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 찾은 96세 징용 피해자 "100세 돼도 사과받고 죽을 것"

연합뉴스 2026-04-09 18:00:08

도쿄 미쓰비시중공업앞 항의 집회…강제동원 유족 "잘못했으면 반성하라"

日시민단체 "역사와 확실히 마주해야" 호소…미쓰비시, 무대응으로 일관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앞에서 항의하는 정신영 할머니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한국에서 지팡이 짚고 허리 아픈데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장님 잘 생각해 보세요. 사죄하라고 왔습니다. 100세가 돼도 사과받고 죽을 겁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인 정신영(96) 할머니가 9일 도쿄 지요다구 미쓰비시중공업 앞에서 이렇게 말하며 미쓰비시 측에 사죄를 요구했다. 하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은 이번에도 면담을 거부한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정 할머니는 이날 일본 시민단체인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소송지원모임) 등이 주관한 '마루노우치 행동'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소송지원모임 등은 2007년부터 징용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일본제철 앞에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해 왔다.

정 할머니는 일본에 가면 공부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1944년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강제노역과 굶주림에 시달렸다. 함께 갔던 친구 6명은 지진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지만 미쓰비시 측이 항소해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연금기구는 2022년 정 할머니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인 99엔(약 924원)을 한화로 환산해 입금하기도 했다.

정 할머니는 이날 집회에서 "과잣값도 안 되고 휴짓값도 안 되는 99엔을 왜 보냈는가. 억울하다"며 "99엔이라는 돈이 돈이냐"라고 항의했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에 사죄 촉구하는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미쓰비시중공업에 동원됐던 또 다른 피해자인 고(故) 정창희 씨 차남 정종오 씨는 "아버지는 미쓰비시에 강제 징용돼 여기서 일하던 도중에 원자폭탄을 맞았다"며 "저는 물론 딸도 방사선 피해로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쓰비시중공업 사장을 향해 "일본 사무라이 정신으로 잘못한 것은 반성하고 잘못한 게 없다면 없다고 떳떳하게 대항하라"며 "미쓰비시 사장과 면담해서 사죄받고 돌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노 히데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장은 일본 측이 강제동원 역사를 없었던 것으로 해서는 안 된다며 "(역사와) 확실히 마주하고 피해자와 만나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할머니와 정씨 등은 미쓰비시중공업 건물 내부로 들어가 관계자 면담을 요청했으나, 미쓰비시 측은 사전에 약속을 잡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실상 문전박대했다.

정 할머니 등과 함께 미쓰비시중공업을 방문한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는 "미리 요청서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고 어떻게 약속을 잡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할머니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사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어떤 반응도 없었다"고 전했다.

미쓰비시중공업 관계자 만나러 가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소송지원모임 등은 이날 일본제철 앞에서도 항의 집회를 개최했다.

일본 정부와 피고 기업들은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대응을 거부하고 있다.

psh59@yna.co.kr