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정권교체…'유럽판 트럼프' 오르반 16년만에 퇴장(종합2보)

연합뉴스 2026-04-13 17:00:23

야당 티서 138석 차지…오르반, 패배 인정

머저르 티서 대표 "EU·나토의 강력한 동맹 될것"…대대적 변혁예고

머저르 페테르 티서 대표

(로마·서울=연합뉴스) 민경락 특파원 이신영 기자 = 12일(현지시간) 치러진 헝가리 총선에서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이끄는 여당이 큰 격차로 패배했다.

이에 따라 2010년 집권 이후 '유럽의 트럼프'로 불리며 러시아와 각별하게 밀착해온 오르반 총리도 16년 만에 권좌에서 물러나게 됐다.

헝가리 국가선거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총선 결과 개표율 97.74% 기준으로 야당 티서가 전체 199석 중 138석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당인 피데스는 55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티서는 오르반 총리의 장기 집권의 폐단을 근절하겠다며 3분의 2선인 '133석'을 최종 목표로 제시해왔다. 정치·사회 시스템 개혁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이른바 '매직 넘버'다.

138석을 차지해 총선 승리를 넘어 강력한 정책 추진 동력까지 확보하게 된 셈이다.

티서의 머저르 페테르 대표는 다뉴브 강변에서 열린 승리 축하 행사에서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오늘 밤 진실이 거짓을 이겼다"며 "오늘 우리가 승리한 것은 헝가리인들이 조국이 자신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기보다 자신들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연합(EU)과 미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대대적인 정치변혁도 예고했다.

머저르는 압도적인 승리로 오르반의 권위주의 시스템을 해체하고 헝가리를 유럽의 품으로 되돌리는 임무를 부여받았다며 "헝가리는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강력한 동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헝가리 국민은 유럽연합(EU) 가입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된 지 정확히 23년 만에 다시 한번 역사를 써냈다"며 "헝가리는 천 년 동안 유럽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EU와 사사건건 대립해온 헝가리의 외교 정책 노선에도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그간 동결됐던 EU 지원금을 다시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 EU의 우크라이나 지원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머저르는 오르반 체제에 대해서는 과감한 칼질을 해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공직자로서 책임보다 오르반 체제에 대한 충성을 우선시했던 대통령과 대법관, 검찰총장에 대한 사퇴를 촉구하며 "나라를 배신한 자들은 책임을 져야한다"고 직격했다.

헝가리가 또다시 권위주의체제로 회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리 임기를 2번으로 제한하겠다고도 했다.

이렇게 되면 오르반 총리는 앞으로 다시 총리직에 오를 수 없게 된다.

정권교체를 이뤄낸 야당 지지층도 환호했다.

외신에 따르면 부다페스트 거리에서는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고 반정부 노래를 크게 틀며 승리를 자축했다.

거리를 행진하며 "러시아인들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등의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헝가리 국가선거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80%에 육박했는데, 이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오르반 총리는 "승리 정당에 축하 인사를 건넸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이번 총선은 오르반 총리가 미국·러시아에 밀착하며 대러시아 제재, 우크라이나 지원 등 EU 정책에 발목을 잡아 온 탓에 미국·러시아와 EU 간 대리전으로도 주목받았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헝가리 외무장관이 러시아와 EU 회의 내용을 논의하는 녹취록이 공개되는 등 오르반 총리에 악재가 잇달았다.

또 오르반 총리가 작년 10월 17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에서 "헝가리 그림책에 쥐가 사자를 도와주는 이야기가 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언제든 돕겠다"고 말했다는 녹취록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

부패 스캔들과 경제난 심화도 오르반 총리의 지지율에 타격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 지지하고 JD 밴스 미국 부통령도 헝가리를 찾아 지원사격에 나섰지만 이란 전쟁을 둘러싼 부정적 여론 여파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야당의 승리 소식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헝가리는 유럽을 선택했다. 한 나라가 유럽으로의 길을 되찾았다"고 환영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헝가리 국민이 EU의 가치와 유럽에서의 헝가리의 역할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결과"고 평가했고,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유럽의 민주주의에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밝혔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머저르 대표에게 "강하고 안전하며 무엇보다 단결된 유럽을 위해 힘을 합치자"고 했고, 페테리 오르포 핀란드 총리는 "선거를 통해 헝가리 국민은 EU와 나토의 적극적인 일원이 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양국의 이익은 물론 유럽의 평화와 안보, 안정을 위해 협력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roc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