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담판 현장] 협상은 결렬됐지만…파키스탄 존재감은 부각

연합뉴스 2026-04-12 18:00:05

'신뢰할 수 있는 대화 상대국' 이미지 구축…"외교 위상 올라갔다"

파키스탄에 애초부터 미·이란에 강제할 영향력은 부족…'한계' 지적

'미·이란 종전 협상' 열릴 파키스탄 세레나 호텔

(이슬라마바드=연합뉴스) 손현규 특파원 = "오늘부터 미디어 센터는 문을 닫습니다. 미디어 지원본부에서 미디어 센터까지 가는 취재진 셔틀버스도 운행을 중단합니다."

미국과 이란의 첫 종전 협상이 12일 새벽(현지시간) 결렬되자 중재국 파키스탄 정보방송부는 내외신 취재진을 위해 이슬라마바드에 마련한 미디어 센터를 곧바로 폐쇄했다.

비록 협상이 결렬됐지만 미디어 센터 바로 앞에 있는 협상장인 세레나 호텔 주변 분위기를 취재하려고 셔틀버스를 탈 수 있는지 물었지만, 파키스탄 정보방송부 관계자는 단호하게 운행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개인 차량으로는 미디어 센터 주변에 갈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협상이 열린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는 이날 오전부터 시내 곳곳에 설치된 회담 홍보물을 철거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철거되는 '이슬라마바드 회담' 홍보물

미국과 이란은 밤을 새워가며 '1박2일 벼랑 끝 담판'을 했지만, 결국 빈손으로 이슬라마바드를 떠났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행과 레바논 공격 중단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 대표단을 이끈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이란으로부터 핵무기와 관련해 '명확한 약속'을 듣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양측은 이번 협상에서 핵심 쟁점을 놓고 뚜렷한 입장 차를 보였다.

만약 미국과 이란이 파키스탄에서 종전에 합의했다면 외교사에 뚜렷하게 남을 만한 '이슬라마바드 회담'이 될 뻔했다.

그러나 이번 협상에서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한 미국·이란과 달리 파키스탄은 국제 사회의 신뢰와 함께 존재감까지 두둑하게 챙겼다.

파키스탄은 자국에서 미국 부통령과 이란 의회 의장이 만나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면서 '신뢰할 수 있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특히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밴스 부통령과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이 대면한 자리에 함께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는 미국과 이란이 1979년 양국 외교관계를 단절한 이후 47년 만에 성사된 최고위급 회담이면서 동시에 2015년 이란 핵 협상 타결 후 처음으로 열린 양국 공식 대면 협상이었다.

미국 대표단(왼쪽)과 이란 대표단

전직 장관 출신이자 파키스탄에서 이란 전문가로 평가받는 무샤히드 후사인 시드 상원의원은 이번 회담 결과와 상관없이 자국이 재앙을 막았다고 자평했다.

그는 자국 매체 지오뉴스에 "파키스탄은 (서로) 적대 세력인 (미국과 이란) 양국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냈다"며 "이는 양국이 (파키스탄에) 신뢰를 표명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미국과 이란이) 서로 총을 쏘는 대신 대화에 관심을 보인 것도 파키스탄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파키스탄이 이번에 세계 외교의 중심 무대에 서면서 모든 시선이 쏠린 만큼 외교와 국방 양면에서 파키스탄의 역량을 드러냈고, 동시에 신뢰할 수 있는 대화 상대국으로 인정받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무슬림 국가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서구까지 파키스탄의 영향력과 파급력은 엄청나게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인영 파키스탄 국제대학교 교수는 연합뉴스에 "파키스탄이 이번에 종전 회담 자리를 마련하면서 중재국으로서 좋은 이미지를 만들었다"며 "파키스탄도 현재 에너지 부족 문제가 심각해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이번 분쟁을 중재해야 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철통 보안'

이번 회담을 앞두고도 세계의 시선이 이슬라마바드로 한꺼번에 쏠리면서 파키스탄은 외교적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며 들뜬 분위기였다.

주파키스탄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파키스탄 정부 관계자들과 만났을 때 이번 협상을 중재했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인 틸르왓(53)도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파키스탄이 주도적 역할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며 "미국과 이란의 휴전 협상 자리를 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다"고 말했다.

전날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하기 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국제공항에서 만난 파키스탄 대학생 에만(24)은 "파키스탄이 중재한 것은 좋은 결정이었다"며 "중동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고통받는 상황이 빨리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재국 파키스탄이 미국과 이란을 협상장으로 나오게 하는 데는 큰 역할을 했지만, 양국이 서로 양보하지 않는 상황에서 강제력을 행사할 만한 영향력이 부족했던 점은 한계로 평가했다.

'미·이란 종전 협상' 프레스 센터

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