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원유·인프라 투자 리스크…"걸프 국가 달래며 전략 파트너들 신뢰도 지켜야"

(베이징=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 "적이 실수하고 있을 때 방해하지 말라."
최근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 표지에 쓰인 문구는 중국에서도 화제였다.
무언가를 외치고 있는 흐릿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뒤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빙그레 미소짓는 모습이었다.
글로벌 판도를 놓고 미국과 경쟁을 벌이던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이란 전쟁으로 '전략적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관측은 서방 국가들은 물론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전략 역량이 분산돼 '중국 견제' 강도가 약해질 것이고, 안정적인 중재자를 자임하면서 휴전 회담까지 끌어낸 중국이 국제 무대에서 더 신뢰를 줄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 대표적이다.
때마침 여론조사기관 갤럽은 지난해 세계 130여개국 국민에게 미국·중국 등 주요국 지도부에 대한 지지 여부를 물었더니 중국 지지율(32→36%)이 미국(39→31%)을 앞서게 됐다는 조사 결과를 이달 초 발표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이란이 위안화를 결제 수단으로 쓰면서 '페트로 달러'가 약화하고 '위안화 국제화'에 탄력이 붙게 됐다는 기대감은 중국 관영매체에서도 등장한다.
중국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논평 플랫폼에선 "미국의 패권이 쇠퇴하고 있다"는 평가들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당국과 연계된 공식 싱크탱크 연구자나 유명 대학 교수들이 주된 필자다.
드물기는 하지만 중국이 마주한 한층 복잡한 사정이 읽히는 글도 있었다. 브라이언 웡 홍콩대 교수가 지난달 말 온라인 매체 '중미 포커스'에 기고한 글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란 문제에 관한 중국의 고민을 '미묘한 균형 맞추기'(delicate balancing)로 규정했다.
이란과 '대리 세력'이 걸프 국가들을 공격하면서 미국의 '군사적 안전 보장'에 신뢰성 문제가 생겼다는 점부터 미국이 우크라이나 외에도 새로운 분쟁에 휘말리게 됐다는 점, 미국이 군사력과 자원을 아시아·태평양에서 서아시아로 옮기면서 중국에 '숨통'이 트였다는 점까지 다양한 분석이 제시되지만, 이런 관점은 중국이 이란 안에서 갖고 있던 이익의 복잡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게 웡 교수의 지적이다.
당장 원유 조달이 문제다.
중국의 전체 수입 원유에서 이란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공식 통계상 13∼20% 정도로 나타나는데, '그림자 선단'이나 제3국을 경유하는 물량까지 합치면 실제 비중은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첨단 산업 육성과 내수 진작으로 갈 길이 바쁜 중국에 유가 불안은 부인할 수 없는 취약점이다.
이란 내 투자 문제도 있다.
상당 기간 이란은 중국이 걸프 지역 및 북아프리카로 가는 물류망의 핵심 거점이었고, 중국은 이란 내 석유·가스 인프라의 건설을 맡아왔다. 2021년 양국은 25년 기한, 4천억달러(약 593조원) 규모의 경제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이란 내 철도와 정유공장, 석유화학공장 등 인프라가 포함된다. 이란에 중대한 정치적 변동이 발생하면 중국은 물류망에 타격을 입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해놓은 투자까지 위험해지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웡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중국 앞에 '균형'을 맞춰야 하는 난제가 놓여 있다고 본다.
중국은 한편으로는 에너지·공급망 다각화를 고려해 이란으로부터 공격당한 걸프 국가들을 달래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북한·파키스탄·쿠바 등 파트너에 중국이 지지한다는 신뢰를 보여야 한다.
지금까지 중국은 이란을 향한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을 규탄하면서, 걸프 국가들을 향한 이란의 공격을 지지하지 않는 형태로 거리를 유지하며 중재 노력을 기울여왔다.
중국은 걸프 국가들을 의식해 적극적으로 이란 편을 못 들고 있지만, 중국의 군사·전략적 파트너들 입장에선 미국의 공격이 있더라도 중국이 강경한 발언만 하고 실질적인 개입은 별로 하지 않는다는 '신뢰'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웡 교수는 지적했다.
베네수엘라와 이란이 공격당하는 것을 바라본 '잠재적 공격 대상'들은 마땅히 믿을 구석이 없으니 앞으로 미국에 더 많은 양보를 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웡 교수는 중국이 직접 개입하지는 않더라도 내달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거래'를 함으로써 이란 전쟁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다는 관측을 제기했다.
중국이 미국산 대두와 항공기 등 수입을 대폭 늘리고 미국 기업들에 일정 기간 희토류 공급을 보장하면, '전쟁에 지친' 미국이 이란 정권을 퇴출하지 않고 전쟁을 끝내는 '교환'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xing@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