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중심 예술계 속 독자적 화풍…70주기 회고전
유화·판화·드로잉 100여 점으로 따라가는 로랑생의 삶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는 피카소, 모딜리아니, 마티스 등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모여 현대 미술의 기반을 마련하던 곳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여성은 장식적 역할에 머물렀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마리 로랑생(1883∼1956)은 '르 비슈(Le Biche·암사슴)'라 불리며 자신만의 세련된 취향과 독창적인 화풍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독자적인 예술 영역을 구축하며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로랑생 작고 70주기를 맞아 '마리 로랑생 회고전: 무지개 위의 춤'이 서울 대치동 마이아트뮤지엄 삼성점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초기 작품부터 1950년대 작품까지 마리 로랑생 미술관에서 대여한 유화와 판화, 드로잉 등 100여 점으로 로랑생의 삶을 따라가도록 구성됐다.

로랑생은 1883년 정치인 아버지와 가정부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이런 배경으로 어려서부터 남성 권위에 대한 근본적인 위화감과 비판적 시각이 형성됐다.
미술을 공부한 로랑생은 파리 몽마르트의 한 아틀리에 공동체에 입성한다. 피카소를 비롯해 가난한 화가나 시인들이 함께 머물며 예술의 세계를 펼치던 '바토 라부아르'(세탁선)였다.

로랑생은 이곳에서 입체주의의 탄생 과정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는 입체주의의 기하학적 실험을 수용하면서도 이에 매몰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여성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안티 큐비즘'적 태도를 견지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했다.
전시에는 당시 '세탁선의 뮤즈'로 불리던 로랑생이 함께 어울리던 피카소나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페르낭드 올리비에, 시인 앙드레 살몽 등을 그린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이 시절 로랑생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미술 평론가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만나 5년간 불같은 사랑을 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로 시작하는 아폴리네르의 명시 '미라보 다리'는 아폴리네르가 로랑생과 이별하고 지은 시로 유명하다.
1909∼1911년 제작된 로랑생의 '뾰족한 머리를 가진 여인의 초상화'는 아폴리네르를 그린 작품이다. 아폴리네르를 그리면서 '여인'이라 칭한 것은 성별과 재현 방식에 대한 전복적 시도이자 시각적 유희다.
얼굴은 측면을 향하면서도 눈은 정면을 응시하는 구성은 고대 이집트 벽화를 연상시키며 아프리카 원시주의에 대한 로랑생의 해석을 반영했다.

아폴리네르와 결별한 로랑생은 1914년 돌연 독일 귀족 출신 화가 오토 폰 바트옌과 결혼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스페인으로 망명했고, 결혼 생활도 파국을 맞으면서 외부와 단절한 채 내면으로 향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의 그림은 밝은 색감 대신 차분하고 가라앉는 절제된 색채로 변화한다.
1919년 작 '춤'은 화면에서 남성의 존재가 배제된 구성을 보여준다. 중앙에 기타를 안은 여인은 로랑생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절제된 색감과 인물들의 어긋난 시선을 통해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특히 화면을 수직으로 가르는 핑크 격자무늬 스카프는 공간을 나누고, 인물 간 거리감과 긴장 관계를 드러낸다.

바트옌과 이혼한 로랑생은 1921년 프랑스 파리로 귀환한다. 그는 곧바로 화단의 주목을 받으며 성공적인 재출발을 이뤘다.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으며 창작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공황이 오면서 시대적 우울은 로랑생의 예술을 더욱 심화한 단계로 이끈다.
1930년대 로랑생의 회화는 잘 사용하지 않던 적색과 황색이 화면에 적극적으로 도입되며 색채의 폭이 확장된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꽃과 여인의 형상은 외부 세계의 불안과 대비되는 내면의 질서와 정서를 상징한다.
1937년 작 '마담 앙드레 그루의 초상'은 노란색 드레스가 화면을 지배한다. 또 형태가 더욱 단순화되고 인물의 윤곽이 부드럽고 풍성하게 처리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안정되고 성숙한 분위기를 띤다.

제2차 세계대전 등 대혼란과 격변의 시기를 보낸 뒤 로랑생은 1950년대 초 수도원에 머물며 고독 속에서 종교적 사색과 회화 작업을 이어간다. 삶의 비애를 보다 절제되고 영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1953년 작 '세 명의 젊은 여인들'은 노년의 로랑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차분한 시선으로 그가 지속해서 탐구하던 소녀들을 화면에 담았다. 약 10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으로 로랑생 예술의 집약적 성과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이태근 마이아트뮤지엄 관장은 "로랑생은 야수파와 입체파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며 "부드럽고 은은한 색채와 우아한 선은 그만의 섬세한 감수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예술가로서의 신념과 고집,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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