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설립에 현지그룹 육성…라틴·인도로 영토 넓히는 K팝

연합뉴스 2026-04-14 00:00:21

방탄소년단·엔하이픈 등 월드투어 확장…엔믹스, 스페인어 곡 발매

하이브, 라틴그룹 데뷔·인도 법인 설립…"고성장 시장, 선제적 진입"

K팝 정체 극복할 '블루오션' 급부상…"비용·문화적 특성 고려해야"

그룹 방탄소년단

(서울=연합뉴스) 김선우 기자 =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K팝 가수들의 시선이 새로운 '기회의 땅' 라틴 아메리카와 인도를 향하고 있다.

과거 아시아와 북미, 유럽에 집중됐던 아이돌 그룹들의 월드투어가 최근 라틴 아메리카로 확장하는 추세다. K팝을 수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미 현지 법인을 세운 기획사도 있다. 기존 주력 시장의 포화 상태를 극복하고, 가파른 성장세와 확장성을 지닌 새로운 '블루오션'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 라틴 투어는 '필수 코스'…법인 설립 등 현지화 전략 확대

하이브 첫 라틴 아메리카 보이그룹 산토스 브라보스

두드러진 변화는 라틴 아메리카 지역 내 활발한 공연 개최다. 지난 9일 새 월드투어 '아리랑'의 포문을 연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오는 10월 남미 투어에 나선다. 콜롬비아, 페루, 아르헨티나는 완전체로 방문하는 것이 처음이라 현지 팬들의 기대감이 높다.

엔하이픈 역시 7월 브라질, 페루, 멕시코 등에서 데뷔 후 첫 라틴 아메리카 단독 공연을 앞뒀다. 라이즈는 지난달 K팝 보이그룹 최초로 세계적인 음악 축제인 '롤라팔루자 남미' 무대에 올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또한 국내 주요 기획사들은 라틴 아메리카 시장 공략을 위해 현지 법인 설립과 아티스트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하이브는 지난 2023년 '하이브 라틴 아메리카'를 설립하고 현지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일본의 앤팀, 미국의 캣츠아이에 이어 지난해 첫 라틴 아메리카 그룹 산토스 브라보스를 데뷔시키고 글로벌 활동을 전개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JYP엔터테인먼트 역시 라틴 아메리카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라틴 아메리카 법인을 설립하고 현지 기반을 구축했다.

이와 함께 엔믹스는 2024년 미니 2집 수록곡 '소냐르'(Sonar)의 스페인어 버전에 이어 브라질 가수 파블로 비타와 협업곡 '메쉬'(MEXE), '틱 틱'(TIC TIC) 등을 발표하며 라틴 아메리카 시장을 겨냥한 음악적 시도를 이어갔다.

◇ 14억 인구의 잠재력…인도 공략 박차

하이브 인디아 로고

라틴 아메리카와 함께 주목받는 신흥 시장은 14억 인구를 보유한 인도다. 하이브는 K팝 수출을 넘어 지난해 현지 법인 '하이브 인디아'를 설립했다. 이어 현지 온오프라인 오디션을 통한 인도 걸그룹 론칭 계획을 발표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앞서 방시혁 의장은 지난해 12월 인도 매체 '인디아 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인구 14억 명의 인도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음악 시장"이라며 "인도는 강력한 '멜팅팟'(용광로)이자 글로벌 메이저들이 지켜보는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하이브 측은 라틴 아메리카와 인도 진출에 대해 시장의 성장 속도와 확장성에 주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하이브 관계자는 "고성장 시장에 대한 선제적 진입, 미국과 남미를 동시에 아우르는 확장성, 현지 지식재산권(IP) 확보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기반으로 아시아·영어권·스페인어권을 연결하는 글로벌 '멀티홈' 구조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 왜 라틴 아메리카·인도인가…포화 시장 넘을 '블루오션'

그룹 스트레이 키즈 '록 인 리오' 출연 포스터

K팝이 이처럼 라틴 아메리카와 인도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아시아, 유럽, 북미 등 전통적인 K팝 주요 소비 시장 내 경쟁이 포화되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써클차트에 따르면 지난 2023년부터 2025년까지 K팝 앨범 판매량은 감소 추세를 보이며 이른바 'K팝 위기론'이 제기됐다. 반면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에 따르면 2024년 라틴아메리카 음악 시장은 전년 대비 22.5% 성장하며 15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갔다. 이는 같은 기간 전 세계 평균 성장률(4.8%)을 크게 뛰어넘은 수치다.

시장성과 함께 K팝에 대한 수요도 맞아떨어졌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를 살펴보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등 주요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서 K팝 앨범이 포함된 음성 기록물 관련 수출액은 꾸준히 늘었다. 일례로 아르헨티나의 경우 2023년 9만8천달러(1억4천여만원)에서 2025년 18만2천달러(2억7천여만원)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처럼 이들 지역은 거대한 시장을 바탕으로, K팝에 대한 관심과 소비가 꾸준히 증가함에도 물리적 거리 등의 한계로 대규모 프로모션이나 직접 진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블루오션'으로 꼽힌다.

현지 대형 페스티벌에서도 점차 K팝 아티스트 비중이 커지고 있다. 스트레이 키즈는 오는 9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대형 음악 축제 '록 인 리오'에 K팝 아티스트 최초로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로 나선다. 이 공연에는 화사, 넥스지도 출연한다.

◇ 단기 수익보다 장기 투자…"대형 기획사에 유리"

그룹 라이즈 '롤라팔루자 남미' 공연

라틴 아메리카와 인도에서 공급 대비 수요가 많다는 건 희망적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투어나 팬미팅을 진행할 때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러브콜이 점점 늘고 있다"며 "그동안은 현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멤버 가비가 속한 블랙스완의 소속사 관계자는 "과거부터 K팝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었으나 진출 기회가 적었다"며 "블랙스완은 코로나 팬데믹 때 데뷔해 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K팝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면서 현지와 구체적인 진출 계획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과제도 남아있다. K팝 수출을 넘어 본격적인 현지 진출은 초기 단계인 만큼, 현지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려면 단기적인 수익 창출보다 장기적인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꾸준한 공연 개최나 현지 그룹 육성에는 상당한 비용이 투입돼 현실적으로 자본력과 시스템을 갖춘 대형 기획사에 유리한 구조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한다면 버틸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대형 기획사 위주로 현지 진출이 이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현지 팬들의 열기와 반응이 뜨거워 가수들도 큰 힘을 얻는다"며 "인구수가 방대한 거대 시장이니 자리만 잘 잡는다면 K팝 성장에 막대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기획사 관계자는 "이미 현지에서 데뷔한 그룹도 있지만, 현지화 그룹을 만드는 것 역시 아직은 과도기적 단계"라며 "국가별 문화 차이가 있어서 K팝 트레이닝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기 쉽지 않아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sun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