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반 측근서 대항마로…정치 무명에서 2년 만에 총선 승리 이끌어
EU와 관계개선 주목…변화 예상보다 더딜수 있다 분석도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12일(현지시간) 치러진 헝가리 총선에서 창당한 지 2년밖에 안 된 신생정당인 티서가 16년간 장기 집권해온 빅토르 오르반 총리를 끌어내렸다.
티서는 단박에 정치·사회 시스템 개혁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매직넘버'인 133석을 넘겨 138석까지 확보하면서 헝가리 정치의 대대적인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AFP 등 외신에 따르면 압도적인 승리의 주역인 머저르 페테르(45) 티서당 대표는 원래 오르반 총리의 측근이었다.
오르반의 피데스당에 20년 이상 몸담아온 보수성향의 인물이지만 헝가리 정가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다.
그는 2024년 아동보호시설 내 성 학대 은폐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인물이 사면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치스캔들화하자 오르반 총리와 결별하고 티서당을 창당했다.
티서는 같은 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29.6%를 득표하면서 돌풍을 일으켰고 머저르도 오르반의 대항마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외신은 머저르 집권으로 헝가리에 개혁의 물결이 일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유럽연합(EU)과의 관계 개선이 주목된다.
오르반 총리 체제하에서 헝가리는 EU의 결정에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는 골칫거리였다.
러시아와 밀착해온 오르반 총리는 EU의 우크라이나 지원과 러시아 제재 추진에 계속해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발목을 잡아 왔고 격앙된 EU 내부에서는 만장일치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분출하던 상황이다.
반면 머저르는 헝가리를 다시 신뢰할 수 있는 EU 회원국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해왔으며 러시아에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는 승리를 확정 짓는 순간 "헝가리는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강력한 동맹이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등 유럽 지도부가 티서당 승리 소식에 일제히 환영입장을 내놓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헝가리는 사법 독립성과 법치주의 등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년간 EU의 지원금도 받지 못해왔는데, 시장에서는 이번 선거로 동결자금이 풀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유로화도 도입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머저르는 선거기간 약속했던 것처럼 부패를 척결하고 공공서비스를 개선하는 등의 개혁 조치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AFP는 다만 그가 오르반 총리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는 데는 반대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에도 부정적이라고 짚었다.
그는 또 오르반 총리보다 더 강경한 반이민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정부의 외국인 근로자 프로그램을 폐지하겠다는 공약도 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헝가리의 변화가 예상보다는 더딜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폴란드 국영 싱크탱크 동방연구센터(OSW)의 안제이 사데츠키는 AFP에 "그는 피데스당에서 성장해온 인물인 만큼 오르반의 통치와 진정으로 결별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달리보르 로하크 연구원은 가디언에 피데스당이 16년간 집권해오는 동안 정부와 언론, 사법부를 충성파로 채워왔으며 이들이 정권교체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헝가리의 앞날은 복잡하다"고 진단했다.
막스 베르크만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유럽·러시아·유라시아 국장은 미국 시사주간 타임과 인터뷰에서 "머저르 페테르가 실제로 어떤 인물이고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미 싱크탱크 독일마셜펀드의 정치분석가 주잔너 베그는 다만 머저르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며 러시아의 이익을 대변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그것만 해도 엄청난 변화"라고 짚었다.

헝가리 총선 결과가 유럽을 흔들어온 '극우 물결'에도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베르크만 CSIS국장은 "이번 선거는 전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극우운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짚었다.
다만 독일마셜펀드의 베그는 "유럽의 경우 극우 정당의 부상은 국내 정치 역학에 의해 주도됐다"며 헝가리 극우의 패배가 다른 나라의 극우 정치에 직접적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한편 16년간 권좌를 누려온 오르반 총리의 패배는 부패스캔들과 경제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민심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실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BBC는 오르반 총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몇 주 만에 치러진 지난 2022년 총선에서는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낼 수 있다는 당시 야당 대표의 발언을 무기 삼아 선거를 전쟁과 평화의 구도로 이끌어 승리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더는 그런 전략이 먹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오르반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밀착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친분을 과시하며 '유럽의 트럼프'로 불려 왔지만, 이런 선택이 결국 정치적으로는 '악수'였다는 분석이다.
eshiny@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