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전쟁 뉴스가 이어지고 중동의 긴장이 높아지면 유가는 출렁이지만, 요즘 금융시장은 예전만큼 한 방향으로 크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엔진의 중심이 석유에서 기술과 디지털 자산으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산업경제에서 석유는 정말로 혈관이었다. 운송, 제조, 화학, 전력, 항공, 해운이 모두 석유 가격에 묶여 있었다. 유가가 오르면 물류비가 뛰고 물가가 흔들렸으며, 물가가 오르면 금리가 따라 움직였고, 그 여파는 주식과 채권, 환율시장으로 퍼졌다. 당시 많은 투자자가 중동의 정세를 민감하게 읽은 이유는 지정학 호기심만이 아니라, 원유 공급이 곧 세계 경기의 온도계였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 같은 좁은 해상 통로가 국제 질서를 흔들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상당 비중이 그 길을 지나가니, 한 번 막히면 가격이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충격이 와도 자본시장의 반응 방식이 다르다. 유가가 오르더라도 곧바로 시장 전체가 공포에 빠지기보다, 많은 투자자는 그 충격이 어느 산업에 얼마나 오래 영향을 미치는지를 먼저 계산한다. 왜냐하면 시장의 중심축이 석유 단일 변수에서 다변화된 기술 변수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시가총액 상위 기업을 보면 에너지 기업보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같은 기술기업의 존재감이 훨씬 크다. 이들 기업의 가치는 원유 저장량이 아니라 데이터 처리 능력, 소프트웨어 생태계, 반도체 설계력, 클라우드 인프라, 인공지능(AI) 연산 수요에 의해 움직인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인공지능 산업이 있다. AI는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자본 배분 구조를 바꾸는 산업이다. 대규모 언어모델, 생성형 AI, 자율주행, 로봇, 디지털 헬스케어는 모두 막대한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금은 지금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네트워크 장비, 클라우드 사업자 쪽으로 쏠리고 있다.
시장이 보는 미래의 성장 스토리가 석유 시추나 정제보다 그래픽처리장치(GPU), 고대역폭메모리(HBM), 서버, 냉각, 전력망에 붙어 있는 셈이다. 이는 업종 선호의 변환이 아니라 자본의 철학이 바뀐 결과다.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반도체에 집중되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패키징, 장비, 소재 분야에서 AI 인프라의 핵심 고리 중 일부를 맡고 있다. 글로벌 AI 경쟁이 심화할수록 서버 한 대를 구성하는 부품 수요는 늘고, 그 수요는 곧바로 한국 기업 실적에 연결된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시장을 볼 때 경기 민감주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AI 공급망의 일부로서 한국 기업의 위치를 본다는 점이 중요하다. 반도체는 이제 제조업이 아닌 디지털 시대의 전략 자산이 됐다.
디지털 자산 시장도 자본의 방향 전환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이후 기관투자가의 진입이 가능해지면서 암호자산은 더 이상 변방의 투기성 자산으로만 취급되기 어려워졌다. 물론 변동성이 크고 규제 리스크도 여전하지만, 제도권 금융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전통 금융이 주식·채권·원자재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디지털 자산이 별도의 투자 축으로 존재한다. 자본은 더 이상 하나의 금고에 갇혀 있지 않고, 실물자산과 디지털자산 사이를 빠르게 이동한다. 이 흐름은 세계 금융의 언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석유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에너지는 여전히 산업의 바닥이다. 제조업, 항공, 해운, 석유화학, 발전 부문은 여전히 원유와 가스에 크게 의존한다. 중동의 긴장이 높아지면 에너지 가격은 언제든 다시 시장을 흔들 수 있다.
다만 달라진 점은, 과거처럼 그것이 곧바로 금융시장의 전면적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자본은 이제 석유만 보지 않는다. 기술, 데이터, 전력, 반도체, 플랫폼, 디지털 자산을 함께 본다. 충격의 통로가 분산된 것이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투자 주제의 이동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의 권력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 시대에는 자원을 가진 자가 힘을 가졌다. 지금은 데이터를 다루고, AI를 설계하고, 디지털 인프라를 통제하는 자가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과거에는 산유국의 생산량과 해협의 통제력이 시장을 흔들었다면, 지금은 반도체 공급망과 클라우드 생태계,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성장의 중심이 된다.
결국 자본시장은 가장 수익성이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오늘 시장이 보여주는 방향은 분명하다. 미래의 기대수익은 석유보다 기술에 더 많이 걸려 있다.
여기서 핵심은 '석유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석유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시장 전체를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점이 핵심이다. 시장은 충격을 덜 받는 것이 아니라, 충격을 해석하는 방식이 바뀐 것이다. 유가 급등이 오면 투자자는 곧바로 공포에 빠지는 대신, AI 인프라 수요, 반도체 사이클, 달러 강세, 위험자산 선호, 기관 자금 흐름까지 함께 따진다. 자본의 시선이 다층화된 것이다.
오늘의 자본시장은 한 가지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 세계 경제의 엔진은 더 이상 석유 하나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과 디지털 자산이 새로운 동력이 됐고, 자본은 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주식시장은 전쟁 뉴스에 흔들리면서도 예전처럼 무너지는 대신, 더 빠르게 다른 기회를 찾는다. 시장은 이미 다음 시대를 보고 있다.
석유가 흔들어도, 자본의 시선은 이제 기술과 디지털 자산 위에 더 오래 머문다. 웹 3.0시대는 이미 이렇게 우리 삶에 한껏 가까이 다가와 있다.
전태수 웹 3.0·블록체인 전문가
▲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 한국인터넷미디어윤리위원회 이사장 ▲ 세계스타트업포럼 대표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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