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서 사들인 유물 46점 선보여
국보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장승업 '팔준도' 등 공개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1922년 일본인 골동품상들은 조선 최대의 미술품 거래 기관을 자처하며 '경성미술구락부'를 만들었다. 일본인만 참여할 수 있는 경매 회사로,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유출되는 주요 통로였다.
이곳에서는 해방 전까지 260여 회의 경매가 열렸다. 낙찰 총액은 1935년 12만 5천 엔에서 1941년 37만 5천 엔으로 세 배 가까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만큼 문화유산의 국외 유출도 가속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간송 전형필은 일본인 중개인을 내세워 1930년부터 1944년까지 32차례 경매에 참여해 350여 건의 유물을 낙찰받았다.
간송미술관은 오는 15일부터 6월 14일까지 간송이 경성미술구락부를 비롯해 경매를 통해 사들인 유물 중 46점의 작품을 추려 2026년 봄 특별 전시 '문화보국:신념으로 지켜낸 우리의 얼'을 개최한다.

전시 대표작은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제294호)이다. 청화와 철화, 동화 세 가지 안료를 모두 사용한 조선 최고 수준의 도자 기술이 집약된 병이다. 성질이 다른 세 안료를 한 작품에 완벽하게 구현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자손 번영과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곤충과 국화가 문양으로 들어갔다.
이 작품은 1936년 11월 22일 간송이 일본 거상 야마나카 상회와 치열한 경합 끝에 낙찰받았다. 낙찰가는 당시 경성미술구락부 경매 역사상 최고가인 1만4천580원으로 이는 기와집 15채 값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경성일보 11월 23일 자에 '이조 유물 철사대병 1만 5천원에'라는 제목의 기사로 보도되기도 했다.

조선 말기 천재 화가 오원 장승업의 '팔준도'도 전시된다. 한 폭에 두 마리씩, 총 여덟 마리의 말을 네 폭에 나누어 그린 것인데 이 중 제1폭과 제4폭이 나왔다.
제1폭 '어자조련'은 조련사가 말을 길들이는 장면이다. 한 손을 뒷짐 진 채 조심스레 다가서는 조련사와 고개는 숙이면서도 눈길만은 조련사를 향하는 말의 미묘한 긴장감이 읽힌다.
제4폭 '호치비주'는 바람처럼 내달리는 말들의 힘찬 질주를 담았다. 시내를 사이에 두고 각각 다른 방향으로 치달리는 역동성이 보인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 '침계'(보물)는 예서와 해서가 혼용된 추사체의 정수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추사가 유배 시절 자신을 정성껏 보살핀 제자 침계 윤정현에게 보답으로 써줬다.
발문에 따르면 추사는 일찍이 윤정현으로부터 호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하지만 한나라 예서(隷書·중국의 옛 서체인 전서보다 쓰기 쉽도록 고안된 서체)에 '침'(梣) 자가 없어서 오랜 고민 끝에 예서와 해서(楷書·정자체)를 합해 썼다. 추사의 30년에 걸친 고민이 담긴 작품이다. 간송은 1940년 4월 경매에서 낙찰받았다.

전시에는 간송이 대한고미술협회에서 다시 사들인 작품들도 소개된다. 간송은 6·25전쟁이 터지자 보화각(간송미술관의 전신)에 수장품들을 적재하고 부산으로 피난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오니 유실된 유물들이 많았다.
간송은 전쟁 후 흩어진 유물을 다시 찾기 시작했는데 이 중 일부는 대한고미술협회 경매를 통해 확보했다. 공교롭게도 대한고미술협회의 경매장은 과거 경성미술구락부 경매 공간이었다.
청운 강진희와 중국 참찬관 팽광예의 '미사묵연'도 이렇게 재입수한 작품이다.
강진희는 1887년부터 1889년까지 주미 공사 박정양의 수행비서로 미국을 다녀왔다. 그는 워싱턴DC에서 팽광예와 교류했다. '미사묵연'은 두 사람이 함께 만든 화첩이다.
이 화첩 중 제1면 '일하향임도'와 제2면 '화차분별도'를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일하향임도'는 팽광예가 항해를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인한 경이로움을 전하면서 서양의 명암법이 동아시아 서화 감상 방식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다.
'화차분별도'는 강진희가 질주하는 증기기관차를 처음 보고 이를 남종화풍으로 그린 작품이다. 낯선 서양 문명과의 조우에서 비롯된 시각적 충격을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간송미술관은 "숭고한 신념으로 지켜낸 명품들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진정한 가치와 그 속에 담긴 민족의 얼을 확인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간송미술관은 이번 전시와 함께 보화각을 지킬 '석호상'을 새로 공개했다.
간송은 1933년 일본에서 경매로 석사자상 한 쌍을 사들인 뒤 이를 보화각 건물 입구에 놓았다. 이 사자상은 중국 청나라 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가 1.9m, 무게가 1.25t에 이른다.
간송미술관은 지난 1월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에 기증하기로 한 바 있다. 생전에 간송은 사자상이 중국의 유물이니 언젠가 중국으로 보내주는 게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사자상은 올해 안에 중국으로 보내질 예정이다. 대신 간송미술관은 이 자리에 돌호랑이상을 놓기로 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석호상은 몸을 높게 세운 자세와 공처럼 둥근 얼굴로 일반적인 석호와는 다른 조형미를 보여준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민화에 나오는 호랑이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다"며 "우리의 호랑이가 보화각을 지키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 석호상을 보화각 앞에 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laecorp@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