간이 부족할 수 있기에 소품 사진 같은 것들로 더 채워 보려고 했어요. 모든 이야기를 극에서 다 풀어낼 수도 없지만 우리 이야기가 더 잘 전달되었으면 했기에 할 수 있는 방법내에서 최선을 다 했죠."

정인과 태주의 관계에서는 실제 태주와 AI 태주 사이에 커다란 갭이 존재하고 정인은 이런 상황 속에서 혼란을 겪는다. AI로서의 태주에게 좀 더 친근감과 안도감을 느끼고 현실 태주에게서는 이질감을 느끼는 과정을 연기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을까. 

"AI 태주는 너무 완벽하고 나에게 딱 필요한 위로와 말을 해줬기에 통화할 때 만큼은 외로움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면 현실 속 태주는 실제 살아있는 인물이다보니 소통이 잘 안되는 느낌으로 연기했어요. 김태용 감독님이 이때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인간과의 소통이 가장 어렵다'는 거였어요. 실제 인간이 좀 더 복잡하고 어렵게 다가왔던 거죠. 두 존재의 태주를 보며 정인의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보려고 했죠."

영화 원더랜드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수지/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원더랜드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수지/사진제공=매니지먼트 숲,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수지가 '원더랜드'에 출연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김태용 감독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탕웨이, 정유미 등의 선배와의 호흡도 그의 흥미를 자극했다. 수지는 "작품의 제안을 받고 부담도 됐지만 제가 배울수 있는 시간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선배 배우분들과는 만나는 장면이 딱히 없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제가 대본에서 읽었던 내용들을 선배님들이 어떻게 표현했는지 볼 때 너무 새로웠다. 그런 점에서 너무 영광스러웠다. 김태용 감독님의 '만추'는 제가 본 영화 중 인생 영화로 꼽는 작품인데 김태용 감독님의 작품 제안이 들어왔으니 정말 하고 싶더라. 감독님과 호흡해보니 왜 이런 감성이 나왔는지 알 것 같다. 정말 따뜻하신 분이다"라고 말했다.  

정인으로서 수개월을 살아오며 가장 신경 써서 연기한 것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수지는 "보통 어떤 캐릭터를 맡으면 몰입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편이다. 제 스스로 납득이 가야 확신이 생긴다. 캐릭터를 잘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어느 순간 굉장히 이해가 되는 순간이 온다. 정인의 경우 실제 태주가 돌아오고 나서 AI 태주에게 전화가 오자 고민없이 전화를 끊고 서비스를 종료시키는 내용이 있다. 방금 전까지도 AI 태주와 교감을 하고 위로를 받았는데 실제 사람이 돌아오자 기계처럼 대해 버린다. 그당시 정인의 마음에 공감이 많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속의 '원더랜드' 서비스와 같은 것이 실제한다면 수지의 선택은 어떨까. 영화에 깊게 공명하며 작업했던 것만큼 간단치 않은 답변을 들려줬다. 

"사람마다 슬픔을 견디는 시간과 방식이 다른 것 같아요.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내가 힘든 시간을 견디게 될수도 있고 반대로 이 서비스로 더 힘들어질 수도 있어요. 정인이처럼 힘들게 되었을지언정 결국 감당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고 봅니다. 이 영화에서 저에게 가장 다가온 메시지는 각자 슬픔을 마주하게 되고 견뎌야 하는 순간이 결국은 오고 말죠. 이런 부분의 메시지가 좋았어요. 만약 저라면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것 같아요. 정인이처럼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된다해도 감당해볼 것 같네요."

지난 2010년 걸그룹 미쓰에이로 데뷔해 가수로서 연예계에 처음 발딛은 후 2011년 KBS 2TV 드라마 '드림하이'의 주연을 맡아 배우 데뷔식도 성대히 치렀다. 이후 '구가의 서'(2013), '함부로 애틋하게'(2016), '당신이 잠든 사이에'(2017), '배가본드'(2019), '스타트업'(2020) 등 공중파 미니시리즈 주연배우로 쭉 활약해오다가 OTT 드라마 '안나'(2022),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2023)을 통해 연기력에 대해서도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활동해오고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2012)로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도리화가'(2015), '백두산'(2019)에서도 주연을 맡아 활약했다. 13년의 시간동안 배우로서 지내오면서 어느덧 30대의 나이에 이르게 됐다. 

"30대가 되기를 항상 기다려 왔어요. 나이 들어가는 제 모습이 기대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요. 마음적으로 더 편해질 것 같아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어요. 하지만 막상 30대가 되어보니 크게 달라지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이제 40대가 또 기다려지네요. 그동안 선보여온 제 필모그래피들에 대해서는 만족하는 편이에요. 너무 하고 싶었던 작품들이고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어요. 이렇게 한작품 한작품씩 해나가는 것이 좋아요. 하나하나 잘 해나가다 보면 한 작품이 잘 완성되어져 있죠. 최선을 다한 매일매일이 쌓여서 한 작품의 완성으로 이어지기에 너무 뿌듯하죠. 그런 뿌듯함을 제 마음에 잘 담아두려고 해요. 눈 앞에 둔 어떤 일을 두고 두려워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일단 부딪혀 보는 편이죠. 그래서 막상 어떤 일을 시작했을 때 걱정을 잘 하지 않는 성향이에요. 제 스스로가 외로움을 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캐릭터를 고를 때는 결핍이 있는 인물을 주로 고르게 되요. 결핍이 좀 있으면 마음이 가요. 그 감정이 외로움이든 혼란스러움이든 마냥 밝은 인물들보다 갈등이 많은 인물들에 끌려요. 그런 걸 표현하고 싶은 욕구일수도 있고요. 스스로의 감정에는 무디지만 오히려 그런 감정들을 표현하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 같아요. 감정의 폭이 넓은 인물들의 매력에 제가 끌리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