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트라우마 노출된 이란 어린이들…큰소리만 나도 화들짝

연합뉴스 2026-04-10 10:00:11

사망자 3천600여명 중 아동만 254명…이란 인구 20%가 14세 미만

수면장애·악몽·공격적 행동 증세로 상담받는 어린이들…정권은 어린이들 전쟁터로

테헤란 공원서 부모 손잡고 걷는 이란 어린이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전쟁 전엔 스트레스가 전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주 작은 소리에도 뇌가 민감하게 반응해요."

미국과 이란이 일단 휴전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란에 사는 15세 알리(가명)는 지금도 문이 쾅 닫히거나 식기류가 떨어지는 소리만 나도 화들짝 놀라곤 한다.

미국, 이스라엘의 공습이 만든 공포가 알리의 마음속 깊숙한 곳까지 자리 잡고 있어서다.

영국 BBC 방송은 9일(현지시간) 이란에서 많은 어린이가 이처럼 심리적 '과각성' 증세를 겪고 있다면서 이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이어질 수 있는 초기 경고 신호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과각성은 자극 반응이 지나치게 예민해져 불안, 극도의 피로, 수면 장애 등으로 이어진 상태를 말한다.

이란 인구의 약 20%는 14세 미만으로 약 2천40만명에 달한다.

미국에 본부를 둔 이란 인권운동 단체 '인권운동가통신'(HRANA)에 따르면 이번 전쟁으로 3천636명이 숨진 가운데 최소 254명은 어린이였다. 부상자도 수만 명에 달한다.

전쟁 시작 후 알리 같은 이란 어린이들은 학교, 친구 등 외부와 연결이 끊어진 채 집에서만 머무르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견뎌야 했다.

알리는 BBC에 "친구들과 연락도 못 하고 있다"며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커나가야지 이렇게 계속 정치 걱정을 하고,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생각하며 끝없는 공포 속에서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쟁 시작 후 이란 학교들은 문을 닫았다. 거리는 이란 정권의 바시즈 민병대원들이 통제하고 있다.

대부분 어린이, 청소년들과 민간인들은 집에 틀어박혀 지내면서 불안한 휴전이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다.

테헤란의 한 인권센터에는 불안한 심리 상태에 빠진 어린이들의 전화, 방문 상담이 크게 늘었다.

이곳 상근자인 아이샤는 "우리는 수면 장애, 악몽, 집중력 저하, 심지어 공격적 행동까지도 많이 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만 이란 어린이들을 전쟁의 트라우마로 몰아넣는 것은 아니다.

이란 정권은 어린이들을 전쟁에 동원하는 조직적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란 정부는 부모들에게 어린이들을 데리고 바시지 민병대에 들어가 지역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 경비를 서라고 요구해왔다.

한 정부 인사는 TV 연설에서 "자녀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오라"고 촉구했다.

이렇게 아버지를 따라 테헤란 거리의 검문소에 나갔던 11세 소년 알리레자 자파리는 지난 3월 29일 드론 공습에 숨졌다.

이란의 현행 안보 법규상으로 15세 미만 아동도 군 활동에 동원될 수 있는데 이는 국제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란 당국이 어린이들을 군 복무에 동원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아동의 권리를 짓밟고, 전쟁 범죄에 해당하는 중대한 국제인도법 위반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c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